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별기도 무용지물"..'가짜' 신세계 상품권 피해 속출

김소영 입력 2020. 9. 8. 15:03 수정 2020. 9. 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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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있는 두 장의 신세계 상품권 10만 원권 중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입니다. 위조 방지를 위해 숨겨놓은 그림도, 상품권 중간에 있는 홀로그램 띠도 모두 같습니다. 어떤 게 진짜인지 가려내기가 어렵습니다. 둘 중 하나만 갖고 있다면 더 분간이 안 되겠죠. (※ 아래쪽에 있는 상품권이 진짜입니다.)

온종일 상품권만 들여다보는 전문가들도 깜빡 속아 넘어갔습니다. 지난 광복절 연휴를 전후해 서울, 경기, 전남, 경남 등 전국 곳곳의 상품권 재판매점에서 사진 속 가짜 상품권이 대량 유통됐습니다. 판매점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점포 당 수천만 원대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 퀵서비스로 배달된 상품권 4천만 원어치… 맨 앞 장만 진짜였다

대전에서 상품권 재판매점을 운영하는 이진원 씨도 피해 점주 중 한 명입니다. 마감 준비로 정신이 없던 금요일 오후, 퀵서비스 기사라는 남성 편에 상품권을 가득 채운 쇼핑백 하나가 배달됐습니다. 배달 직전 '상품권을 보내겠다'며 계좌번호와 연락처를 적은 문자메시지도 도착한 상태였습니다.

10만 원권 상품권 다발을 육안으로 확인한 후 장수를 세고 현금 4천만 원을 부쳤습니다. 이렇게 매입한 상품권은 별다른 의심 없이 일반 고객들에게 팔려나갔습니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자 고객들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백화점에 가서 쓰려고 했더니 '이미 인터넷에서 사용된 상품권'이라며 거절당했다는 겁니다.

뒤늦게 확인해보니 받은 상품권의 90%는 가짜였습니다. 한 다발 중 맨 앞 장만 진짜 상품권이고, 나머지는 전부 위조 상품권인 식이었습니다. 상품권을 팔았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이미 연락 두절이었습니다. 피해 금액만 3천6백만 원 상당, 이 씨는 "사건 이후 제대로 잠을 이룬 적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정상 상품권과 위조 상품권을 감별기에 넣은 모습. 위조 방지 기능이 있지만 구분이 불가능하다. [사진 출처 : 이진원 씨 제공]


■ 사용한 상품권에 은박만 다시 입혀 새 상품권으로 '둔갑

경기도 안양에서 20년 이상 상품권 판매업을 해온 강천일 씨도 사기를 당했습니다. 역시 이번 광복절 연휴 직전에 피해를 봤는데, 앞선 이 씨 경우와는 달리 여러 사람이 며칠에 걸쳐 10장, 20장씩 끼워파는 더 교묘한 방식에 당했습니다. 피해 금액은 1천4백만 원가량입니다.

위조 수법 자체는 같았습니다. 롯데나 현대 상품권의 경우 온라인에서 사용하려면 백화점에 직접 방문해 포인트 전환 신청을 하거나 등기우편으로 본사에 보내야 합니다. 10만 원권, 30만 원권처럼 현금보다도 단위가 큰 상품권이 부정 사용되는 걸 막기 위해 절차를 까다롭게 한 건데요.

신세계는 다릅니다. 상권 뒷면에 인쇄된 '상품권 번호'와 앞면에 있는 은박 스크래치를 벗기면 나오는 '핀(PIN) 번호'만 입력하면 온라인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위조범들은 이 은박을 긁어내고 지류 상품권을 SSG 포인트로 전환한 뒤, 은박을 다시 덮어씌워 판매점에 팔았습니다.

정상 상품권(왼쪽)은 은박을 긁으면 숫자가 깨끗하게 보이지만, 위조 상품권(오른쪽)은 위조 과정에서 훼손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 피해 업주들 "'상품권 대목' 앞두고 소비자 피해 더 커질 것"

이 씨는 "당장 추석을 앞두고 상품권 거래가 늘면 전국에서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면서 "신세계 측이 상품권 회수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에는 상품권 판매점 등을 통하지 않고 개인간 중고 거래를 하는 경우도 많아 소비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업주들 피해가 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강 씨는 "내가 아는 다른 피해 사례만 광주, 부산 등 여러 곳"이라며 "서울에서는 명동에서 피해가 제일 크다는데 업체 간 경쟁이 심해서 쉬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가짜 상품권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돌면 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피해 신고를 못 하는 업주들이 많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2009년과 2015년에도 위조 상품권 유통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신세계 측이 문제를 제대로 개선하지 않아서 또 피해자들이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매번 '수사 의뢰' 등의 방식으로 뒷북 대응을 하면 위조 수법도 진화하고, 비슷한 사고가 또 터질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 이마트 "소비자 편의성 위한 것…보안 강화할 계획"

이마트는 지난달 21일 신세계 위조 상품권 유통 정황이 의심된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 고객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 선제적 조치를 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발표 내용과는 달리 이미 다량의 가짜 상품권이 재판매점을 통해 유통되면서 일반 소비자 피해도 발생한 상황입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마트 측은 "부산 센텀시티 등에서 피해 고객이 나왔다는 보고를 뒤늦게 받은 상황"이라면서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고객들이 위조 상품권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조폐 공사에 상품권 보안성 강화를 의뢰할 계획"이라고도 밝혔습니다. 더불어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 등 공식 판매점에서 구매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단돈 천 원, 이천 원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다수의 소비자들이 상품권 재판매점이나 개인 간 거래로 몰리는 게 현실입니다. 비슷한 방식의 위조권 피해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소영 기자 (so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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