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코로나 백신 최종 임상 중단.. 희망만큼 절망 컸다

진달래 2020. 9. 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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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  3상 임상 참가자 질병 발생
전 세계 시험 올스톱.. "속도 경쟁" 비판 커져
트럼프, 조기 승인 압박 '정치화 변질' 우려도
전 세계 제약사가 개발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모형 약병. 로이터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최종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선두그룹 제약사의 임상시험 참가자에게서 원인 불명의 질병이 발생하면서 부작용 가능성이 불거진 것이다. 지난달 11일 러시아 정부가 임상 전 백신을 세계 최초로 승인한 후 개발 속도 경쟁이 가열된 터라 ‘안전성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방송은 8일(현지시간) 자국 제약업체 아스트라제네카가 최종 임상 단계인 3상시험 참가자 중 한 명에게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질환이 발견돼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모든 시험을 잠정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업체는 옥스퍼드대와 함께 공동 개발한 백신 후보를 놓고 현재 영국 미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상 임상을 진행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자체 3상시험 표준 검토 과정에 따른 일반적 조치”라면서 “설명할 수 없는 질병이 발생하면 실험용 백신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도록 시험을 멈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참가자는 영국 시험 대상자로 척추에 영향을 미치는 ‘염증성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종 임상을 중단한 자체 만으로도 백신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임상 일시 중단은 이례적이지 않다”면서도 “면밀하게 조사된 백신 개발 과정에서 잠재적인 부작용 징후가 나타나면 빠른 코로나19 해결책에 대한 희망이 꺾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백신 승인 후에도 부작용 공포로 사람들이 접종을 꺼려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후보는 초기 실험 데이터에서 승인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 영국과 미국, 호주 등 여러 정부와 공급 계약을 벌써 마칠 정도로 기대가 컸다.

불투명한 백신 전망은 실물경제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주가는 이날 장 마감 후 시간외거래에서 6% 급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투자자들이 위험자산 매입을 경계하면서 특히 아시아 증시가 요동쳤다”고 평했다. 코로나19 백신의 효용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뜻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180곳 가까운 코로나19 백신 후보가 임상시험 중이지만 3상 임상에 돌입한 곳은 아스트라제네카를 포함해 9곳뿐이다.

여기에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불붙은 ‘백신 정치화’ 공방도 코로나19 백신의 공신력을 갉아먹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선 전까지 백신 승인 및 공급을 장담하면서 과학적 근거가 아닌 정치 논리가 백신의 가치를 변질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이날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을 공동 개발하는 바이오앤테크의 우구르 자힌 최고경영자(CEO)는 미 CNN방송 인터뷰에서 “내달 중순까지 규제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는 폭탄 발언을 해 조기 승인 우려를 한층 부채질했다. 방송은 “대다수 백신 개발 기업들은 미 대선 전 승인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며 성급한 승인을 비판했다. WHO는 3상 임상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적어도 내년 2,3분기는 돼야 백신 상용화와 접종이 가능하다고 점치고 있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제약사들은 ‘개발 윤리’ 준수를 공언하는 등 신뢰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바이오앤테크, 화이자, 모더나, 사노피 등 백신 개발 업체 9곳은 이날 “어떤 코로나19 백신도 조기 승인을 받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 정도 노력으로는 이미 깊어진 대중의 불신을 되돌리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레이첼 삭스 미 워싱턴대 교수는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서 “백신 안전성과 효능에 관한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분위기가 퍼져 투명한 임상 결과가 중요하다”며 “이번 서약에는 개발 과정을 신뢰할 수 있는 제약사의 의지가 빠져 있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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