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전광훈'의 탄생, 평신도들도 책임있다

장재진 2020. 9. 1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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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이정배(왼쪽)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와 박종선 생명평화마당 대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 교회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며 "작은 교회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장재진 기자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겁니다. 평신도가 감히 목사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질문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죠. 신자들은 예배에서 지극히 소극적인 존재입니다. 신자가 신앙의 주체로 제 역할을 못하니 전광훈 목사와 같은 괴물 목사가 나타난 겁니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신천지'에 이어 가장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이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였다. 이 때문에 개신교계에선 연일 자성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자성한다 해도 본질적 질문은 되풀이 된다. 정말 전 목사 한 명만 문제냐, 전 목사만 쫓아낸다고 달라질 것이냐. 이미 전 목사 이단 지정 움직임을 두고 '손절'이란 표현까지 오르내린다. 실컷 이용해먹고 이제사 버리면서 자신들은 아닌 척 한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전 목사와 선긋기'를 넘어 개신교계 전체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교회 개혁 운동을 해온 박종선(60) 생명평화마당 대표와 이정배(66)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마주한 이유다.

생명평화마당은 10년째 '작은 교회'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다. 기득권 대형 교회 대신 물리적으로 신자 수가 적은 교회, 그리고 △탈(脫)성장△탈성직 △탈성별을 추구하는 교회를 지향한다. 이 가운데 '탈성직'이란 목회자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을 끊는 일이다. 이들이 개신교 비판을 전 목사에게서 끝내지 않고, 평신도들에게까지 이어가는 이유다.

박 대표는 "'목사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배워온 대다수의 신자들은 비판적 사고가 어렵다"면서도 "목회자의 일탈은 당사자 뿐 아니라 그들에게 제동을 걸지 못한 신자들의 책임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 교수 또한 "목사들은 자신을 하나님, 교회와 동일시하고 이를 '삼위일체'라 부르면서 무조건 믿으라고들 한다"며 "하지만 신앙은 '초(超)합리'의 영역이지 '비(非)합리'가 아니기에 '믿습니까?' '아멘'만 내세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공 반이슬람 반동성애 등 이념을 기준으로 상대를 적대시하는 것도 문제다. 이 전 교수는 "기독교의 기본 정신은 나를 부정해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인데, 지금 개신교는 타인을 부정하며 악마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도 "개신교들이 내세우는 이념과 주의가 되레 개신교인들을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데 기여했다"면서 "특히 젊은 세대의 이탈이 심한데 나중에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런 모순이 존재하는 한, 당장 전 목사가 재수감되고 버려져도 제2, 제3의 전광훈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이 전 교수는 "전 목사는 개신교의 모든 모순을 한 몸에 드러내는 인물"이라면서 "그렇기에 모든 목회자에게는 전광훈의 'N분 1'만큼의 닮은꼴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전 목사를 비판해도 "은연 중에는 전 목사를 지지하는 목사들이 여전히 많다"고도 했다.

그래서 개신교계의 변화는 평신도에서 시작돼야 한다. 국민더러 변화하라는 정치가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듯,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너만 잘났냐는 소리 듣기 딱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방법은 그것 뿐이다. 어릴 적부터 다닌 친구 등 그간 인간관계가 있는데 어쩌고 망설일 게 아니라 그건 아니지 않느냐고 물어야 한다. 박 대표는 "한 교회를 일단 다니기 시작하면 그 교회에만 몰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번쯤은 개혁교회에 가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전 교수도 "코로나19로 온라인 예배가 자리 잡으면서 다른 교회의 설교도 들을 수 있게 됐다"며 "마음을 사로잡는 교회로 이동하는 신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교회만 고집하지 않는 '생활신앙'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이 전 교수는 "희랍어로 교회는 '에클레시아(Ecclesia)'라고 하는데, 그 뜻은 밖으로 흩어진다는 것"이라며 "신앙은 예배당 바깥의 삶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목회자와의 대면예배'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일상대면'이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이들은 16~17세기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직자의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낮은 자세로 대화를 해야 한다. 요즘 개신교계에서 가장 예민한 주제인 동성애 문제도 그렇다. 이 전 교수는 "성경에 나온 문구를 근거로 드는 '문자주의' 교회들은 가장 배타성이 강하다"면서 "전향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는, 대화 가능한 교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들이 하지 못하면, 평신도들이 나서서 해야 한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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