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실업자 되나요?" 닫힌 교문에 떨어진 눈물 [이슈&탐사]

이슈&탐사2팀,김유나,권기석,권중혁,방극렬 2020. 9. 7.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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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8월31일 폐교한 동부산대의 마지막 한 달
한국에서 대학 폐교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고 있어 사라지는 대학은 앞으로 더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쟁력이 부족한 대학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실한 대학도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터입니다. 연쇄적인 대학 폐교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대학이 폐교되는 현장을 살펴보고 5회 기획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첫회에서는 8월 31일 문을 닫은 동부산대학교의 마지막 한 달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달 26일 부산 해운대구 동부산대학교 학생 식당의 문이 닫혀 있다. 이 대학은 지난달 31일 폐교됐다. 부산=윤성호 기자

지난 7월 28일 동부산대 허모(49) 사무처 구매팀장은 부산에서 세종시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있었다. 이 대학 직원노조 지부장인 그가 운전한 카니발 차량에는 같은 학교 교수 3명과 직원 2명이 함께 탔다. 그들의 목적지는 정부세종청사. 폐교 전 동부산대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 마지막 ‘청문’이 교육부에서 열린 날이었다. 차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허 팀장은 “마지막 희망을 갖고 올라가던 길이었는데…”라며 그날을 떠올렸다.
폐교 D-34, 교육부는 말이 없었다

같은 날 교육부 청문회장. 폐교에 반대하는 A교수가 ‘동부산대 폐쇄 명령에 대한 구성원 의견’을 낭독했다. A4 용지 다섯 쪽 분량이었다. “(학교를 인수하겠다는) 재정 기여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얼마든지 정상화 기회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번 학기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교육부 직원 2명은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고 한다. A교수는 청문 직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텨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청문에 참석한 동부산대 관계자들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폐교를 받아들이기로 한 대학본부 측 인사들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대학본부 측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정리되는 편이 낫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 폐교를 막으려는 사람들과 폐교를 기다리는 사람들, 양측은 오랜 기간 갈등을 겪었다. 청문회장에서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지 않았다.


동부산대는 41년 역사를 지닌 2, 3년제 사립 전문대다. 1979년 개교 당시에는 동래여자전문대학이었다. 96년 남녀공학이 되면서 동부산대로 이름을 바꿨다. 지역에서 입지가 탄탄한 편이었다. 2015년 전임 총장과 재단 임원 등이 약 18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파면되면서 내홍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학교 구성원이 한마음이었다. 학교를 빨리 정상화하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체 교수와 직원이 임금 30% 삭감에 합의했다. 학과 구조조정 작업도 시작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재정이 바닥나 학교 시설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2018년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서 재정지원 제한대학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장학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학이 되자 100%에 가까웠던 신입생 충원율이 54.3%(2019학년도 기준)로 떨어졌다.

동부산대는 지난해 9월 교육부에 자진 폐교를 요청했다. 더이상 학교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올해는 신입생을 뽑지 못했다. 교육부는 ‘횡령액을 변제하지 않으면 자진 폐교는 불가능하다’며 8월 31일 자로 강제 폐교 조치했다. 동부산대는 역대 17번째 폐교 대학이 됐다.

폐교 D-25, 최후 통보를 기다리는 시간

8월 6일 동부산대 구성원 사이에서 침울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A교수가 통화에서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청문은 아무 소득이 없는 것 같아요. 교육부에서는 이미 폐교가 결정됐다는 소문이 돈다고 하더라고요.” 교육부는 같은 날 출입 기자들에게 동부산대 폐교에 관한 보도자료 배포 계획을 전했다.

이튿날인 7일 오전 10시30분. 학교 캠퍼스에는 지나다니는 학생이 1명도 보이지 않았다. 무더위를 알리는 매미가 울고 있었다. 낡은 캠퍼스 외벽과 대조적으로 깨끗한 현수막이 학교 정문 앞에 걸려 있었다. 현수막에는 ‘지역인재 등용의 문, 동부산대학교 폐교 반대’라고 적혀 있었다.

대학본부 건물 1층 사무실에서 직원 6명이 앉아서 근무 중이었다. 학교를 떠나지 않고 남은 직원들은 한 공간에 모여서 일을 했다. 교무처, 사무처, 취업학생처의 업무가 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직원들은 학생들의 특별편입을 지원하기 위한 행정 업무에 정신이 없었다. 이들은 2018년 3월부터 월급을 받지 못했다. 직원들은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학교 앞에 유일하게 남은 식당인 중국집에서 배달 주문을 했다. 허모 팀장은 기자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건네며 “아무리 월급을 못 받아도 서울에서 오신 손님 짜장면 하나 못 사드리겠습니꺼”라며 웃었다.

월급을 받지 못한 채 곧 사라질 학교에서 일하는 기분을 물었다. 직원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허 팀장은 “은행 빚을 내서 버티는 거죠. 학교가 문을 닫으면 당장 퇴직자가 되는 건데, 치킨집을 해야 할지…. 이제 나이 50인데 먼저 나간 선배는 에어컨 배관 설치 일을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끼리 ‘이래가 최저임금은 받겠나’하고 말죠”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직원 B씨가 거들었다. “평생 행정 업무를 했는데 어디를 갈 수 있을까요. 직원들끼리 잘 묻진 않지만 누가 물어보면 ‘공장에 갈 거야’라고 말을 해요. 말은 쉬운데…. 일단 쉬면서 저를 좀 더 내려놔야 할 거 같아요.” 말을 마친 B씨가 “갑자기 눈물이 나네”라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또 다른 직원이 “와 그랍니꺼”라며 본인도 휴지를 뽑아 들었다.

지난달 26일 동부산대 강의실 복도가 불이 꺼진 채 어두컴컴한 모습. 동부산대는 결국 지난달 31일에 문을 닫았다. 부산=윤성호 기자


학교가 월급을 지급하지 못하자 구성원들은 학교를 떠났다. 교원이 25명, 직원은 17명이 남았다. 이 학교는 교직원이 140명인 적도 있었다. 폐교 이후 학교법인이 수익형 자산을 팔면 밀린 급여를 정산받을 수 있다. 규모가 큰 자산은 쉽게 팔리지 않아 언제 정산이 이뤄질지 알 수 없다. 10년 이상 재직한 교직원은 폐교 시 지급되는 사학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남은 직원 가운데는 10년을 채우지 못한 사람도 2명 있다.

송모(38) 팀장이 근무 기간 10년을 못 채워 사학연금을 못 받는 경우다. 장학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2011년부터 9년2개월간 학교에 출근했다. 동부산대가 첫 직장이었다. 송 팀장은 지난 7월부터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의 아르바이트 배달기사인 ‘커넥터’로 일한다. “보통 하루 1만5000원 정도 버는데 비가 오면 운행을 못 해서 일정치는 않아요. 지금은 당장 버틸 돈이 없어서 공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경력직만 뽑아서 큰일이네요.”

교수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대학본부 건물에서 만난 홍수봉 교수가 건넨 명함에는 직함 3개가 적혀 있었다. 그는 ‘교무처장’ ‘입학홍보처장’ ‘전산정보원장’을 모두 맡고 있다. 보직교수 인원이 부족해 겸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홍수현 총장이 홍 교수의 사정을 대신 전했다. “낮에는 학교에서 겸직 업무를 다하고, 밤에는 알바를 뛰더라고요.” 홍 교수는 2개월 전부터 아내와 함께 이커머스 업체 쿠팡의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아내가 차에서 기다리면서 택배 짐을 정리하면 그가 나르는 식이다. 치킨 배달도 해봤다고 했다. 홍 교수는 “돈을 벌 것 같았으면 학교에 남아 있지 않았죠. 학생들 때문에 남아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폐교 D-21, “이제 모두 실업자 되는 거냐”

8월 10일 오전 9시. 사무처 직원이 교육부에서 온 전자문서를 열었다. 8월 31일 예정대로 폐교를 진행하겠다는 최종 통보였다. 곧바로 긴급 직원회의가 소집됐다. 대학본부가 주관한 회의에서는 ‘8월 31일 자로 학교가 폐교될 예정이다. 직원들도 퇴직 처리가 된다. 업무 처리를 하다가 마무리가 되지 않는 부분은 정리해서 법인에 제출하라’는 공지가 내려졌다. 직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9월 1일 자로 우리 모두 실업자가 되는 거냐”고 물었다.

2005년부터 15년간 근무한 허 팀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학교에서 일하는 게 보람 있었어요. 밖에서는 ‘아저씨’지만 학교에서는 직원끼리 서로 ‘선생’이라는 호칭도 쓰고 존중받는 직업이라고 여겼죠.” 과거를 회고하던 허 팀장의 말이 순식간에 원망과 미움의 말로 바뀌었다. “재단 문제를 왜 학교 구성원들과 학생들이 책임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학업 포기하는 학생들, 직원 가족들 인생은 누가 책임집니까.”

학교 폐쇄를 앞둔 지난달 26일 동부산대 재학생이 자신의 짐을 정리해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 학생은 인근 대학으로 특별 편입학했다. 부산=윤성호 기자


폐교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면서 재학생과 복학 예정자의 타 대학 특별 편입 절차가 시작됐다. 학교는 또 2개 학과에서 조기졸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3년제 학과의 학사 일정을 줄여 2년 수료 후 졸업장을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생활도예과와 실용음악과가 대상이었다.

8월 14일. 이들 두 학과의 조기졸업 관련 학칙을 개정하고 졸업자 명단을 확정하는 졸업사정회의가 열렸다. 폐교 직전 열리는 마지막 졸업사정회의였다. 홍수봉 교무처장과 교수 1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교수들은 학생 편입학에 관한 질문을 쏟아냈다. 한 교수는 “모집 인원보다 지원 학생이 넘치면 어떤 기준으로 자릅니꺼?”라고 물었다. 홍 처장이 “성적순으로 자릅니다”라고 대답했다. 교수들은 술렁이며 “거리가 아이고? 이야 성적순이라네”라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학의 마지막 회의에선 처리해야 할 안건이 많았다. 편입학 일정뿐 아니라 조기졸업 관련 학칙 개정, 졸업자 명단 확정을 해야 했다. 홍 처장이 서둘렀다. 조기졸업에 관한 새로운 조항을 읽은 뒤 졸업대상자 17명을 확정했다. 그는 “확인 서명 직접 하시고요. 이것으로 동부산대 마지막 졸업사정회의를 마치겠습니다”라며 책상을 손바닥으로 ‘쾅쾅쾅’ 내리쳤다. 홍 처장은 회의를 마친 뒤 “약한 모습 안 보이려고 좀 재밌게 진행해봤습니더”라며 기자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달 26일 옆 건물에서 촬영한 동부산대 대학본부와 3호관 건물 모습. 부산=윤성호 기자

폐교 D-17, “학생 여러분, 고맙습니다”

8월 14일 오후 1시쯤부터 조용했던 동부산대 캠퍼스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방학인 데다 폐교 소식에 학생이 1명도 없던 며칠 전과 다른 풍경이었다. 학생을 태운 택시가 교문 안까지 줄지어 들어왔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생활관 1층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편입학설명회가 오후 1시30분부터 생활관 1층 강당에서 열렸다. 교육부와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장학재단이 설명회를 주관했다. 당장 어느 학교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학생 270여명이 설명회에 참석했다.

홍수현 총장이 연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학교 형편이 너무 어려워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셔틀버스도 운영 못 하고 식당도 사라지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아서 학업을 지속해 준 여러분이 참 대단하고 고맙습니다.” 그는 울먹이면서도 끝까지 인사를 마쳤다.

동부산대 재학생 444명과 휴학생 317명 등 재적생 761명은 부산·울산·경남지역 동일·유사학과에 같은 학년으로 특별편입학이 이뤄진다. 폐교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자동차과 배모(24)씨는 “친구들하고 근처 대학을 가는데 오히려 더 좋은 대학을 가게 돼서 좋다”고 말했다. 학교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전공 실습이나 편의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기 때문에 차라리 폐교가 더 낫다는 얘기였다. 유아교육과 김태희(25)씨는 “새로운 학교에 가서 또 적응하고 공부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며 “모교가 사라진다는 것도 슬프고 친구들과도 헤어지게 되는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일부 만학도는 폐교 절차가 너무 성급하게 진행됐다며 교육부 직원들에게 항의했다.

학교 앞에서 ‘뚝딱이네팬시문구’를 운영하는 최미복씨는 스탠드 조명을 켜 두고 유튜브 방송을 연습하고 있었다. 최씨가 이날 올린 매출은 300원. 한 학생이 프린트물을 600원어치 출력했는데 300원만 받았다고 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한 사람이 복사만 5만원어치 하기도 하고 만날 학생들이 줄을 서서 출력하고 그랬어요. 근데 폐교 얘기 나오고 나서는 매출이 바닥이에요. 넋 놓고 있을 수 없어서 유튜브라도 해보려고요. 손재주가 좋으니까 뭐 만드는 걸 하면 사람들이 보지 않을까요.”

폐교 D-5, 짐 싸는 교수들… 막막한 미래

8월 26일 동부산대 대학본부 1층 회의실 한편에는 ‘문서보관’이라고 적힌 빈 박스가 천장까지 닿을 듯 쌓여 있었다. 사학진흥재단 측 관계자가 앉아서 넘겨받을 서류 리스트를 정리했다. 폐교된 학교의 학적부 등 기록물은 사학진흥재단이 보관을 맡는다. 특히 9월부터는 폐교의 기록물 관리를 사학진흥재단이 맡도록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시행돼 폐교 대학은 반드시 재단에 기록물을 넘겨야 한다. 폐교 대학 출신은 사학진흥재단에서 학적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일부 대학은 폐교 과정에서 학적부를 제멋대로 버려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

생활도예과의 만학도 박은총(33)씨는 대학본부 사무실에서 학번과 이름을 이야기하고 졸업증을 받았다. 생활도예과는 폐교로 조기졸업이 시행된 곳이다. 졸업증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박씨가 말했다. “누가 ‘동부산대는 어딨는 학교냐’라고 물으면 ‘문 닫은 학교’라고 말해야 하는데 기분이 참 별로네요.”

대학본부 2층부터 7층까지 교수 연구실 앞 복도는 교수들이 사무실을 정리하며 내놓은 각종 책과 서류, 짐들로 어수선했다. 한 교수는 전임강사 시절 받은 동부산대 교원 임명장을 비롯해 외부 심사위원 위촉장 사본, 제자들이 제출한 것으로 보이는 과제 서류들을 ‘폐기’할 짐들로 내놓았다. 대학 강사 시절 적은 것으로 보이는 누군가의 전임교원 지원 자기소개서도 복도에 나뒹굴었다.

6층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이모 교수는 9월 1일부터 ‘옆집 아저씨’로 살겠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근무한 뒤 유명 관광업체의 한국 지사장을 지내다가 동부산대 교수가 됐다. 이력서에 쓸 내용이 많지만 구직 활동은 그에게도 큰 부담이다. 지금까지는 학교가 없어진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다. “애들이 ‘아빠, 그만 포기하세요’라고 말해요. 근데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학교 폐교만은 막아보고 싶었고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9월 1일부터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정 안되면 노가다라도 해야죠.”

교수 연구실을 정리하던 또 다른 교수는 “할 게 뭐 있습니까. 그냥 실업자 되는 거지”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냥 당분간은 아무 생각 안 하고 쉬고 싶어요. 딱 6개월 정도 쉬면서 정리를 할까 해요”라고 말했다.

폐교날인 지난달 31일 학교 관계자가 생활관 건물 출입구를 쇠사슬로 묶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부산=김유나 기자

폐교일, 오후 5시 홈페이지가 없어졌다

8월 31일 폐교 당일 대학본부 1층 행정실이 북적였다. 직원들이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1장씩을 손에 쥐고 있었다. 동부산대 총동문회가 ‘마지막 날까지 학교를 지켜줘 고맙다’며 상품권을 선물했다. 마지막 출근길이 어땠는지 물었다. 한 직원은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하늘을 몇 번 쳐다봤는지 모르겠네요. 울화가 치밀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직원은 “나도 그랬는데. 다 그랬나봐요”라고 말했다.

이날 학교는 학생들의 마지막 문의가 몰리면서 전화벨이 쉬지 않고 울렸다. 휴학을 한 학생들이 미리 납입한 등록금을 환불해 달라는 요청도 이어졌다. 동부산대는 당장 학생들에게 돌려줄 등록금 3억원 정도가 없는 상황이다. 학교 측은 “재산 매각이 이뤄지는 대로 등록금에 지연이자를 더해 학생들에게 반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설팀 직원 D씨가 생활관 출입구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는 시설 관리를 위해 법인의 요청으로 학교에 남게 됐다. “저만 일을 하려니까 마음이 무겁네요. 저분들 보기도 좀 그렇고. 같이 애썼는데….” 쇠사슬이 묶인 출입문에는 ‘점유관리 안내문’이 붙었다. 허가 없이 출입하거나 시설물을 반출할 경우 처벌된다고 적혀 있었다.

폐교를 받아들인 사람들과 폐교에 반대한 사람들은 이날까지 화해하지 못했다. 폐교를 받아들인 홍 총장과 교수, 직원 16명은 교정을 배경으로 마지막 기념촬영을 했다. 홍 총장은 “체불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 이번 주 부산시와 해운대구 관계자들을 만나 부지 매각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폐교에 반대한 한 직원은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폐교만은 안 된다고 버티면서 학교 살릴 방법을 더 찾아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폐교가 실감나지 않는다던 교직원들은 대학 메일 계정이 사라지고 학교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자 허탈해 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동부산대 학교 홈페이지는 접속이 되지 않았다.

동부산대 정문이 닫히면서 이 대학은 2000년대 폐교된 네 번째 전문대학이 됐다. 한국 대학의 폐교는 이제 시작 단계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는 대입 지원자가 전체 대학의 입학 정원보다 적은 ‘정원 미달의 해’가 될 전망이다. 동부산대의 ‘마지막 한 달 이야기’는 앞으로 일어날 폐교 사태의 첫 번째 에피소드일 수 있다.


이슈&탐사2팀 부산=김유나, 권기석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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