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박살난 해운대 고층아파트..신종 재난된 '빌딩풍'

부산/박주영 기자 2020. 9.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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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안가 24곳 측정 결과

최근 나흘간 ‘마이삭’과 ‘하이선’ 등 태풍 2개가 강타하면서 해운대, 광안리 등 부산 해안가의 고층 아파트들은 창문이 수십 장씩 깨지는 피해를 입었다. 이 피해는 ‘하이선' 등 태풍이 동반한 강풍에 의한 것이지만 고층 건물 주변의 ‘빌딩풍‘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선 고층 아파트·빌딩 시대에 빌딩풍이 새롭게 등장한 ‘신종 재난’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3일 부산 해운대구와 남구의 고층 빌딩 중 일부는 유리창이 강풍에 심하게 깨졌다. 바람이 고층 건물 사이를 통과하면서 풍속이 빨라지고 바람 방향이 변하는 빌딩풍이 피해를 키웠다. 부산대학교 권순철 교수팀에 따르면 80층짜리 아파트가 밀집한 마린시티 일대의 최대 풍속은 초속 30m로 해상 최대 풍속 초속 23m보다 훨씬 강했다.

빌딩풍은 파이프 안을 흐르는 물이나 공기가 좁은 부분에선 압력이 낮아지고 속도가 빨라지는 ‘벤투리 효과’처럼 넓은 공간에서 불던 바람이 고층 빌딩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을 말한다. 빌딩풍은 빌딩 사이 측면에서 불기도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하강풍), 아래서 위로(상승풍) 불기도 한다. 때론 바람과 바람이 만나 회오리(와류)를 만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빌딩풍 현상이 더해지면서 지난 3일 새벽 태풍 ‘마이삭‘ 때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앞에 위치한 101층 엘시티 건물은 외벽 타일과 시설 구조물이 바람에 뜯겨 나갔다. 남구의 한 고층 아파트도 이날 베란다 유리창 수십 장이 박살났다. 지난 7일 새벽 태풍 ‘하이선’이 지날 때 해운대의 한 아파트 단지엔 빌딩풍에 날린 자갈이 유리창을 깨고 거실까지 날아든 경우도 있었다.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의 입주민 조모(63)씨는 “창문의 ‘지지직’ 소리와 함께 바깥의 심한 바람 소리에 유리창이 깨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빌딩풍의 무시무시한 위력은 최근 연구에서도 드러났다. 행정안전부와 부산시가 발주한 빌딩풍 연구 용역을 수행 중인 부산대 권순철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팀은 “지난 7일 0시부터 12시간 동안 해운대 해안가 고층 건물 주변의 풍속을 측정해보니 ‘빌딩풍‘ 풍속이 해상의 태풍 속도보다 7m가량 빠른 것으로 측정됐다”고 8일 밝혔다.

빌딩풍을 고려, 건물 안에 '풍혈(바람 구멍)'을 2곳에 둔 중국 광저우의 '펄 리버 타워'. /해운대구 제공

권 교수팀은 이날 101층 건물 1개 동과 80층짜리 건물 2개 동으로 이뤄진 해운대 해수욕장 앞 엘시티 주변 12개 지점과 80층짜리 아파트가 밀집해있는 마린시티 일대 24개 지점 등에서 측정을 진행했다. 같은 시각 해상에서 측정한 최대 풍속(10분간의 평균 풍속)은 초속 23m. 엘시티, 마린시티 측정 지점의 풍속은 이보다 훨씬 빨랐다. 마린시티 24곳의 최대 풍속은 초속 30m로 해상보다 7m나 빨랐다. 특히 최대 순간풍속은 해상의 2배가 넘는 초속 50m까지 기록했다. 엘시티의 경우 태풍이 절정인 시간대는 아예 측정조차 할 수 없었다. 권 교수는 “바람이 너무 심해 사람이 나가서 측정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오전 6시부터 엘시티의 측정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권 교수팀은 “성인 남성이 초속 10m쯤의 바람이면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으나 초속 20m쯤이면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 버틸 수 있으며 25m 이상 땐 바람에 대해 몸의 방향을 바꾸기 힘들고 30m에선 두 다리를 움직이며 필사적으로 중심으로 잡아야 하는데 35m를 넘어 가면 어떤 자세를 잡더라도 바람에 날려간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해안가에 가까운 지역에서 빌딩풍의 풍속이 최대 2배까지 증가했다”며 “빌딩풍을 신종 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빌딩풍을 고려, 건물 꼭대기에 풍혈과 풍력 발전기를 설치한 영국 런던의 스트라다 SE1빌딩./해운대구 제공

빌딩풍의 위험은 해외에선 일찍부터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져 대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일본 도쿄의 ‘NEC수퍼타워빌딩‘은 건물 중간에 3층 높이의 전 층을 ‘풍혈(바람 구멍)‘로 두고 건물 모양새를 쐐기꼴로 했고, 영국의 ‘스트라다빌딩’은 건물 꼭대기에 3개의 풍혈과 대형 터빈을 설치해 빌딩풍을 줄이고 있다. 중국 광저우의 ‘펄 리버 타워‘도 바람을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곡선 외형에 건물 3분의 1, 3분의 2 지점에 풍혈을 두고 있다.

인명 사고가 나는 등 빌딩풍 피해 논란이 컸던 영국 리즈시의 경우 건물 사이에 방풍 스크린을 설치하고 인도에 바람에서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인도에 스크린 도어를 만드는 등 대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권 교수는 “갈수록 고층 빌딩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건물 모양이나 배치, 풍혈 설치, 방풍스크린 및 방풍림 조성 등이 절실하다”며 “건물 설계나 도시 계획 입안 과정에 빌딩풍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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