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國軍인가 黨軍인가

원선우 기자 2020. 9. 1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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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선우 정치부 기자

10년 전 강원도 전방에서 포병 관측장교로 복무했다. 임무는 적(敵) 규모와 위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관측장교의 상황 보고가 잘못되면 전투에서 패배, 아군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고 육군포병학교 교관들은 가르쳤다. 일선 부대에서 인원·총기 현황 보고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 어느 조직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군대에선 ‘사실’ 이외 어떠한 해석이나 각색도 허락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 국가의 존망(存亡)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가 군(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이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을 노골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면, ‘상황 보고’의 정확성을 강조하던 그 대한민국 국군(國軍)이 맞는가 싶다. 추 장관 아들은 ’23일 연속 휴가'를 받았다. 이례적인 장기 휴가를 두 차례 전화로만 연장했고, 그중 19일 병가는 휴가 명령서와 진료 기록 등도 남아있지 않은 정황이 나타났다. 군 당국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추 장관 부부, 보좌관, 집권 여당 대표실, 국방부 장관실이 일제히 나서 아들의 자대 배치, 통역병 선발, 휴가 연장 등에 전방위적으로 관여한 정황도 나타났다. 하지만 군은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식이다. 정권 실세의 아들을 감싸기 위해 국군의 기강 자체를 허문다는 느낌마저 준다.

군에 대한 문민(文民) 통제는 엄격해야 한다. 특히 군사 반란으로 두 차례나 정권을 찬탈당하고, 30년 가까이 군부독재에 신음했던 우리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문민 통제 못지않게 중요한 원칙이 군의 ‘정치적 중립 준수’(헌법 제5조)다. 하지만 최근엔 그 기본적인 정치적 중립 원칙조차 허물어지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방부는 지난 9일 국회에서 만나 추 장관 관련 사안을 논의했다. 그다음 날 국방부는 추 장관 아들 휴가 의혹에 대해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 장관 측 변호인과 여당, 국방부의 ‘대응 논리’도 입을 맞춘 듯 비슷하다.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우리 육군 장병들이 매일 아침 점호 때 외치는 복무 신조다. 추 장관 아들이 복무했던 카투사 역시 미군이 아니라 우리 육군 소속이다. 반면 북한의 조선인민군이나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두 나라의 ‘공식 군대’가 아니다. 각각 조선노동당, 중국공산당 산하의 당군(黨軍)이다. 북한과 중국 군인들이 충성하는 대상은 국가나 국민이 아닌 당이라는 말이다. 요즘 집권 여당 전직 대표이자 현직 법무부 장관 아들의 특혜 의혹을 감싸는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 국군이 이러다가 ‘민주당 당군’이 되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난다. 우리 국군은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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