전공의가 '강경파' 된 이유.. "의사 늘면 잠재적 경쟁자"

박지연 2020. 9. 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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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의와 달리, 의사 증원 땐  '경쟁 당사자'
10년 넘는 수련기간, 응집력↑ 사회인식↓
의전원 '정책실패' 피해의식 파업으로 분출
6일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국시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오후 6시로 예정돼 있던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재신청 마감 시한을 이날 밤 12시로 연장했다. 2020.9.6/뉴스1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단체행동 중지 합의(4일) 이후에도 전공의들은 의료현장 복귀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는 등 의료계 내부의 불협화음이 심상치 않다. 개원의들의 목소리를 주로 대변하는 의협과 젊은 전공의들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빚은 의견충돌은 향후 또다른 의정 갈등의 불씨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전문가들은 특히 집단휴진에 있어 개원의들에 비해 강성을 띈 전공의 집단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정부의 4대 의료정책 중 하나인 공공의대 설립이 시차를 두고 젊은 의사들의 경쟁구도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고, 기성세대보다 치열한 입시를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탓에 전공의들이 비교적 강하게 정부와 맞섰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부의 의료정책이 비임상의들의 여론에서 비롯된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졌다는 임상의들의 오랜 불만이 전공의들의 강성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접 경쟁에 놓이는 전공의들

6일 전공의(인턴ㆍ레지전트)들이 당초 예정된 병원 복귀 일정(7일 오전)을 재설정하기로 하는 등 의정합의에 강력 반발한 1차적인 이유는 이들이 신규 의사인력 공급으로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될 당사자라는 점으로 수렴된다. 비록 공식적인 논의는 잠정 중단됐지만 정부의 4대 의료정책이 실현되면, 공공의대 졸업생은 최소 10년 뒤에 배출된다. 수련기간 10년까지 더하면 의료인력이 확충되는 건 20년 뒤의 일이다. 이미 자리 잡은 개원의들이 받게 될 영향은 비교적 적은 반면, 현재 수련 중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늘어난 의사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지역의사들이 의무 봉직기간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올 것으로 추측하고, 이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보는 것”이라며 “의사 노동시장의 경쟁이 커지는데 따른 경제적 불이익을 (전공의들이) 우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련기간 동안 응집력↑ 사회인식↓

10년 이상 도제식 수련문화를 거치며 응집력은 강해진 반면, 사회적으로는 그만큼 고립돼 시야가 집단에 머물러있다는 점도 전공의들의 강성화 원인으로 꼽힌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외과 전공의의 경우 주당 80시간씩 일하기 때문에 (파업 문제를) 깊이 사고하고 결정하기 어렵다”며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고 (의사 집단) 채팅방에서만 소통하니 주변에 휩쓸리기 좋은 구조에 있어 극단행동으로 치달은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오 위원장도 “일상을 같이 하는 네트워크에 정보를 의존하면 편협성을 띄게 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며 “사회적 지위가 공고한 의사들이 이런 집단 이기주의를 내세워 총칼에 버금가는 진료거부라는 무기를 휘두른 점을 볼 때 최소한의 사회적 상식과 공감능력, 소통이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반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강성행동이 사실은 수련의와 의대생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의료계는 과거 위계적인 문화가 있었지만, 이제는 지극히 개인화돼 ‘참여와 협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내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일만 내가 책임지는 시스템’ 아래 아무도 조율할 사람이 없다는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대전협 지도부가 결정한 7일 복귀 지침을 놓고 내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40대 의사는 “의협이나 대전협이 의료계 전체를 대표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니다”며 “이 때문에 의료 수가 문제 등 의사 커뮤니티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동의만을 내세우고 이를 관철하겠다는 강성 발언을 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책실패 희생자’ 피해의식…파업 계기로 분출

‘이제 고생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한 시간과 돈을 회수할 시점에서 경쟁의 지속을 뜻하는 ‘증원 이슈’를 마주한 탓에 전공의들이 더 격앙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그 동안 미래를 바라보며 엄청난 액수의 학자금 융자를 받고, 일주일에 80시간씩 고생하고 살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단순히 인력을 10% 늘리는 수치적 문제가 아니라 고생하며 들인 시간과 돈을 회수할 시점에서 전공의와 의대생에겐 (정부의 4대 정책이)재앙처럼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거쳐 자격증을 거머쥔 ‘의전원 세대’는 의전원이 사실상 사라져가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한다. 정형준 위원장은 “고도의 경쟁을 거쳐 외국어고와 주요 대학 이공계, 의전원 코스를 거친 전공의들은 의전원이 폐지수순을 밟으면서 ‘실패한 정책의 희생자’라는 피해의식을 갖게 됐다”고 봤다. 여기에 의예과 출신들로부터 ‘다른 코스로 들어온 사람’이라는 '색안경'까지 감수하게 됐다. 이런 시각을 무마하기 위해 파업을 통해 과도한 충성심을 보여주려는 노력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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