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우린 매우 위험한 순간에 직면..국가 명령 통제에 길들여져"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20. 9. 14. 03:06 수정 2020. 12. 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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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향 사회학자'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지금까지 ‘코로나 방역’ 성적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매우 위험한 순간에 놓여있다. 국가 명령 통제 체제에 길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고 권력자의 나쁜 의도만으로 이렇게 된 건 아니다.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시민들의 요구로 권위주의 흐름이 정당화되고 있다.”

한상진(75) 서울대 명예교수는 실내에서 낡은 모자를 쓴 채 나를 맞이했다. 그는 대표적인 진보 성향 사회학자다.

한상진 명예교수는 “정권은 권력 강화를 위해 공포심을 집어넣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노무현 정부에서 ‘광복 6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에는 민주통합당의 대선 패배 원인을 규명하는 ‘대선평가위원장’, 2016년에는 국민의당 ‘창당준비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학자로서 사회이론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30개 도시 시민들 코로나 의식 통계조사’를 했다. 코로나 비상 조치를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향후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지에 관한 연구 조사였다.

정부의 공포심 조장

-문재인 대통령은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과 개인의 자유가 한낱 행정명령으로 제한되는 일이 너무 쉽게 벌어지고 있는데?

“요즘 독일·프랑스 지식인 그룹에서는 이를 ‘예외 국가’라고 부른다. 긴급 명령 체제로 국민을 겁주고 압박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다. 위기 관리를 위해 통치를 법의 지배 위에 두는 방식이다. 예외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독재’ ‘코로나 계엄’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나라에서 이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 상황이 단막극으로 끝날지, 코로나 종식 뒤에도 이렇게 계속 갈지 학자들 간에 논쟁이 있다. 후자 쪽 견해가 더 많다. 국가 명령 통제 체제에 시민들이 순치되면서 코로나가 끝난 뒤에도 새로운 독재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방역에 성공한들 우리의 미래를 잃게 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권은 처음부터 국가 기구와 권력, 재정을 동원해 과도하게 개인과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주의’ 성격이 강했다. 코로나 상황이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 것인데?

“코로나가 더욱 확신을 줬다고 본다. 국민 기본권을 통제하거나 재정을 마음대로 쓰지만 누구도 저항하기 힘들어졌다. 야당까지 박수 치고 있지 않나. 현 정권이 코로나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증거는 없지만 통치에 유리해진 것은 틀림없다. 노무현 정권 실패의 악몽이 있으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뒤집어놓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뒤집는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바꾸겠다는 것을 말하는가?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자의식을 갖고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조건이 갖춰졌고 그렇게 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국민은 현 상황에 굉장히 경각성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 방역 조치에 기본권과 개인의 자유, 사생활이 침해되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은 절박한 생계 문제에 직면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전혀 저항을 못하고 있다.

“이게 큰 문제다. 정권 입장에서는 굉장히 행운의 기회가 됐다. 정권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역대 어느 정권도 누리지 못한 유리한 통치 수단(코로나)을 갖게 됐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는 ‘생명과 안전을 위한 방역’보다 ‘개인 자유’를 택하겠다며 시위도 벌어지는데?

“서방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전통이 있다. 또 가짜 뉴스일지 모르나 코로나와 관련된 의혹도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의 방역 조치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 이견을 내는 것조차 금기처럼 되고 있다.

“정부가 최대한 공포심을 불어넣는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고 보나?

“현재 백신과 치료제가 없기에 코로나 위험성 자체는 거짓이 아니지만..., 정부로서는 당연히 공포심을 불어넣어야 한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꾸준히 강력하게 공포심을 집어넣는 게 유리하다. 악의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방송에서 매일 ‘확진자 몇 명’ ‘소모임 갖지 말라’ 등 천편일률로 쏟아낸다.”

-방송과 문자메시지로 실시간 교통사고 사상자를 지금처럼 생중계하면 자동차도 치명적인 위험물로 분류될 것이다.

“지금은 국가가 지시하면 개인은 따르라는 식으로 됐다.”

-정부가 술집·음식점·PC방 등을 모두 틀어막자, 젊은이들은 편의점이나 한강시민공원으로 몰렸다. 이를 청춘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봐야지, 매스컴은 이들이 큰 죄를 범한 것처럼 비난조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면 정부는 통금 조치 발표하듯 또 그쪽을 막아버리는 식인데?

“코로나 상황에서 생명 안전이 우선이라는 쪽과 개인 자유나 경제를 위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쪽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압도적으로 전자 쪽이다. 지금의 정부 방역 조치는 이런 국민 다수의 의사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

헤게모니 장악

-미국·유럽 등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문화가 아니었고 초기 대응에 실패해 고위험군 사망자가 속출했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지금까지 코로나 방역 성적표에서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인들은 감기에 자주 걸려 코로나에 저항력을 갖고 있다는 설도 있다.

“우리의 방역 성과는 상당 부분 국민의 협조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인보다 가족·친구·회사 등 공동체에 피해를 안 주겠다는 마음이 컸다. 서구인들과 달리 알아서 마스크를 착용해왔다. 우리 국민의 가치관이나 정보 능력 수준이면 일방적인 국가명령 통제 방식이 옳은 게 아니다.”

-코로나 치사율은 0.1~1%다. 국내 사망자는 코로나 발생 뒤 8개월 동안 400명 안쪽이다. 독감의 경우 심할 때 한 해 5000명쯤 죽는다. 과잉된 공포심으로 이런 객관적 통계 수치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경제·교육·문화 등을 거의 올스톱시키면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 그룹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 그룹도 그렇지만, 현 정권이 어떤 방역 조치를 해도 ‘옳소’ 박수 치는 야당이라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야당은 코로나 상황에서 정말 능력이 없다는 걸 보여줬다.”

-지금 분위기로 야당이 방역 조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가능하겠나?

“현 정권이 ‘국가주의’로 몰고 가고 있으니, 야당은 파괴된 상식을 복원하는 쪽으로 저항해야 한다. 방역의 주체가 시민임을 알려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명령으로 누르지 말고, 시민이 왜 개인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하고 향후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모색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모호하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령 코로나 상황에서 학교 대면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전국의 학교에 일사불란하게 열고 닫으려는 게 국가지상주의 발상이다. 지역마다 다른데 왜 그렇게 해야 하나. 이번 코로나 의식 조사에서 가장 충격은 586세대의 국가주의자 변신이었다.”

-무슨 근거에서?

“세계 30대 도시 시민들은 대부분 ‘통치’보다 ‘법치’ 우위의 시각을 보였다. 비상조치도 법 절차와 테두리 안에서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586세대는 법을 넘어선 통치를 선호하는 정도가 어느 나라 어느 집단보다 너무 높았다.”

-586 운동권 조직 내부의 작동 메커니즘은 전체주의적이었다. 낭만적인 시각으로 이들을 바라본 게 아닌가?

“운동권만이 아닌 80년대 대학생 세대 전반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 시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 세대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만큼 강력한 ‘국가주의자’로 변신해있었다. 내게는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게 왜 선생에게 고통스러운 일인가?

“나는 1980년대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탈(脫)인습적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은 적 있다. 이들이 사회 변혁 주체로서 우리 사회를 바꿀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586세대는 학창 시절 민주화 의식과 함께 좌파 이념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다. 그 운동권 세력이 현 정권을 장악하자 우리 사회는 시대착오적 좌편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이들이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실패한 모델인 사회주의로 돌아갈 것으로 보지 않는다. 현실 판단 능력이 그렇게 결여되진 않았을 것이다.”

-현 정권에서 만들어진 상황을 보고도 그렇게 말하나?

“정권 출발 당시의 목표와 가치, 방향 설정은 옳았다고 본다. 적폐 청산, 공정 분배, 남북 관계 복원 같은 것은 필요했다. 하지만 추진 과정과 방법에서 문제가 있었다.”

-현 정권은 촛불 세력과 높은 지지율 등 성공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왜 실패로 가는 선택을 했을까?

“이들의 머릿속에는 과거 노무현 정권의 실패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확실한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했다. 사법부·입법부·헌법재판소·언론까지 장악해나갔다. 하지만 힘으로 밀어붙이고 진영을 가르는 운동권 전술을 쓰면서 실패했다. 자만에 빠져 자기 검증이 없었고 국민의 평균적인 상식을 우습게 봤다.”

野黨의 존재 이유

-현 정권의 폭주에는 야당의 책임도 크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를 어떻게 보나?

“한 사람에 의존하는 것은 근대 정당의 개념으로 있을 수 없다.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보수 정당의 전통과 정체성이 있는데, 외부 명망가에 의존해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으로 본다. 이는 당 구성원들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보수 정당이 김종인 한 개인의 생각을 구현한 정당 비슷하게 됐다. 그럼에도 당내 여론은 김종인 체제에 만족하는 것 같은데?

“싸우지 못하는 야당은 존재 이유가 없다. 정권을 되찾으려면 야당답게 싸우면서 자신의 차별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보여줘야 한다. 야당은 ‘국가주의’와 구별되는 상식을 가진 시민들, 당 바깥에 있는 상식적 시민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지금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 이게 진짜 야당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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