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부산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편한 신발

최보윤 기자 2020. 9.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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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타임誌 선정 '세계에서 가장 편한 신발' 올버즈
2년간 헤매던 친환경 운동화, 부산 공장에서 해법 찾아
정작 한국에선 폐업 직전에 몰리며 누구도 관심 안 줘
올버즈, "30년 경력의 60대 한국 장인들이 해냈다"
올버즈 직원들이 부산 공장을 방문한 뒤 찍은 기념사진. /올버즈 홈페이지

저희는 샘플을 보자마자 ‘이건 기적이야’라고 외쳤죠. 부산의 회사가 없었다면 우리의 꿈은 그냥 몽상(pipe dream)에 그쳤을지도 몰라요. 2년 넘게 풀지 못했던 숙제를 단 며칠 만에 해결해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일명 ‘실리콘밸리 CEO 운동화’라 불리는 미국의 친환경 슈즈 브랜드 올버즈(Allbirds)의 조이 즈윌링거 창업자는 얼마 전 줌(Zoom) 인터뷰에서 “부산의 신발 제조사인 노바인터내쇼널(이하 노바)을 발견한 건 ‘신의 한 수’였다”며 말을 이었다. 올버즈는 운동화 소재로 거의 쓰지 않았던 양모(wool)를 소재로 2014년 탄생한 샌프란시스코발(發) 스타트업. 즈윌링거는 “생각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제조사를 찾기 어려웠다”는 고백을 하면서, 그간 어디에도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신발 제작을 의뢰한 후보군은 3곳이었어요. 우리의 신발 라스트(골격)를 만들어주는 이탈리아 장인(匠人)은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공장을 추천해주더군요. 미국에 있는 공장도 알아봤지요. 그중 저희 최종 선택은 친한 친구 추천을 받은 부산 공장이었습니다. 노바에서 만든 제품은 타의 추종을 불허(head and shoulders above)했어요. ‘어메이징’이란 단어를 입에서 뗄 수 없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천연 소재 운동화 '올버즈'로 "세계에서 가장 편한 운동화"라는 찬사를 들으며 '실리콘밸리 유니폼 운동화'란 애칭과 함께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오른 창업자 팀 브라운(왼쪽), 조이 즈윌링거.

트란실바니아라 하면 드라큘라 백작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럭셔리 업계에선 신발 제조로 유명한 곳이다. 3년 전 영국 일간 가디언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적힌 루이비통 구두 상당수가 루마니아 공장에서 제조된 것이 드러났다”고 고발한 뒤 세계 패션계에 아이러니하게도 ‘루마니아 제조 신발’=‘럭셔리’란 통념이 자리 잡았다. 부산의 노바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 20분의 1인 양모 극세사를 엮어 단단하고 탄성 있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기존 양모 신발은 있었지만 발모양대로 디자인을 구현해 내거나 탄력 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직조된 발 모양과 밑창 등을 안전하게 붙이는 것까지도 완벽하게 해냈다. 오히려 노바 측이 “대표가 신발 업계에선 신인이라(바이오생물학전공) 누구도 생각 못 했던 아이디어를 내밀었다. 그 신선한 시도를 함께 성공시키려 직원 수백명이 밤새 머리 싸매고 직조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울러너의 가볍고 포근함을 표시하기 위한 연출 사진.

그와 경쟁한 부산의 현실은 과거의 영화(榮華)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값싼 공임을 찾아 베트남 등으로 신발 제조업 축이 옮겨갔다. 그중에서도 유망한 회사로 꼽히던 노바조차도 올버즈와 손잡기 전에는 폐업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즈윌링거는 “공장에 계신 분 상당수가 60대였는데, 이는 적어도 30년 이상 전문 지식을 쌓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들을 계속 추켜세웠다. 올버즈는 노바 덕분에 2016년 제품을 선보이자마자 미국 타임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편한 운동화’란 칭호를 얻으며 현재 1조원 넘는 기업가치의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고, 노바는 2018년 국내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최보윤 문화부 기자

즈윌링거와 이야기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와 올버즈의 차이는 무엇일까. 60대 이상의 수공인들을 두고 해외에서 ‘장인’으로 칭송할 동안 우리 중 누군가는 그들을 그저 ‘기능공’으로 폄훼했던 것은 아닐까. 올버즈뿐만 아니라,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국내 안경 브랜드 젠틀 몬스터도 ‘안경의 메카’로 불렸던 대구 공단 측에 제조를 맡기면서 명성을 드높인 바 있다. 젠틀 몬스터 측은 “아무도 못 하겠다는 디자인을 대구에서 완성해줬다”고 설명했다.

영국을 비롯한 해외 패션계에선 코로나 이후 줄줄이 무너지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또 물류 등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국 인력과 장인들을 보호하고 계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요즘 유행어처럼 ‘빌보드 1위 BTS 보유국’에 빛나는 한국이 기존 기술력에 예술적인 창의성까지 더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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