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추선' 태풍들 또 올 수 있어..기후변화의 또다른 위협 요인

이근영 2020. 9. 1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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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의 기상천외한 기후이야기]
늦여름·초가을 태풍 북태평양고기압 영향 받아
기후변화로 고기압 강해져 북서쪽으로 확장
북동 전향 없이 똑바로 북진하는 경향 뚜렷
"기후변화 1차 원인..자연변동 가능성도"
올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장미’ ‘바비’ ‘마이삭’ ‘하이선’ 등 태풍들. 모두 경로가 남에서 북으로 북진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제공

올해 우리나라에 피해를 준 태풍 4개가 모두 남쪽에서 북쪽으로 직진하는 이례적인 경로를 보인 것은 기후변화 영향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지구온난화로 태풍 강도는 강해지고 태풍들이 ‘곧추서는’ 경향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돼, 우리나라 중부 내륙이나 북한 동북지방 등 평상시 태풍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지역에까지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제5호 태풍 장미와 제8호 태풍 바비, 제9호 태풍 마이삭, 제10호 태풍 하이선 등은 경로를 북동 방향으로 전향하지 않고 똑바로 북진했다. 특히 서해안을 따라 북상한 바비와 동해안을 따라 북상한 하이선의 경로는 위도와 평행선을 이룰 정도로 남북으로 똑발랐다.

이현수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늦여름에서 초가을 북태평양고기압이 일본 남동쪽에 위치하거나 우리나라 남동쪽에 있으면 우리나라에 접근하는 태풍들이 그 가장자리를 따라 북서진하다 위도 30도 부근에서 북동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라며 “하지만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일본 열도에 위치하면서 일본 동쪽에서 오호츠크해까지 기압능이 발달해 태풍들이 북진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오임용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예보관도 “올해 북태평양고기압의 위치가 평년보다 북쪽으로 올라와 태풍의 동진을 막는 블로킹 구실을 했다”며 “여기에 서쪽에 형성된 기압골 전면에 북쪽으로 향하는 제트가 강해 태풍이 빠르게 북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유사한 기압계가 형성돼, 제13호 태풍 링링은 올해 바비와 거의 같은 경로를 보였다.

최근 20년 우리나라 영향 태풍 경로. 2001∼2010년 태풍들은 북동진하는 추세인 반면 최근 10년 태풍들은 북진 경향을 보였다.

이런 경향은 2001∼2010년과 2011∼2020년 영향 태풍들의 경로를 비교해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반 10년 동안은 전통적인 경로대로 태풍들이 타원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북동진한 반면 최근 10년에는 북진 경향이 강했다. 문일주 제주대 교수(태풍연구센터장)는 “지난 40년의 북태평양고기압 상황을 비교해보면 기후변화 영향으로 고기압 위치가 북서 쪽으로 많이 확장하고 강해졌다”며 “이런 경향은 뚜렷해 (북향 직진 태풍은) 내후년에도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서쪽 확장이 여느 때보다 강해, 7개의 태풍 가운데 3개가 9월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다.

이런 ‘곧추선’ 태풍의 원인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서쪽 확장이 일차적으로 지목되지만 자연변동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문 교수는 “중위도 태평양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수십년 주기로 진동하는 태평양10년주기진동(PDO)이 2010년대 초까지 음으로 진행되다 최근 양으로 전환된 부분도 태풍의 변화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현수 과장도 “기후변화로만 단정적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천리안위성 2A호가 9월6일 0시에 촬영한 제10호 태풍 하이선 영상. `초강력' 태풍으로 발달해 태풍 눈이 또렷하게 보인다. 기상청 국가기상위성센터 제공

기후변화로 태풍 강도 갈수록 강해져

한편 세계기상기구(WMO)와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공동 설립한 ‘태풍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기후변화에 의한 태풍 변화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말미암아 태풍 발생 수는 감소하는 반면 태풍의 강도를 갈수록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 논문에 작성한 차은정 국가태풍센터 연구관은 “지구온난화로 지구표면 온도가 높아지면 열대 대류권 상층과 하층의 온도차가 적어지고 이에 따라 대기가 안정화되면 열대 대류 활동이 약화돼 태풍 발생 수가 감소할 것”이라며 “반면 온난화로 열대 대류권 하층에 수증기가 증가해 일단 태풍이 발생하면 높은 해수온과 풍부한 수증기 공급으로 강도가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77년 이래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 가운데 기상청이 올해 신설한 ‘초강력’ 태풍(중심 최대풍속 초속 54m 이상)에 해당하는 19개(올해 제10호 태풍 하이선 포함) 가운데 8개는 2000년 이전, 11개는 2000년 이후여서,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차 연구관은 “강도가 가장 강했던 태풍 30개가 2100년에 발생할 경우를 가정해 기후모델로 실험한 결과 강한 태풍이 더욱 강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특히 강한 태풍이 현재 위치보다 북상해 동아시아에 더욱 강한 태풍 영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가태풍센터가 최근 10년(2009∼2018년) 우리나라 영향 태풍의 강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강도 ‘매우강’(중심 최대풍속 초속 44m 이상) 발생 빈도가 50%를 차지해 최근 강한 태풍의 발생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은 ‘초강력’에 해당한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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