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시선] 추미애를 어찌할꼬

박재현 2020. 9. 11. 00: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퇴 유도 때는 추의 반발 우려
안고 가기엔 비판 여론 부담
검찰 처분만 기다리는 악순환
박재현 논설위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을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요약이 가능하다. “소설을 쓰고 있다”는 확증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 언론과 야당의 의혹 제기에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부인할 것은 부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다.

청와대 등 국정 운영 관계자들은 추 장관 아들 의혹이 조국 가족 사건과 마찬가지로 2030세대들에게 권력자들의 특권과 불공정 시비를 불러 일으킨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한 것도 추 장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국회에서 답변을 하는 추 장관의 태도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조응천 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여권내에 흐르는 온건파들의 기류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조국에 이어 추 장관도 현직에 있으면서 가족 관련 수사를 지켜보게 된 것은 정권에 큰 부담이고 위기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청와대 민정과 정무쪽에서 문제의 실상을 최대한 빨리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한 인사의 말은 조국 사건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김종민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남국·설훈·우상호·이재정·정청래 등 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추 장관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것은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민심이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의 관음증을 말했던 추 장관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이 조국에 대한 애정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도 객관적 거리 유지와 연결지을 수 있다. 현재로선 문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할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먼저 추 장관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을 최선의 카드로 여길 것으로 관측된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인 셈이다.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그것을 바라고 있다는 말이다.

여권 일각에선 지난 달 검찰 고위 간부들에 대한 인사가 이뤄지면서 추 장관을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된데 따른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문제도 추 장관과는 관계없이 진행될 수 있게 됐다. 검찰 내에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청와대측이 추 장관을 제치고 직거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는 수군거림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측도 추 장관이 순순히 제발로 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독특한 성격의 추 장관이 청와대와 여권을 향해 정치적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추 장관은 내년 4월 예정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염두에 두고 정치적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올 초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사건에 대한 재수사와 사면 및 복권 등에 대해 추 장관이 발벗고 나선 것도 차기 서울시장 후보를 노린 것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아들 사건으로 인한 낙마는 정치적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추 장관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의 고심은 또 있다. 검찰이다. 조국 사건을 시작으로 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윤석열 총장과 후배 검사들의 기를 꺾는데 추 장관이 크게 기여한 것은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민감한 지적이지만 추 장관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다. 한 검사의 얘기. “마초 성격이 강한 윤 총장이 추 장관의 막무가내식 언행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여자와 싸운다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전임인 박상기·조국 법무장관처럼 검찰 기세에 눌려버리면 이 정부가 주장하는 검찰 개혁은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내포돼 있다. 추 장관 처럼 막가파식으로 나가야 검찰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추 장관을 쉽게 내치기 어려운 점이 여기에 있다.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는 일단은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추석 민심이라는 변수가 있다. 그래서 검찰 수사는 지금보다는 잰걸음으로 이뤄질 공산이 커 보인다. 수사의 핵심은 아들의 특혜성 휴가에 추 장관이 어떤식으로 개입했는지 여부이다. 그녀의 간여가 수사에서 드러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했던 이유를 들어 검찰 개혁을 외쳤던 청와대와 추 장관이 또 다시 검찰 수사에 운명을 거는 악순환을 고집하고 있다.

박재현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