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자중지란, 낙동강 오리알..사분오열 '의료계'

서소정 2020. 9. 1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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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 의협, 의대생 구제책 '정치적 해결해야 할 문제' 입장
'자중지란' 전공의, 한 목소리 내지 못하고 업무 복귀
'낙동강 오리알' 의대생, 국시 거부 철회 놓고 장고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조현의 기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집단휴진을 끝내고 의료현장에 복귀한 가운데 투쟁의 마지막 주체인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고시 철회 및 응시 여부를 두고 장고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예과 1학년부터 본과 3학년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의대생 내부에서도 이미 투쟁의 동력과 명분을 상실했다는 회의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본과 4학년 학생들은 국시 거부 지속에 관한 내부 논의를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의대협 내부에서는 '의료정상화를 위해 단체행동을 멈출 수 없다'는 강경파와 당장 국시를 봐야 하는 본과 4학년 학생들의 현실론적 입장이 대립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의대생 퇴로 찾지 못해 우왕좌왕= 의대생들은 퇴로를 찾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낙동강 오리알'에 비유했다. 전날 의대협은 호소문을 통해 "학생으로 시작해 학생으로 끝내겠다. 선배님들, 이 조용한 투쟁에 부디 함께 해달라"며 "선배님들은 병원과 학교로 돌아갔다. 학생들은 홀로 남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고 토로했다.

실제 개원의가 중심이 된 의협은 지난 4일 여당·정부와 합의를 통해 의료파업을 멈췄다. 파업의 주축이었던 대전협 역시 내부 의견을 통일하지 못해 기존 비상대책위가 총 사퇴하고 새로운 비대위까지 꾸렸으나 결국 투표를 통해 전원 업무에 복귀했다. 의대협만 남아 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더이상 명분과 실리가 없다며 국시에 응시해야 한다는 현실론에 무게가 실리는 입장이다.

한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의과대학 학생 게시판에는 "의대협 동맹휴학 계속한다는데 우리도 계속하는 거냐,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데 대체 왜 계속하냐'는 불만의 글이 올라왔다. 국시를 봐야하는 본과 4학년들의 고민과 불안은 더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생은 "솔직히 이대로 국시에 응시하지 않는다면 이번에 응시한 학생들한테 좋은 일만 한 것 아니냐"면서 "다음 해 국시 응시률이 높게 치솟으면서 내부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텐데 투쟁의 순수성만 생각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의대생들이 단체행동을 지속하기로 결론냈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의대생은 "의과대학의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돌출된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면서 "국시 거부 및 동맹 휴학의 파급이 적지 않은 것을 아는 상황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의대협이 응시 의사 밝혀야"= 정부는 추가 시험이나 접수 기한 연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지만 의대생들의 요구가 있을 시 추가 시험 검토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긋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대협에서 국시 응시 등 단체행동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가져오면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부는 의대생들이 '자유의지'로 국시를 거부하기 때문에 구제책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은 "의협과 정부 간 합의 내용 중 의대생들의 추가 시험에 대한 내용은 없다"면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시험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계가 정부에 추가 시험을 검토하라고 하는 요구는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손 대변인의 발언은 '추가 시험은 없다'로 해석되지만 '의대생들의 공식 요구가 있을 시 고려 가능하다'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국민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의대생들이 단체행동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시에 응시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는다면 추가 시험이 원천 불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 국시 관리기관인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이윤성 원장은 "복지부가 결단만 해주면 국시원은 그에 맞게 준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의대생 국시 거부에 따른 의사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서도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올해 국시 미응시자가 전체 86%에 달하는데 이들이 1년 유급하면 당장 수련병원 인턴과 공중보건의, 군의관 모집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연일 "적절한 배치 조정과 역할의 재조정, 인력의 확충 등을 통해 인력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

의료계 역시 의대생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할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의정 합의에 따라 정부는 온전한 추가 시험을 시행해야 한다"면서 "국시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장단기로 매우 크다"고 경고했다.

진료 현장에 복귀하면서 의대생에 대한 구제가 없을 시 또다시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한 의협과 전공의도 마찬가지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응시 구제책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사태가 진화되지 않자 의료계 원로들이 나섰다. 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와 사립대학교병원협회, 국립대학교병원협회, 상급종합병원협의회, 대한수련병원협의회 등 5개 단체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 가운데 모두의 불편과 불안을 초래한 의료계 사태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우리 학생들이 오늘의 아픔을 가슴깊이 아로새기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의료계의 선배들과 스승들을 믿고 한번 더 기회를 달라"며 시험거부 의대생에 대한 구제를 호소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서울대 본과 4학년생들이 국시 거부에 81%가 반대 입장을 나타냈고, 다른 대학에서도 국시에 응시하고 싶다는 의사가 상당수"라면서 "하지만 정부의 구제가 확실하지 않은 데다 퇴로가 마땅히 없어 장고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업계 관계자는 "의협·전공의·의대생들의 이해관계와 입장이 조금씩 다르면서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의료계가 연일 분열되는 상황에서 국민 여론만 더욱 안좋아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조현의 기자 hone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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