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태산인 중국과 호주의 감정싸움

모종혁 중국 통신원 2020. 9. 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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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강경 보수주의자 모리슨 총리 집권 후 중국에 대립각
시진핑, 전방위적 보복 나서

(시사저널=모종혁 중국 통신원)

8월31일 외신은 "중국 국영 CCTV 영어채널의 중국계 호주인 앵커 청레이()가 중국 당국에 2주 넘게 구금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호주 정부는 "14일에 중국 정부로부터 청레이를 구금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27일 호주 관리가 화상을 통해 구금시설에 있는 청레이를 면담했다"는 성명을 냈다. 다만 무슨 이유로 구금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청레이는 1975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부모와 함께 이민을 간 뒤 호주 국적을 취득했다.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공인회계사로 일하다가, 2000년 중국에 와서 호주계 기업에서 일했다.

청레이가 CCTV에 들어간 것은 2002년이다. 처음에는 기자로 일했고, 인지도를 얻으면서 앵커로 활약했다. 청레이의 구금 소식은 중국 외교가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갈수록 악화되는 중국과 호주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기조차 절묘했다. 8월 들어 호주 정부는 중국 정부와 중국 기업을 견제하는 움직임을 강력히 펼치고 있었다. 27일 외신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주(州)정부가 외국 정부와 독자적으로 맺은 계약에 대해 연방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이를 무효화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EPA 연합·pixabay

코로나19 책임론이 촉발한 양국 갈등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국가시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가 호주에서 진행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로 풀이됐다. 2018년 호주의 빅토리아 주정부는 일대일로의 통신사업에 참여하기로 중국과 합의했다. 이런 행동이 같은 해 호주 정부가 자국 5G 네트워크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시킨 결정과 배치되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지난 5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빅토리아주의 참여 결정을 비판했다. 심지어 "미국에 부정적 영향을 주면 호주와 관계를 끊겠다"고 경고해 호주 정계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8월25일에는 호주 정부가 중국 최대 유제품 제조업체인 멍뉴(蒙牛)의 호주 기업 인수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멍뉴는 지난해 11월에 일본의 기린 홀딩스가 운영하던 라이언 데어리 앤드 드링크를 4억70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인수 방안을 계속 반대해 왔다. 심지어 6월에는 외국인투자법을 개정해 호주 내 외국인 투자에 대한 최종 승인권을 가졌다. 멍뉴의 인수를 무산시킨 것은 이 법 개정에 따른 합법적인 조치였다. 이렇듯 중국을 견제하는 호주 정부의 움직임 속에 터진 청레이 구금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 힘들다.

양국 갈등의 시발은 지난 4월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캔버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기원을 밝히는) 국제조사가 중요하다"며 "적절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사태의 기원에 대해 투명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던 상황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책임론'을 강력히 제기하면서 동맹국들도 여기에 동참할 것을 압박했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 한국 등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은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중국과의 외교적인 마찰을 꺼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가 선뜻 나섰다. 모리슨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세계보건기구(WHO)의 개선을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WHO가 중국 중심적"이라고 비난하며 자금지원 중단을 지시했던 행동에 동조하는 모습이었다. 그에 대해 중국 정부는 "중국의 내정을 간섭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또한 "중국을 계속 공격한다면 호주산 쇠고기와 와인의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5월 중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코로나19 발원지 중국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렇듯 호주가 미국과 동조하며 중국 때리기에 앞장서자, 중국은 호주를 향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세계보건총회 직후 호주산 쇠고기의 수입을 부분 중단했다. 중국은 호주산 쇠고기 수출의 3분의 2를 차지해 왔다. 또한 호주산 보리에 대해 최대 80%까지 관세를 매겼다. 9월1일에는 아예 수입을 금지했다. 6월 들어서는 전선을 확대했다. 6월5일 중국 정부는 "호주에서 중국인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가 늘고 있다"며 호주 여행을 자제하도록 공지했다. 나흘 뒤에는 같은 이유로 호주 유학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는 중국인들의 호주행을 막는 조처나 다를 바 없었다.

중국이 벌이는 전방위적인 보복은 과거 사드 배치를 놓고 한국에 가했던 경제 보복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중국은 호주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자 상품 수입국이다. 2018~19년 호주 전체 수출에서 중국은 3분의 1을 차지했다. 2위인 일본은 훨씬 적은 13%에 그쳤고, 미국은 고작 5%로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40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호주를 방문했다. 그동안 호주에서 유학했던 중국인 학생 수는 260만 명에 달한다. 호주로 밀려들어온 중국인 유학생들 덕분에 25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분석이 호주에서 나올 정도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2019년 9월20일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

모리슨, 트럼프와 줄곧 정치적 행보 같이해

중국의 뒤끝 작렬에 호주도 가만있지 않았다. 6월19일 모리슨 총리는 "호주 정부와 기업에 대한 국가 지원조직의 사이버 공격이 최근 늘어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나라를 거명하지 않았으나 중국을 겨냥한 언급이었다. 며칠 뒤에는 호주 정보기관이 호주 정계에서 유명한 친중 정치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7월9일에는 모리슨 총리가 "홍콩보안법을 피해 호주에서 새 삶을 시작하길 원하는 홍콩인의 정착을 돕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23일에는 호주 정부가 중국의 남중국해 주권을 부정하는 공식 문건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냈다.

이렇듯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 것은 단순히 코로나19 책임론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은 호주가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자신을 때린다고 여기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호주는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인 인도·태평양라인에 참여해 미국과 다양한 군사훈련을 벌였다. 또한 미국의 제재에 동조해 화웨이를 5G 네트워크사업에서 배제했다. 홍콩보안법을 우려하는 국제 성명에 동참했고, 홍콩인의 정치적 망명을 돕고 있다. 현재 호주 내에서는 "중국의 공세는 호주의 태도를 바꾸려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모리슨 호주 총리의 정치적 성향도 한몫했다. 과거 호주는 경제 의존도에 대한 우려가 줄곧 제기됐으나, 실리주의를 앞세워 대중 외교를 펼쳤다. 특히 맬컴 턴불 전 총리는 자유당 출신이었지만 대중 유화론을 앞장서 실현했다. 그에 반해 모리슨 총리는 집권 자유당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경 보수주의자다. 2018년 집권 이래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줄곧 같이해 왔다.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에 적극 동조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향후 중국과 호주의 갈등은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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