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련 변호사 "박원순 피해자, 이미 포렌식 맡긴 뒤 찾아왔다"

고경태 2020. 9. 11. 05: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의혹사건 김재련 변호사 첫 인터뷰


김재련 변호사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진영과 정치의 장막을 걷어내고 위력 성추행이라는 이 사건의 본질을 봐달라”로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겨레>는 지난 4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사건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와 인터뷰를 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자신을 처음 찾아왔을 때 이미 업체에 휴대전화 포렌식을 맡기는 등 법률적 대응을 할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고 전했다. 또한 피해자가 겪은 서울시청 내부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인 ‘4월 사건’에 관해서도 처음으로 언급했다.서울시청 관계자들의 방조 혐의 등에 대한 경찰 수사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두 달이 지났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둘러싼 논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에 의한 기획미투’라는 등 피해자의 주장과 의도를 의심하는 눈길과 함께, ‘2차 가해 우려’를 내세워 어떤 질문도 못 하게 하는 건 부당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정작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어떻게 작동·유지되는지, 안희정·오거돈 사건 이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본질적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전 시장이 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고 성숙한 논의를 끌어내려면 최대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김 변호사는 “4월 발생한 성폭력 사건 처리에 대한 서울시의 무능과 그동안 문제의식을 느껴온 서울시청 내의 성차별적 문화, 4년간 겪어온 시장의 성적 괴롭힘과 맞물리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켰고 결국 박 시장을 고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차원에서 피해자 쪽 동의를 얻어 관련 내용을 보도한다.피해자는 김 변호사를 통해 “(이번 인터뷰가) 사건에 대한 조사와 논의가 편견 없이 진행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 <한겨레>는 인터뷰 내용에 대한 후속 취재와 함께, 박 전 시장 쪽이나 서울시 관계자들의 반론과 의견을 보도할 예정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성추행 의혹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사건과 관련한 여러 사실을 정제된 입장과 함께 밝힐 때가 되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안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피해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며 “개별 문제점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여성들이 근로의 주체로 일하며 사람답게 살아가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9월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 사무실에서 2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이 동석했다. 대면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여러 차례의 서면 질문을 보내 내용을 보충했다.

“골다공증 상태에서 교통사고 당했다”

―5월12일 피해자를 처음 만난 날에 관해 먼저 묻고 싶다.

“피해자가 처음 사무실에 찾아온 날,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지금처럼 코로나19가 심각하지는 않았는데, 마스크를 쓴 채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굉장히 경계하고 있었다.”

―어떤 경위로 피해자가 김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온 건가?

“지난 4월 서울시 비서실 직원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하 4월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그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 사건에 대한 서울시의 미흡한 조처에 관해 털어놨고,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서울시도 관리·감독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얘기했다. 상담시간 한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피해자가 박 시장 이야기를 꺼냈다.”

―피해자는 김 변호사를 누구로부터 소개를 받은 건가?

“서울시 젠더특보가 소개해준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상담을 받다가 그 선생님이 서지현 검사를 대리했던 저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피해자는 저에 관한 기사, 그에 달린 댓글까지 모두 검토하고 저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4월 성폭력 사건에서 서울시의 미흡한 조치라는 것이 무엇인가?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당일 바로 가해자를 형사고소했지만,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4월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피해 사실을 소문냈고, 비서실장에게까지 성폭력 사건이 보고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직장에 알려지고 소문이 돌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비서실이 가해자의 후임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해자가 직위해제될 줄 알았는데 다른 부서로 전보 발령이 났다. 그것도 피해자와 업무상 연관된 자리였다. 피해자는 4월22일 인사기획비서관과 통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조치를 요구했지만 ‘두 사람과의 인연이 모두 소중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고 한다. ”

4월23일 언론 보도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고 경찰에서 수사개시 통보를 받자, 서울시는 그제야 해당 직원을 대기발령(23일) 및 직위해제(24일) 했다. 김태균 행정국장은 당시 서울시 직원 성폭력 사건 관련 입장발표에서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당시 인사기획비서관은 1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누구 편을 들려는 의도 없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동료로서 피해자가 걱정되어서 전화했다.성폭력 대응 매뉴얼 프로세스상 피해자가 공식 문제제기 절차를 밟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개시통보가 오기 전에는 직위해제 등 조치를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사건이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조사나 징계조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4년 동안 뼈가 침식됐다.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문제 삼는 게 공무원인 제 안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4월 (성폭력) 사건 피해를 입었다. 골다공증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김 변호사가 전한 피해자의 말이다. 피해자는 고립됐다. 피해자는 병원 상담을 받으며 ‘성폭력 피해 사실 전반’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로 각오했다. 4월 성폭력 사건은 이미 고소한 상태였고, 박 시장에 대해 추가 법적 고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재련 변호사를 찾아갔다.

“두 가해자에게 더하기 아닌 곱하기 피해 당해”

―박 시장에 대한 고소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심정은?

“피해자는 ‘두 명의 가해자에게 단순히 더하기의 피해를 당한 게 아니라, 곱하기의 피해를 당했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박 시장의 지속적인 성적 괴롭힘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피해자는 1차 법률 상담(5월12일)을 받기 전, 이미 자신의 핸드폰을 사설 포렌식 업체에 맡긴 상태였다.”

―김 변호사를 만나기도 전에 피해자가 홀로 포렌식 업체를 찾아간 건가?

“그렇다. 피해자가 최근에 사용한 핸드폰을 맡기며 본인과 박원순 시장의 대화를 추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업체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핸드폰을 돌려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업체가 피해자에게 연락해와 복원을 다시 시도해보겠다면서 ‘사무실과 연결돼 있는 법인과 변호사가 있다. 필요하면 그 변호사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차 상담(5월12일) 때 피해자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런 얘기를 건네는 게 이상하지 않나. 그래서 2차 상담(5월26일)을 마친 뒤 별도의 포렌식 업체에 핸드폰을 맡겼다.”

―4월 성폭력 사건의 미온적 처리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박원순 시장을 곤경에 처하게 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복수심 때문에 대한민국 2인자인 천만 서울시장을 모함에 빠뜨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피해자는 직업공무원이다. 이 사건이 종결되면 다시 공무원 사회에서 근무해야 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가 드러났을 때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박 시장으로 인한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4월 성폭력 사건조차 언급하는 것이다. 대리인인 나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피해자의 안전이 4월 사건을 공개한 이후에 지켜질지 걱정이 된다.”

그러나 피해자가 고소장을 접수한 이튿날, 박 시장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 변호사는 어렵게 용기 낸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상황이 걱정됐다고 했다.

―박 시장은 유서에 ‘모든 분에게 미안하다’ 적었을 뿐, 피해자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 시장의 사회적 이미지와 피해자가 경험한 박 시장의 말이나 행동은 그 괴리가 크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분(박 시장)은 알았고, 그게 피해자의 고소로 인해 드러나게 된 거다. 그런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추측한다. 그리고 그분이 미안하다고 한 ‘모두’에 피해자가 들어 있을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정권과 같은 당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했고 남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를 특정했을 때 미칠 영향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았을까.”


4월22일(위 사진)와 23일(아래 사진) 피해자가 ○○비서관과 통화한 뒤 ○○비서관에게 보낸 문자.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 김재련 변호사가 제공했다.


서울시 인사책임자들의 부인

피해자는 2019년 6월 인사이동 결정이 있기까지 만 4년 이상 비서실에서 일했다. 임용권자가 정한 직위에 2년 이상 계속 근무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본인 희망을 고려해 전보할 수 있다는 서울시 인사규칙과 달리, 피해자는 상급자와 시장의 만류로 부서를 이동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8년 11월 작성된 인사이동 검토보고서도 피해자의 거듭된 요청 때문에 작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직급인 8급의 경우 인사이동 검토보고서가 작성되는 건 이례적이다. 그러나 인사 총책임자였던 비서실장 등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강제추행 방조 혐의로 경찰에 출석하면서 성 고충은 물론 인사 고충도 전해 들은 바 없다고 반박한다.

―이른바 ‘6층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성희롱·성추행 사건을 4년 동안 은폐해왔다고 보는 건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추행 방조 사건은 피해자가 아니라, 제3자(보수 유튜브인 가로세로연구소)의 고발에 의해 시작된 거다.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20명 정도에게 성 고충, 인사 고충을 얘기했다는 건 그 20명이 묵인·은폐·방조·유기의 주범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모 아나운서가 방송에서 “왜 4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나서게 된 건지 궁금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게 아니라, 그 4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주변 동료와 인사담당자, 상급자에게까지 그 고충을 털어놨고, 그런 사람이 적어도 20명 정도가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 사건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피해자가 선량한 20명을 곤경에 처하게 했다”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피해자가 비서 업무에 관해 작성한 인수인계서가 공개됐다. “(박 시장은) 인품도 능력도 훌륭해 배울 것이 많다”, “인생에서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이라 적혀 있고, 이 표현을 문제 삼아 주변인들이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의심하지 못했을 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업무 인수인계서는 피해자가 업무를 힘들어하는 후배를 위해 작성·공유한 거다. 공적 문서에 시장의 성적 괴롭힘을 조심하라는 문구를 포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직자이자 비서로서의 공적 자세와 소명에 대해 후임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선임의 역할이나 의무이기도 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생존자 김지은씨가 쓴 책 <김지은입니다>를 보면, 안 전 지사의 측근임에도 진실을 증언한 ‘문 선배’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건에서 ‘문 선배’ 같이 피해자를 위해 증언해줄 사람은 없나?

“가해자의 위력을 강화시키는 건 관계자들의 침묵과 묵인이다. 가해자가 사퇴하거나, 유죄 판결로 교도소에 가거나, 심지어 사망한 경우에도, 가해자와 관계 맺은 사람들은 그 조직 안에 여전히 포진해 있다. 공무원으로서 인사평정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직원들이 본 사실, 들은 사실을 털어놓는 게 힘들 거라 짐작된다. 특히 이 사건처럼 비서실장과 같은 책임자가 ‘피해자가 인사 고충, 성 고충을 토로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문을 공개 발표하는 ‘시그널’을 줬다면, 입을 여는 게 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들은 내용을 증언해준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 그들이 누구인가?

“피해자가 박 시장으로부터 받은 속옷 사진 보여주어서 본 사람, 늦은 밤 보낸 문자 내용 본 사람, 집무실 내 내실로 불렀던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 피해자가 울면서 성고충 호소하는 것 들어준 사람 등으로 알고 있다.”

“무릎에 호 하며 입술 접촉, 온도라도 측정해둬야 하나”

―추가 증거를 내놓으라는 요구가 여전하다.

“고소사실 증명과 관련한 일부 사진, 텔레그램 복원문자 등은 이미 제출했고, 피해자로부터 그와 같은 사진을 본 사람, 텔레그램 문자를 본 사람들도 수사기관에 출석해서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살인 사건은 눈에 보이는 피해가 있기때문에 사진 찍어 관련 증거를 제출할 수 있겠지만, 성폭력 사건은 피해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된 범죄이기 때문이다. 1차 기자회견에서 ‘호 하면서 무릎에 입술을 접촉했다’는 피해 사실의 일부를 공개했더니 호 한 게 뭐가 문제되냐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더라. 몸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다니거나, 호 하면 입김 온도라도 측정해둬야 하나. 위력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어떤 물리적 증거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김 변호사도 피해자 대리인을 계속 맡아도 될지 고민했다고 들었다.

“7월9일 새벽에 경찰청 고소인 조사를 마치고 그날 아침에 피해자 지원단체 대표분들과 함께 처음으로 피해자를 만난 자리였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 사건에서 대리인에 관한 논쟁으로 본질이 흐려질까 걱정됐고 그래서 사임하게 됐는데, 이 사건도 우려가 됐다. 제가 대리인으로 참여해 다시금 사건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면 대의를 위해 대리인으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단체 쪽에 밝혔다. 그러나 단체 쪽에서는 피해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동안의 피해자 지원 경험을 살려 함께하자고 했다. 난 그저 변호사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피해자가 상담을 요청하고, 변호사로서 봤을 때 죄가 되고 법적으로 판단받아야 하는 사안이라면 사건을 맡는 거다. 상대방이 어떤 정치적인 진영에 있다는 이유로 못 하겠다고 하면 그런 사건은 누가 맡을까.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에 항의 전화로 업무를 마비시키면 어떤 단체가 이런 사건에 나서 피해자를 도울 수 있겠나.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침해된 인격권과 권리를 구제하는 문제이지, 진영과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박 시장은 세상을 떠나 성추행 건에 대해선 ‘공소권 없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피해 방조’ 혐의로 이른바 ‘6층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만 남아 있다.

“범죄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하여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과 그와 같은 범행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문제는 구분될 수 있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형사처벌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지만, 박 시장의 사회적 위치,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 등을 감안했을 때 그의 부하 직원에 대한 지속적인 성적 괴롭힘이 범죄사실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적극 수사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되새기면서 사회 전반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그게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를 요청한 ‘서울시 및 관계자들의 성차별적 직원 채용과 성차별적 업무 강요’ 등 8가지 항목들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서울시가 비서를 채용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게 성적 괴롭힘의 밑자락을 까는 행위일 수 있다. 2015년 6월26일 피해자가 시장실 면접을 본 뒤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을 보면 “시장 비서실 면접을 봤다, 얼굴만 보기 위해 불렀다고 하더라”는 내용이 나온다. 피해자는 비록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메르스 기사 등을 검토하고 갔다. 그런데 정작 면접을 보는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얼굴을 보러 불렀다, ○○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외모를 기준으로 비서를 물색한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게 서울시청만의 문제였을까. 수많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라고 다를까. 박 시장 사건은 너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의 여성인권 수준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야만 사회라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피해자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법에 명시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는 이름으로 퇴행시켰다. ‘네가 피해 입었다면, 우리에게 일단 다 보여봐라’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서 식견을 가진 분들이 침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변호사는 “현행법에는 범죄 피해자가 가명으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는 등(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지침) 그 신원과 사생활을 보호하고(성폭력처벌법)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법률 조력을 지원하도록 하는(성폭력처벌법) 다양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법률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인데, 그의 주체성은 지워진 채 김 변호사에게 휘둘린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와 지원단체에 쏟아지는 공격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는 피해자는 자신을 ‘여러번 죽은 목숨’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피해자의 바람은 단순하다고 한다. ‘어딘가 있을지 모를 또 다른 피해자에게 같은 피해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고한솔 <한겨레21> 기자, 고경태 기자 sol@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