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삿되게 입 연 국방부..秋 얻고, 軍心 잃었다

김태훈 기자 2020. 9. 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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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모르쇠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버티는 편이 나았습니다. 국방부가 그제(10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언론보도 관련 참고자료'는 추 장관과 그 아들만을 위한 편파적 노작이었습니다. 추 장관 측 사람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을지 모를 장교들에게는 근거도 없는 위법 확인서가 됐습니다.

국방부는 추 장관 측을 지키느라 잘잘못 불분명한 부하들을 매정하게 버린 셈입니다. 그나마 하루 만에 국방부 참고자료를 부정하는 국방부의 다른 공문서가 공개됐으니 국방부는 이제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옹색한 처지가 됐습니다.

그제(10일) 배포된 국방부의 추미애 장관 아들 관련 참고자료


● '서 씨 휴가 연장' 적법하다는데…관련 서류는 없다?

국방부의 참고자료는 군인복무기본법, 부대관리훈령 등에서 휴가 연장 관련 조항들을 발췌한 겁니다. 군병원 요양심사 없이도 청원휴가 연장이 가능하고,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전화로 휴가를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을 알뜰살뜰 찾아서 소개했습니다.

참고자료는 추 장관 아들인 서 모 씨의 카투사 휴가 연장 과정이 적법했다고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같은 뜻을 내포했습니다. 국방부 참고자료에 대한 확실한 해석은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으로 이 사안을 담당하다 지난달 보훈처로 자리를 옮긴 이남우 차장의 페이스북에 실렸습니다. 이 차장은 "전화로 휴가 연장하는 건 특권층에게만 허용되는 게 아니다", "부모가 국방부 민원실에 휴가 연장 문의한 게 도대체 무슨 문제냐"고 뭇 언론과 여론을 힐난했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면 전화로 부대에 사정을 알리고 휴가를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휴가 명령이 새로 작성돼야 합니다. 서 씨의 경우에는 휴가 명령서들이 없습니다. 정경두 국방장관도 9월 1일 국회 국방위 회의에서 "서류상의 그런 것들이 안 남겨졌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국방부 참고자료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 안 했습니다. 결국 서류가 없는 책임은 당시 카투사 지원단 소속 육군 지휘관들 몫으로 귀결됩니다. 휴가 명령 없는 휴가는 군무 이탈 즉 탈영이 될 정도로 휴가 명령은 중요한 절차인데도 국방부는 모른 척했습니다. 애꿎은 부하들이 억울하게 곤경에 처할 수 있는데도 외면한 겁니다.

카투사 모임인 디시인사이드 '카투사 갤러리'는 어제 성명을 내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방부가 제시한 자료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서 씨의 병가기록 증발 경위를 밝히라고 국방부에 촉구했습니다. 또 "(국방부 참고자료는) 추미애 당시 당대표실의 보좌관이 서 씨 부대에 전화한 경위, 병가 연장에 외압이 작용했는지 여부를 국민들이 판단할 수 없게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 공문으로 부정당한 참고자료

국방부 참고자료는 "요양심사위원회를 거치는 병가 연장은 입원 중인 경우만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서 씨는 요양심사를 안 받았는데 이는 당시 입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한 절차라는 겁니다.

그런데 서 씨 휴가 석 달 전인 2017년 3월 국방부가 '현역병의 진료 목적 청원휴가 규정 준수 강조 지시'라는 공문을 각 군에 하달한 사실이 어제 드러났습니다. 진료 목적의 청원휴가는 최초 10일이며 연장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군 병원의 요양심사위원회를 거치라는 취지의 공문입니다.

진료 목적 청원휴가 연장시 반드시 요양심사위를 거치라는 국방부의 공문…그제 참고자료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그제 국방부 참고자료는 "입원 중일 때만 요양심사위원회를 거친다"고 했는데 청원휴가 규정 준수 공문은 "연장 시에는 반드시 요양심사위원회를 거쳐야 한다"고 하니 국방부는 얼굴을 들 수 없게 됐습니다. 국방부 공문이 국방부 참고자료를 정면으로 부정한 꼴입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입원 환자에게만 해당된다는 문구가 공문에서 빠졌다", "서 씨가 있던 부대까지는 그 공문이 하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잘못은 공문 자체와 공문 하달 체계에 있다는 겁니다. 어찌 된 일인지 국방부는 이번 사안의 잘못을 하나같이 군 내부에서만 찾고 있습니다.

● 반발하는 현역들

국방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 사실 현역 군인들은 공개적으로 반발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국방부에 대한 냉소와 비판의 웅성거림이 군 곳곳에서 들립니다.

한 현역 장교는 "국방부가 외압에 알아서 기어 다니고 있다", "군의 행정 착오로 몰고 가서 육군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장교는 "여당 대표인 부모와 여당 대표의 보좌관이 전화하고 들쑤시면 아무리 간 큰 간부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내년에 전역하는 한 부사관은 "우상호 의원이 '편한 군대'라고 하는 카투사인데 부모, 보좌관이 돌아가면서 전화할 이유도 없지 않나", "군인을 자식으로 둔 모든 어머니는 국방부 민원실로 전화할 수 있다지만 그 어머니가 여당 대표라면 민원실 통해 연락받은 부대는 여당 대표의 요구를 받은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그는 "국방부가 권력 눈치 보느라 부하를 내팽개치는데 어떤 군인이 국방부 믿고 적과 싸우겠나"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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