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우리가 외면해온 지적장애③ "외롭지 않은 미래를 위해"

안서연 2020. 9.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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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지난 7월, 제주시청 앞 작은 광장인 어울림마당에서 지적장애인들을 때리고 감금한 사건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습니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 절반 이상이 지적장애인이었는데, 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서 수차례 반복된 지적장애인 간의 범죄가 과연 당사자들 만의 문제였을까. 탐사K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지난 몇 주간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주변인들을 만나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온 성인 발달장애인들의 삶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탐사K는 되풀이되는 지적장애인 범죄 실태와 재범을 막기 위한 대책을 앞서 두 차례에 걸쳐 보도했는데요. 처벌만으로는 재범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외면해온 지적장애, 마지막 순서에서는 당사자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취재했습니다.

■ 학교 밖 세상 막막…갈 곳 없는 성인 발달장애인


플루트를 연주하는 스무 살 지적장애인 민욱 씨.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 위해 직업 훈련을 받는 건데, 하루 중 유일한 일과입니다. 오후 2시 반, 일과가 끝난 민욱 씨는 곧장 정류장으로 달려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오후 6시쯤, 집 근처에서 만난 민욱 씨 어머니는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올 때까지 이 아이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어떻게 안전하게 잘 지내줄까 걱정된다"면서 "(지적장애인은) 지켜야 할 어떤 도덕적인 것이나 자신이 피해가야 할 사회적인 위험 요소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민욱 씨 어머니는 최근 시청에서 벌어진 지적장애인 간 폭행사건을 접하면서 혹여 민욱 씨가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진 않을지 우려했습니다. 민욱 씨가 어엿한 성인이 됐지만, 지능은 다섯 살에 멈춰있기 때문입니다.

민욱 씨 어머니는 "우리 아이 같은 경우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때 아이큐 검사를 해보니 4~5세 때와 똑같았다"며 "주민등록증 발급 시기가 됐을 때부터 학교 울타리에서 보호받던 모든 것들이 끝난다는 것에 대해 매일 걱정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학교를 나온 지적장애인은 막막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취업은 고사하고 평범한 대인관계를 맺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주변 또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라는 질문에 민욱 씨는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라면서 "지금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민욱 씨 어머니는 "아이가 직업을 갖는다기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서 무언가 즐겁게 어울릴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가 있지만, 평일 저녁이나 주말엔 운영하지 않는 데다 맞춤형 프로그램이 없고 이마저도 자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김남고 제주지적장애복지협회 사무국장은 "주말엔 여가프로그램이라든지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관이 거의 없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공공체육시설을 이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5조'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자신이 운영 또는 지원하는 체육프로그램이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을 고려해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장애인의 참여를 위해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주변 시선 탓에 이용이 어렵다는 게 당사자들의 호소입니다. 민욱 씨 어머니는 "어머니랑 같이 안 오면 아이를 수영장에 보내지 말라고 한 적 있다"며 "우리 아이가 없는 곳에서 이야기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강경균 제주도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은 "일반 체육시설에도 장애인 프로그램을 개설하도록 돼 있는데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라고 인식을 잘 못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 "사회로의 진입 장벽 낮춰야 음지로 가지 않을 것"


성인이 된 뒤 갈 곳이 없는 건 민욱 씨 가족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자폐나 지적장애가 있는 발달장애 자녀들을 이제 곧 학교 밖 세상으로 내보내야 하는 부모들은 모두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제주지역 '발달장애인 고등부모 모임' 회원인 신혜수 씨는 "자꾸 분리하려고만 하지 말고, 사회로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갈 곳이 늘어나서 할 것이 많아지면 더는 음지로 숨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들은 지금 같은 현실에선 발달장애인들이 계속해서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회원은 "그 친구들(가해자)이 분리돼서 2~3년 뒤에 (교도소에서) 나오게 되면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아니겠느냐"며 "우리 장애 부모들은 엄청 불안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24시간 자녀만 바라보며 모든 요구를 들어주기도, 모든 행동을 통제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 씨는 "왜 너는 그 친구가 너를 놀리는 건데 왜 그 친구랑 같이 얘길 하냐 이렇게 하지만, 뚜껑을 열어봤더니 그 친구만 이 아이랑 그나마 얘기를 나눠주는 거였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또 다른 회원은 "그게 다 부모 몫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저희 아이들 같은 경우는 비장애인들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설명해 주기도 애매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2년 전 정부가 발달장애인 평생케어종합대책을 발표해 학령기가 지난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지원 계획도 세울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아직 현실에서는 크게 와 닿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임 회원들은 "생애주기별로 설계해주겠다고 했을 때 '아, 우리 아이의 미래에 청사진이 펼쳐질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아직은 전체적인 삶을 아울러서 설계해 수 있는 상황까지는 안되는 것 같다"고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강경균 제주도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은 "서비스가 다양화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공급자 위주의 전달 체계이기 때문에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서비스의 양, 종류가 상당히 적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부모의 관심이 없으면, 지원 대상이 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김정옥 제주도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은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이 사람(발달장애인)에 관한 모든 것들이 연결이 바로바로 되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런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며 "사건이 진행되고 반복되게 일어나서야 알게 되는 상황이 참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 "성인 발달장애인, 인간적인 삶 위한 자조모임 필요"


체계적인 지원망이 아직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자조모임 확대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누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건데, 이미 활발하게 추진하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대구시지적장애인복지협회 중동구지부입니다.

김영효 대구시지적장애인복지협회 중동구지부장은 "보통 발달장애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친구가 없다"며 "이 친구들이 사회에서 어울려 살려면 직장만 문제가 아니고, 삶의 질도 참 중요하겠다 싶어서 자조모임을 진행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김 지부장은 이어 "발달장애인은 학교 안에서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로 나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취업을 하더라도 장애 특성상 일하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도 아무도 이 부분은 도와주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대구지역의 이 자조모임에서는 함께 산책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주말엔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20살부터 39살까지 발달장애인 60여 명이 참여하는데, 재능 봉사에 나선 특수학교 교사나 대학생들이 울타리 역할을 해줍니다.

김 지부장은 "이 친구들도 20대의 인격을 가진 성인이기 때문에 이성교제를 꿈꾸지만, 부모들이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조모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제를 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성교육 강사나 인권교육 강사가 함께 상담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지부장은 이어 "직업을 구해주고 수용을 하고 이런 것보다는 그 친구들의 인격적인 삶의 질에 대해 고민을 해서 전국적으로 (자조모임을)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제주에서도 부모 위주의 모임은 꾸려져 왔지만,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자조모임은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이에 강경균 제주도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은 "앞으로는 자조모임의 중요성에 대해서 국가나 지자체가 인식하고 있고 거기에 관련 지원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관건은 복지체계가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제주도는 제주도 내 3천 8백여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이들 가족을 위해 내년 개설을 목표로 발달장애인 종합복지관을 짓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운영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기존 복지관들과 다를 바가 없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부모들 걱정인 만큼 당사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내실 있는 운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승아 제주도의원은 "단지 시설로만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번에 일어난 사태를 보면서 우리 수요자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방관적인 자세가 아니라 관심을 갖고 정책적으로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 중의 약자이면서도 사회의 외면 속에 도심 속에서 떠돌고 있는 발달장애인들. 이들을 지나친 우리 모두가 방관자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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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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