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매립장 짓는다고? '수심'깊은 서강

박수혁 2020. 9. 11.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쌍용양회, 축구장 26배 규모 산업폐기물매립장 추진
석회암 지형 탓 지반 침하 등 우려 커 반대 목소리
침출수 유출 사고 땐 수도권 주민 식수원 오염될 수도
영월에서 시멘트 회사를 운영 중인 쌍용양회가 석회석 지형에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추진하자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침출수 유출로 하천 오염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매립장 예정지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에 있는 서강의 풍경.

“올해로 영월 동강댐을 백지화한 지 20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원이나 다름없는 서강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건설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동·서강보존본부 엄상용(54) 이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말했다. 엄 이사와 동강보존본부는 1990년대 후반 동강댐 반대 투쟁에 앞장서 댐 백지화에 큰 구실을 했다. 동강보존본부는 최근 서강에서도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제기되자 올해 초 동·서강보존본부로 이름을 바꿨다. 엄 이사는 “아무리 침출수 차수막 시설 등을 잘한다고 해도 석회암 지형의 특성인 지반 붕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매립된 산업폐기물의 유독물질이 서강을 타고 수도권 식수원인 한강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동강에 이은 서강의 수난 동강은 1997년 정부가 댐 건설 예정지로 지정하자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격렬히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널리 알려졌다.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환경의 날’인 2000년 6월5일 댐 건설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환경단체들은 “동강댐 건설 백지화는 사전에 생태계 대규모 파괴 계획을 철회한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강은 이런 동강의 ‘부부 격’인 강이다. 동강·서강은 영월군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 흐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살이 센 동쪽은 아버지로, 부드러운 서쪽은 어머니로 비유되기도 한다. 동강이 아침을 열고 서강이 하루를 마감한다는 말도 있다. 서강은 영월읍내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고, 남한강은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된다. 서강은 수도권 식수원인 한강과도 바로 연결되는 셈이다.

영월에서 시멘트 회사를 운영 중인 쌍용양회가 석회석 지형에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추진하자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침출수 유출로 하천 오염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매립장 예정지에서 4㎞ 떨어진 곳에 있는 한반도 습지의 모습. 이 습지는 세계 람사르 습지에 등록될 정도의 생태계 보고다.

서강은 한반도를 닮은 지형과 생태계 보고로도 유명하다. 서강의 한반도 지형은 삼면이 바다이고 동고서저인 지형, 서해와 남해가 갯벌인 점까지 한반도 지형과 쏙 빼닮았다. 이 덕분에 2011년 6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5호로 지정됐다. 게다가 한반도 지형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습지는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와 황조롱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수달, 돌상어, 층층둥굴레 등이 서식한다. 2012년 1월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2015년 5월에는 세계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생태계 보고다.

영월에서 시멘트 회사를 운영 중인 쌍용양회가 석회석 지형에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추진하자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침출수 유출로 하천 오염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설 석회석 광산의 모습.

■ 서강 옆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이렇듯 평화로운 서강은 지난해 8월 이곳에서 시멘트 회사를 운영 중인 쌍용양회가 폐석회석 광산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히면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채굴이 끝난 폐광산은 원상태로 복구해야 하지만, 매립장으로 바꾸면 산업폐기물 처리비용을 받고 복구비용도 아낄 수 있어 업체로선 일거양득이다. 매립장 면적은 축구장 면적(7140㎡)의 26배가 넘는 19만㎡에 이른다. 쌍용양회 쪽은 건설폐기물과 광물찌꺼기(석재 가공 부산물), 폐토사, 무기성 오니류(정수처리장 찌꺼기 등) 등 각종 산업폐기물 560만㎥를 매립할 예정이다.

영월에서 시멘트 회사를 운영 중인 쌍용양회가 석회석 지형에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추진하자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침출수 유출로 하천 오염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한반도 지형 일대에 형성된 동굴의 모습.

문제는 이 일대가 시멘트 제조를 위해 석회석을 캐던 석회암 지대라는 점이다. 석회암 지형은 지하에 수많은 절리(틈)와 싱크홀(지반 침하)이 발달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이를 통해 물이 쉽게 밑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또 빗물은 절리 사이를 흐르며 주위 암석을 끝없이 침식해 시간이 흐르며 동굴이 되곤 한다. 수많은 동굴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고, 이 탓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심하면 매립지가 내려앉고 침출수가 지하로 흐를 가능성이 큰 셈인데, 매립장 예정지는 서강에 합류되는 쌍용천과 직선거리로 200m 떨어져 있다. 서강과도 직선거리가 2.5㎞에 불과하다.

영월에서 시멘트 회사를 운영 중인 쌍용양회가 석회석 지형에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추진하자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침출수 유출로 하천 오염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한반도 지형 일대에 형성된 동굴의 모습.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지금 당장은 차수막을 통해 침출수 등을 차단할 수 있겠지만 현재 진행형인 지하 동굴 형성이나 갑작스러운 지진 등의 영향으로 언제 지반이 붕괴할지 아무도 모른다. 토목공사에서 완벽한 것은 없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사고가 나면 생태계 보고인 서강과 수도권 젖줄인 한강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강을 지키는 사람들과 강원환경운동연합이 지난달 12일 영월군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쌍용양회가 추진하는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 계획 관련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할 것을 환경부에 촉구하고 있다.

■ 경북에선 폐기물매립장 백지화 지난해 경북 문경에서도 석회암 지대에 폐기물매립장이 추진돼 주민들이 반발해 무산된 사례가 있었다. 한 업체가 신기동 일대 14만9000㎡ 규모 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추진하자, 주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업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글을 올리는 등 반발했다. 문경시의회도 반대 결의문을 냈다.

결국 대구지방환경청은 지난해 10월 “사업지구 지질이 석회암층으로 차수막 훼손 및 침출수 유출 때 석회암과 반응해 지반 침하에 따른 지하수·하천 오염 가능성이 있어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 또 사업지구 5㎞ 이내에 주거지역과 학교, 노인회관 등이 있어 대기오염물질의 노출 우려가 있다”며 업체가 제출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해 사업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석회암 지대인 점과 주변에 주거지 등 생활공간이 있다는 점은 서강도 마찬가지다. 영월도 산업폐기물매립 예정지와 한반도면 쌍용출장소와의 거리는 720m, 쌍용4리 마을회관은 810m, 쌍용119소방서 930m, 쌍용초등학교 1.4㎞에 불과하다.

환경운동가이자 ‘서강 지킴이’로 활동 중인 최병성 목사는 “석회암 지대에 폐기물매립장을 건설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대구지방환경청이 입증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경준 강원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영월 서강의 폐기물매립장 예정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석회암 지대다. 매립장은 사고를 대비해 가장 안전한 곳에 건설해야 한다. 환경부와 영월군 등 행정기관은 이 사업을 허가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현재 쌍용양회는 ‘폐기물처리 사업계획 승인’을 받기 위해 지난 6월 승인기관인 영월군과 협의기관인 원주지방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접수한 상태다. 지난 8월 주민설명회를 열었지만, 주민들 요청으로 10월에 추가로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공청회가 끝나고 환경영향평가 본안을 작성해 영월군과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하면 ‘동의’ 혹은 ‘부동의’ 여부가 결정된다. ‘부동의’ 땐 사업이 백지화되고 ‘동의’ 땐 영월군이 환경영향평가 결과 등을 토대로 사업계획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쌍용양회 쪽은 “이곳이 석회암 지형이라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 정밀지반조사를 거쳐 지하 구멍 등 각종 문제를 보완·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반영할 계획이다. 침출수도 법적 기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정화하는 설비를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문경시 매립장 사례는 석회암 지형에 대한 정밀지반조사 미흡 등 이유로 환경청에서 부동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석회암 지형에도 아파트나 매립장 건설이 허가된 사례도 있다. 정밀지반조사 등 보다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하고 있고, 이를 설계에 적극 반영해 안전한 매립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함세영 부산대 교수(지질환경과학과)는 “땅속을 100%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석회암 지형은 지하에 동굴 등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지역에 매립장을 건설할 때는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며 “시설을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차수막이 찢어지는 등 각종 이유로 매립장 침출수가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사진 서강을 지키는 사람들 제공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