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플라스틱 가득한 해산물.. 매주 '신용카드 1장' 먹는다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남혜정 입력 2020. 9. 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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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부메랑 된 바다 쓰레기
2019년 해안쓰레기 중 81%가 플라스틱
담배꽁초·노끈 등 미세플라스틱 주범
정어리 몸속에서 쌀 한 알 무게 검출
지난달 20일 세계자연기금(WWF)과 서울대, 제주대, 해양환경단체 관계자들이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상괭이 등 해양보호생물 부검을 하고 있다. WWF 제공
지난달 20~21일 이틀간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해양보호생물 부검이 실시됐다. 국제 비영리기구인 세계자연기금(WWF)이 서울대와 인하대, 제주대 등과 함께 제주 바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부검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6월까지 제주 해안에서 사체로 발견된 상괭이, 남방큰돌고래, 참돌고래 중 보관 중이던 각 1마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구체적인 사인은 달랐지만 모두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상괭이는 자궁이 열려 있던 상태로 출산이 임박한 만삭인 상태에서 인간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상괭이 폐에 포말이 가득한 것으로 미뤄보아 그물에 걸려 물 위로 나와 숨을 쉬지 못한 것이 사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얼굴이 미소 짓는 듯 보인다고 해서 ‘웃는 고래’로 잘 알려진 상괭이는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다. 해마다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어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보호종이고 국내에서는 보호대상 해양생물로 지정돼 있다.

지난 1월 제주 바다에서 사체로 발견된 크기 약 13m, 무게 12t의 참고래를 부검한 결과 소화관에서 플라스틱 가닥, 어망조각, 스티로폼 입자 등 53개의 플라스틱 입자가 나왔다. 특히 길이가 1m가 넘는 긴 낚싯줄 조각도 섞여 있었고 낚싯줄 일부는 고래 수염판에 얽혀 있었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해양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해양생물이 먹이로 착각해 삼키거나 그물 등 부유물에 걸려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단순히 해양생물의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해양생물의 몸속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 중 일부는 먹이사슬 가장 위쪽에 있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지난달 16일 제주 사계 해변에 스티로폼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는 모습. 녹색연합 제공
◆“담배꽁초, 마스크, 스티로폼 조각… 플라스틱에 오염된 국내 해안”

9일 환경단체 환경운동연합이 전국의 동서남해안 지역에서 쓰레기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 해양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플라스틱 소재 쓰레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전국 17개 지역의 시민 66명이 지난 7월11일부터 8월8일까지 수집한 3879개의 쓰레기를 분석한 결과다.

가장 많이 수거된 쓰레기는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키는 ‘담배꽁초’(635개)였다. 담배꽁초의 필터는 90% 이상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바다로 떠내려갈 경우 미세플라스틱으로 자연 분해돼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각종 비닐봉지 및 포장재(과자, 라면 등)가 391개로 2위를 차지했고, 그물과 무게추 등 어구(300개)가 3위였다. 이어 일회용 플라스틱컵(음식포장용기)이 297개, 음료수병 296개 등이 뒤를 이었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포함해 각종 비닐봉지 및 포장재의 경우에는 잘 찢어지지 않고 바람을 통해 쉽게 멀리 날아갈 수 있어 수거가 쉽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바다로 흘러간 일회용 장갑과 비닐은 해양생물들에게 마치 ‘해파리’처럼 보여 해양생물들이 먹이로 착각해 섭취하기 쉽다고 이 단체는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일회용 마스크는 환경오염의 또 다른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앞선 다른 조사와 달리 일회용 마스크(81개)도 적지 않게 발견됐다. 대부분의 일회용 마스크는 아주 가는 실 형태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소재의 필터로 자연에서 잘 분해되지 않아 버려질 경우 심해를 떠돌며 해양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

제주도 바다 역시 미세플라스틱 주범인 스티로폼, 노끈, 비닐 등이 곳곳에서 흔하게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지난달 16, 17일 이틀에 걸쳐 제주 함덕과 사계, 김녕 등 해변 3곳을 조사한 결과 스티로폼, 노끈, 플라스틱 조각, 비닐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플라스틱 생산 원료로 사용되는 펠릿(작은 플라스틱 조각형태)까지 해안에서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해양수산부와 해양환경공단이 발간한 ‘국가 해안쓰레기 일제·모니터링 조사용역’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해안에서 발견된 쓰레기 중 개수로 약 81.2%, 무게로는 약 65.7%가 플라스틱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40개 해안을 6회에 걸쳐 조사해 약 3만720개, 무게 2698.4㎏의 쓰레기를 분석했다. 항목별로 가장 많이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스티로폼 파편이 1위로 3815개(플라스틱의 15.3%)였으며, 2위는 섬유형 밧줄 3376개(13.5%), 다음으로는 음료수병과 각종 뚜껑 2954개(11.8%), 경질형(플라스틱 형태) 파편 2499개(10.0%), 발포형(스티로폼 형태) 파편 1869개(7.5%) 순이었다.
◆인간에게도 악영향… “플라스틱 사용 규제 강화해야”

바다로 유입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돌고 돌아 사람들의 식탁 위로 돌아온다.

지난해 WWF와 호주 뉴캐슬대학교는 ‘플라스틱 인체 섭취 평가 연구’를 통해 한 사람이 매주 먹는 미세플라스틱양이 신용카드 한장 분량(약 5g) 정도라고 밝혔다. 동물성 플랑크톤부터 고래에 이르기까지 미세하게 부서진 플라스틱 알갱이들을 먹이와 구분하지 않고 섭취하면 플라스틱은 이들 체내에 축적된다. 결국 먹이사슬을 따라 지속해서 순환하다가 생선과 새우, 소금, 조개 등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된 식품을 사람이 먹게 되고 이는 인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엑서터대학과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연구팀으로 구성된 과학자들이 호주시장에서 판매되는 해산물을 분석해보니 모든 제품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연구팀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꽃게와 굴, 새우, 오징어, 정어리 등 해산물을 수거해 먹을 수 있는 부분을 떼어내 플라스틱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오징어는 조직 1g당 약 0.04㎎, 새우 0.07㎎, 굴 0.1㎎, 꽃게 0.3㎎, 정어리 2.9㎎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정어리에서 발견된 플라스틱양은 쌀 한 알의 무게와 맞먹는다. 일상에서 흔히 먹는 해산물을 통해 우리도 지속적으로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0일 세계자연기금(WWF)과 서울대, 제주대, 해양환경단체 관계자들이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상괭이 등 해양보호생물 부검을 하고 있다. WWF 제공
녹색연합 허승은 활동가는 “미세플라스틱은 수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버려진 뒤 수거하기보다는 버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플라스틱 생산과 사용 억제”라며 “1차 미세플라스틱의 발생 비중이 높은 농업 및 원예제품, 기타 화장품류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하고 2차 미세플라스틱인 스티로폼 부표 사용을 원천 금지하는 등 플라스틱의 생산과 사용을 억제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럽, 2021년부터 역내서 일회용 접시·빨대 사용 금지

미국 등 전 세계 각국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해양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협력 강화, 플라스틱 사용 규제 등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9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미국 SOS(Save Our Seas)법 개정과 국제사회의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공화당 상원의원이 제출한 법안 ‘SOS 2.0’이 지난 1월 상원을 통과해 하원 표결만 남겨두고 있다.

SOS법은 미국의 해양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법안이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을 주무부서로 두고, 관련 부처가 모인 ‘해양쓰레기 대책 조정위원회’(IMDC)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해양쓰레기법’(2006)의 개정안이다.

SOS 2.0 법안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미국 주도하에 해양쓰레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또 해양쓰레기 처리 역량 강화를 위해 ‘해양쓰레기 대응 신탁 기금’을 조성해 심각한 해양쓰레기 사태 발생 시 NOAA가 이 기금을 활용해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각국은 해양쓰레기의 주범인 플라스틱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 규제 및 재활용 활성화 정책 마련도 고심 중이다.

앞서 2015년 유엔은 향후 15년간(2015~2030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7개 중 하나로 ‘해양생태계 보호’를 선정하고 첫 번째 세부목표로 ‘2025년까지 육상기반 활동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해양오염을 예방하고 이를 상당한 수준으로 감축할 것’을 내세웠다.

2018년 G7 정상회의에서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지의 55% 이상을 재사용·재활용하고, 2040년까지 모든 플라스틱을 100%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해양플라스틱 헌장’이 채택됐다. 이어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추가 발생량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오사카 블루 오션 비전’이 합의됐다.

유럽의회는 2021년부터 역내에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나 빨대 등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안을 2018년 12월 의결했다. 플라스틱이 포함된 담배꽁초의 경우 2025년까지 50%를, 2030년까지 80%를 감축해야 한다. 또 2025년까지 유실되거나 버려진 플라스틱 어구의 50% 이상을 수거하고 그중 15% 이상을 재활용해야 한다. 특히, 플라스틱으로만 만들어졌거나 플라스틱이 일부 함유된 어구에 대해 2024년 12월31일까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하도록 했다. EPR에 따라 어구 생산자는 새로운 어구 생산 및 처리 제도에 맞춰 어구를 제작해야 하고, 폐어구의 분리수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2007년부터 ‘해양환경관리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개괄적인 규정만 있을 뿐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 퇴적물의 실태조사, 수거처리 등을 포괄하는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부터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 퇴적물 관리법’이 제정돼 시행될 예정이다.

보고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해양쓰레기 관련 업무를 해양수산부, 지자체,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부처에서 각각 담당하고 있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에 제약이 있다”면서 “미국의 IMDC 사례 등을 참고해 해양쓰레기 문제 처리를 위한 다부처 위원회의 설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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