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휴지 줍는 할머니와 한끼 영상 찍고 제 일에 확신 생겼죠"

강성만 2020. 9. 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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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단앤조엘’ 유튜버 단

유튜브 채널 <단앤조엘>을 운영하는 영국 청년 단. 단 제공

‘진짜 한국을 보여준다. 그래서 좋다.’

구독자가 27만 명 가까운 유튜브 채널 <단앤조엘>의 한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영국 남자 단(본명 다니엘 브라이트·29)과 조엘(조엘 베넷·32)이 2017년 9월 시작한 이 채널은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단이 삶에 지친 한국인과 따듯한 한 끼 밥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설하고 한 달은 주로 유쾌한 먹방 콘텐츠를 올리다, 우연히 서울 광장시장에서 한 어르신과 나눈 대화 장면을 찍은 뒤 인간미 나는 사람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단다.

지난해 말 올린 ‘폐휴지 나르는 할머니와의 먹방’ 편은 조회 수가 58만이 넘고 댓글도 4200개나 된다. 할머니를 배려하며 대화를 이끄는 단의 따듯한 태도와 한국어 능력을 칭찬하는 내용이 많다. 단은 올해 초 올린 ‘서울역 노숙인과의 먹방’에서도 공감과 배려의 언어로 게스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고단한 인생 스토리를 끌어냈다. 최근 에세이집 <“저 마포구 사람인데요?”>(한겨레출판)를 낸 단을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폐휴지 나르는 할머니와의 먹방’ 영상 중 일부. 유튜브 화면 갈무리

단은 시장이나 거리에서 만난 한국 어르신에게 꼭 ‘어렸을 때 뭘 드셨어요?’ ‘고기 드셨어요?’라고 묻는다. ‘고기 드셨다는 어르신이 많을 것 같지 않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받았다. “사실 저도 잘 알아요. 알고도 묻죠. 그래야 ‘아니야 고기 못 먹었어, 강냉이죽 먹었어’ 이렇게 답이 나와요. ‘그때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면 ‘힘들었다’는 답 정도만 들어요. 어르신들은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르치고 설명해주는 것을 좋아해요. 더 많은 걸 들을 수 있죠.”

단이 최근 펴낸 에세이집 표지

단은 영국 웨일스 지역에서 고교까지 나오고 대학은 런던소아스대학에서 한국학과 언어학을 전공했다. 스스로 ‘웨일스 촌놈’이라고 하는 이유다. “원래는 옥스퍼드 대학의 피피이(철학, 정치학, 경제학) 과정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거기 나오면 영국 어디에서든 알아주거든요. 그런데 수학 점수가 좋지 않아 못 갔어요. 한국학은 그때 사귀던 한국 여학생이 귀국한다고 해서 저도 한국에 가려고 선택했어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요.”

그는 2012년 한해 고려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체험했고 대학을 나온 뒤 런던에서 한국 공기업에 취업해 2년 일하다 2017년 9월 전업 유튜버로 살려고 한국에 왔다. 재작년 2월에는 6년 전 런던에서 만난 경상도 출신 한국 여자와 결혼해 아들도 있다. 조엘은 대학 선배인 조슈아 캐럿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영국 남자>에 함께 출연하며 친해졌단다. “<영국 남자>에서 조엘은 재밌고 매운 거 잘 먹고, 저는 한국말 잘하고 엄청 많이 먹는 캐릭터였어요. <단앤조엘> 초기에는 이런 설정을 유지하다 광장시장 먹방 편부터 다큐 형식으로 우리 채널의 차별성을 찾았죠.”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딱 3개월만 유튜브에 집중하자”는 생각이었단다. “다큐 제작 경험이 있는 조엘이 있어 가능했죠. 혼자라면 도전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결혼 전이라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 없었고요.” 채널에서 단은 영상 기획과 진행을, 조엘은 연출과 영상 편집을 주로 맡는다.

채널 인기에는 단의 한국어 실력도 한몫한다. “그 시절엔 일본놈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었잖아요.” 단이 올해 85살인 모래내 시장 국밥집 할머니와 대화하며 한 말이다. 한국인처럼 말한다고 하자 그는 “한국어 문법 실력이라기보단 문화적 이해의 문제”라고 했다. “일본놈이란 표현은 제가 일부러 했어요. 그 말에 웃기다, 재밌다는 댓글도 예상했어요. ‘역시 국산은 다르다’ 같은 표현도 그렇죠. 웃음 포인트입니다. 주변 한국 사람들의 문화적 인식과 말하는 태도를 관찰하면서 많이 배웁니다. 제가 만약 스시 먹방을 하면서 ‘일본놈들이 스시 잘 만든다’고 하면 욕을 먹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부족해요.”

영국 친구 조엘과 3년 전 개설 삶에 지친 어르신과 한끼 식사 등 다큐 형식의 사람 이야기에 초점 구독자 27만 … 최근 에세이집도

출중한 한국말 능력도 인기 요인 “시골 어르신 한식 레시피 책도 쓸터”

광고 클릭 수에 좌우되는 유튜브 수입은 한 사람 생활비 정도란다. 그가 주 이틀 동안 외주 다큐 제작을 따로 하는 이유다. “가족이 있으니 더 벌어야죠. 요즘은 애니메이션 회사 의뢰로 작가와 작곡가 인터뷰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폐휴지 나르는 할머니와의 먹방’은 <단앤조엘> 구독자를 한달 새 2만 명 늘려주었단다. “집 근처에서 1년 가까이 봐온 분입니다. 할머니를 볼 때마다 인사드리고 ‘오늘 김치찌개 드실까요, 식사 잡수셨어요’ 하고 말을 건넸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내가 사야 하는데’ 그러셨죠. 그렇게 인사를 나눈 지 1년 만에 할머니에게 순두부찌개를 대접했죠. 이 영상을 찍은 뒤 제가 하는 작업에 확신이 생겼어요.” 그는 “추운 겨울에 나이 드신 분이 100kg이 넘는 폐휴지를 수레에 싣고 끌고 다니는 모습은 영국에서는 볼 수 없다”고도 했다.

단은 아일랜드와 영국 이중 국적자다. 영어 교사로 일한 어머니가 아일랜드계이고 농업경제학 교수를 지낸 아버지는 잉글랜드 출신이다. 그가 지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데는 부모의 영향도 있다. “부모님이 웨일스 우리 집에서 난민을 많이 보살폈어요. 중병으로 시한부 진단을 받은 30대 시리아 난민 형을 3년 가까이 데리고 계셨고, 토고 난민도 2년 정도 있었죠. 어머니가 주말이면 노숙자 밥을 챙기는 자원봉사도 하셨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렇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겠죠.”

그는 재작년과 작년엔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모래내 시장의 오랜 밥집들’과 ‘폐휴지 줍는 어르신’을 주제로 사진전도 했다. 작년 7월엔 온라인 과정으로 런던예술대(UAL) 포토저널리즘 석사 학위도 땄단다.

“어떤 분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썼더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을 묻자 단이 한 말이다. “관객이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보고 흘리는 눈물은 음악이 슬펐다든지 이유가 있잖아요.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것은 그만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받았다는 거 아닐까요.”

공공성을 내세우는 한국의 방송채널이 해야 할 일을 <단앤조엘>이 감당하는 것 같다고 하자 그의 답은 이렇다. “방송들이 하지 않는다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감이 없어서 그럴 겁니다. 콘텐츠가 재미 없으면 사람들이 빨리 채널을 바꾸잖아요. 우리는 두 사람이라 큰 부담이 아니죠. 조회 수가 안 나오면 빨리 재밌는 먹방 하면 됩니다. 하지만 방송사는 상업적 압박이 클 겁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들은 스토리를 그대로 전하려고요. 그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죠.”

그는 책에 유튜브를 하는 목적 중 하나는 자신의 삶에 만족과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한국에서 충분히 재미있게, 희망차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썼다. “한국에 와서 헬조선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젊은이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나이 들면 똑같이 어려워도 내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조엘과 저는 유튜브로 ‘희망의 조선’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을 영상에 담아서요.” 그가 타투에서 생의 의미를 찾은 여성 타투 예술가 기유빈을 찾아 영상에 담은 것도 그런 열망에서다.

계획은?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조금 더 긴 다큐를 만들고 싶어요. <한국방송>처럼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플랫폼에 우리가 만든 다큐도 내보내고 싶어요. 넷플릭스 시리즈로도요.” 포부가 이어졌다. “한국어로 소설도 쓰고, 한국 시골 구석구석을 찾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귀한 한식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도 쓰고 싶어요. 하나 더요. 영국에 계신 어머니와 한 끼 나누는 먹방도 언젠가 꼭 하려고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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