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조국과 추미애의 기사를 쓰는 마음

박태인 2020. 9. 1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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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인 사회1팀 기자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기사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고소를 당한다. 그들 지지자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신상도 털린다. 작은 변화라도 만들려 택한 직업이다. 하지만 두 전·현직 장관은 어떤 기사에도 흔들림이 없다. 이 일을 하는 게 시간 낭비라 느껴질 때가 있다.

조 전 장관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에 출석했을 땐 자괴감이 들었다. 검찰이 지난해 인사청문회와 대정부질문, 기자간담회에서 “왜 사실과 다른 말을 했나”라고 묻자 조 전 장관은 증언거부권을 외쳤다. 막상 법정에서 형사소송법 148조만 반복하는 조 전 장관을 보면서 “그가 말한 ‘법원의 시간’이 결국 이런 거였나”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들의 전 군 지휘관이 실명으로 “청탁이 있었던 건 사실”이란 입장문을 냈다. 그제서야 추 장관은 SNS로 유감 표명을 했다. 하지만 “딱히 절차를 어길 이유가 없었다”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황희라는 여당 의원은 청탁 의혹을 폭로한 전 당직사병의 실명을 공개하며 정치공작을 언급했다. 어떤 기사에도 꿈쩍하지 않고 역공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아들 병역 특혜 의혹에 휩싸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모습. [뉴시스]

하지만 이들은 너무나 중요한 공직을 맡았고, 또 맡고 있다. 법무부의 영문명은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다. 두 사람은 마치 사인처럼 행동하지만 완벽한 공인이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무부 장관의 영문명을 직역하면 정의부 장관(Minister of Justice)”이라며 추 장관을 비판했다.

지난해 조 전 장관이 사퇴할 때도 조 의원은 “공정과 정의, 기회의 평등이라는 가치와 배치되는 팩트들이 나와 괴로웠다”고 했다. 정의(正義)를 다루는 공직자라면 당연히 정의로워야 한다. 이 간단한 명제를 말하는 것에 왜 괴로워 해야 할까.

최근 법원 판결로 의사자(義死者)라 인정된 고(故) 임세원 교수에 대한 기사를 쓰며 이런 생각들이 몰려왔다.

임 교수는 2018년 12월 31일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했다. 살해당하기 직전까지도 주변 간호사를 대피시켰다. 그의 유가족은 장례식 중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낙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의금 1억원은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이처럼 아프지만, 마음을 울리는 정의로운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 믿었다. 모두 지난 1년간 조국과 추미애 사태를 취재하며 잊어버린 것들이다. 거기엔 진영과 피아만 있었다. 기자가 된 지 만 4년이 조금 넘었다. 쓰고 싶은 것만 쓸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알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한다.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다. 써야만 하니까 쓰는 거다.

박태인 사회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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