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동아시아판 나토' 속도 내..한국 끌어들이기 압력 시간문제

길윤형 2020. 9.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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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호주·인도 '4자 안보대화' 수면 위
미국 속내 드러낸 비건 발언
"인도·태평양 지역엔 나토가 없다"
4개국이 먼저 시작하는 게 중요"
중국 포위 집단안보체제 구축 뜻
미-일 동맹, 글로벌 동맹 주축으로
호주·인도와 다양한 군사훈련
'쿼드' 결성 위한 기초 다지는 중
'쿼드 플러스' 압박 한국의 선택은
내년 미 차기 행정부서 본격화 예상
미-중 사이 균형외교 한국 시험대
섣불리 휘말릴 땐 중국 반발 불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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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남중국해 등을 놓고 살벌하게 대립 중인 미-중이 9일 화상으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해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미-중 갈등이 첨예화됨에 따라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인도가 참여하는 ‘4자 안보대화’(쿼드)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어, 두 나라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지키려는 정부의 현명한 대응이 요구된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9일 화상으로 진행된 아세안+3(한·중·일), 한-아세안, 동아시아정상회의 외교장관회의에 차례로 참석했다. 이날 회의의 백미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동반 참석한 동아시아정상회의 외교장관회의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해엔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지난 2일 참석할 뜻을 밝혔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코로나19, 북한, 남중국해, 홍콩 등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관계에서 호혜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를 ‘중국 견제’와 이념을 같이하는 동맹국·동반국 간 ‘결속 과시’ 무대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31일 미국-인도 전략동반자포럼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엔 “분명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유럽연합(EU)과 같은 다자구조가 없다”며 “(쿼드라 불리는) 4개국이 먼저 시작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비상한 관심을 모은 것은 미국이 2010년대 들어 추진한 대중 견제 움직임이 ‘재균형 전략’, ‘인도·태평양 전략’ 등 추상적 개념을 넘어 대중 포위를 위한 집단안보체제인 ‘쿼드’ 구상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견제를 위해 ‘재균형 전략’을 내세웠던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4월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미-일 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강화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후 일본을 핵심 파트너로 삼아, 2017년 11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양국의 공동 전략으로 결정했고, 미 국방부는 2019년 6월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통해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동반국과 힘을 합쳐 중국의 도전을 꺾고 지역 내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태다. 미국은 이런 결의를 과시하듯 같은 시기 ‘아시아·태평양 사령부’의 이름을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바꿨다.

이후 미-일은 태평양~인도양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인도 등과 다양한 형태의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며, 쿼드 결성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중이다. 이들은 지난해 9월엔 뉴욕에서 처음으로 4개국 외교장관 회의를 열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협력하자”는 합의도 이뤄냈다.

한국과 관련해선 아직 구체적 움직임이 없지만, 미국이 인도·태평양의 번영과 발전의 ‘핵심 축’(linchpin)이라 이르는 한-미 동맹의 전략적 중요성을 생각할 때 ‘쿼드’를 확장한 ‘쿼드플러스’엔 어떤 형태로든 참여 요청을 해올 것으로 보인다. 요코스카에 모항을 둔 미 해군 7함대는 9일에도 미 구축함이 “통합된 다국 간 영역 작전 수행을 위해” 하와이에서 괌까지 한·일·오스트레일리아 해군과 함께 항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미국이 정상회담 등에서 반중 색채를 강하게 띤 인도·태평양 전략을 언급할 때마다 아세안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심화하는 자체 전략인 ‘신남방정책’을 내세워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30일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개방성·포용성·투명성이라는 역내 협력 원칙에 따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조세영 전 차관도 7월9일 비건 부장관과 외교차관 전략대화에서 이런 기조를 유지했다.

쿼드 구상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은 내년 1월 말 미국 차기 행정부가 발족한 뒤 본격화될 전망이다. 비건 부장관도 11월 미국 대선 일정을 고려한 듯 “트럼프 행정부 2기나 다음 대통령의 첫 임기 때 한번 시도해보면 좋을 듯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모두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누가 당선되더라도 ‘쿼드’ 구상이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

물론, 미-중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는 한국·인도·아세안 등의 저항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로 계획이 매끄럽게 추진될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이 섣부른 판단을 내릴 경우 “중-한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자”(지난달 22일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고 제안했던 중국은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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