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옥 할머니 기부때 심신미약 상태" 의사가 확인했다

박태인 입력 2020. 9. 16. 05:01 수정 2020. 9. 16. 13: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檢 "검사가 직접 면담, 의료진 자문으로 치매 판단"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동료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를 속여 수천만원을 기부·증여하게 한 혐의(준사기)로 기소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검찰이 15일 "검사가 할머니를 직접 면담하고 의료진의 객관적인 정신감정 자문을 받아 판단한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전날 윤 의원의 "검찰이 길원옥의 삶을 부정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檢, "준사기 혐의 객관적 자료로 입증"
윤 의원을 수사한 서울서부지검(노정연 검사장)은 의료 전문가로부터 길 할머니의 의료기록과 정신감정 자문 결과를 받아 할머니가 기부했을 당시 의사결정이 어려운 '심신미약' 상태임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검사가 할머니를 직접 면담해 의료 기록과 할머니의 상태를 대조해 봤다"고 말했다.

검찰은 윤 의원이 치매를 앓던 길 할머니를 이용해 2017년 11월 할머니가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원 중 7920만원을 2년 2개월에 걸쳐 기부·증여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중 5000만원은 윤 의원이 이사장을 지낸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정의기억재단에 할머니가 상을 수상한지 3일만에 전달됐다.

지난해 8월 수요집회에 참석한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 [연합뉴스]



할머니가 받은 돈 3일만에 기부
윤 의원에게 적용된 혐의인 준사기는 심신 미약상태인 지적장애인을 착취하거나 이들을 이용해 금전적 사기를 치는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형법 조항이다. 형량은 징역 10년 이하, 벌금 2000만원 이하로 일반 사기죄와 같지만 실제 적용 사례는 드문 편이다.

지난 8월 춘천지법은 지적장애인을 속여 1억 5000만원을 챙긴 60대 남성에게 준사기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 10월을 선고했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현직 검사는 "현직 여당 의원에 준사기를 적용할 정도면 수사팀에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준사기에 민감한 윤미향
윤 의원은 검찰이 기소한 6가지 혐의(횡령과 배임, 보조금관리법 위반 등) 중 '준사기' 혐의에 가장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다른 혐의도 부인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준사기의 경우 자신의 '여성 인권운동가' 경력이 송두리째 부정당할 수 있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윤미향 의원이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길원옥 할머니의 영상을 공유했다. [윤미향 페이스북 캡처]

윤 의원의 위안부 운동을 20여년 전부터 지켜봤다는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검찰의 말대로 윤미향이 위안부 피해자를 속였다면 그를 더이상 인권운동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윤 의원이 기소된 당일인 14일 늦은 밤, 페이스북에 길 할머니의 영상을 잇달아 올린 것도 그런 이유로 해석된다.

윤 의원은 검찰이 특정한 준사기의 범죄 시기인 2017년~2020년 사이에 할머니가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직접 밝히는 영상을 잇달아 올렸다. 윤 의원은 "할머니의 평화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이 검찰에 의해 부정당했다"고 했다.


법조계와 의료계 "할머니 동영상 중요치 않아"
하지만 법조계와 의료계에선 준사기 혐의 적용에 있어 윤 의원이 올린 '동영상'은 중요한 변수가 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서울 대학병원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 환자의 경우 의사결정 능력이 없어도 겉으로 보기엔 정상인처럼 보일 수 있다"며 "동영상에 나온 할머니의 모습은 치매 판단의 변수는 아니다"고 했다.

검찰이 기소한 윤미향 의원 혐의와 액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판사 출신인 이현곤(법률사무소 새올) 변호사도 "윤 의원의 유·무죄를 가를 핵심은 길 할머니에 대한 전문가의 의료기록"이라며 "윤 의원이 길 할머니가 중증 치매를 앓았던 사실을 알았다면 혐의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 의원이 할머니의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고 위안부 시민단체에 기부한 점이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 의원이 할머니의 돈을 재단에 기부한 것은 윤 의원에겐 유리한 지점"이라 말했다. 형사 전문 변호사인 김정철 변호사는 "향후 법정에선 길 할머니의 정신감정을 했던 의료진과 전문가의 증언을 두고 윤 의원 측과 공방이 오갈 것"이라 전망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