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길만 남았다" 111살 석유공룡의 '종말' 선언

김성은 기자 입력 2020. 9. 16. 05:40 수정 2020. 9. 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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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정유사인 영국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 석유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종식된다고 해도 이전 같은 석유 소비의 회복은 없을 것이라는 파격 주장이다. 111년 역사의 영국 석유 공룡이 '비욘드 페트롤리엄'(Beyond Petroleum, 석유를 넘어서라는 뜻)이라는 화두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이 선언은 국내 정유업계 뿐 아니라 전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4일(현지시간) BP는 '연례 에너지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50년까지 앞으로 30년간 석유 수요는 규모와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석유소비의 정점은 이미 지난해로 지나갔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전 세계 하루 평균 석유 소비량은 1억95만9000배럴로 사상 처음 1억배럴을 돌파했다. 그러나 이 영광은 더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BP는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정부 정책과 기술 및 사회 선호도가 최근 같은 속도로 진화하는 BAU(Business-as-usual·평상시) 시나리오 △각국 정부의 정책으로 탄소배출량이 2018년 대비 2050년까지 70% 감소할 것으로 본 Rapid(급격한) 시나리오 △각국 정부 정책과 함께 사회 및 소비자 행동이 현저히 변할 것으로 기대돼 탄소배출량이 95%까지 감소할 것으로 본 Net Zero(순배출 제로)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BP는 순배출 제로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면 2050년까지 석유 수요가 80%나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 세계 정유업계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가장 급격한 감소다. BP는 급격한 시나리오에서는 석유 수요의 55%가, 평상시 시나리오에서는 10%가 각각 줄어들 것으로 봤다.

BP의 이런 시나리오에서 주목할 점은 그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석유 수요가 이전처럼 증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가장 낙관적인 '평상시' 시나리오에서조차 석유 수요가 일부 회복세를 보이긴 하겠지만 2020년 초와 비슷한 수준에서 평탄한 곡선을 그리다가 2030년부터는 크게 꺾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BP는 지난해만 해도 2030년까지 석유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는데, 이런 관측을 완전히 뒤엎은 셈이다.

BP는 "향후 30년간 석유 수요 감소의 규모와 속도는 운송수단의 전기화와 효율성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화석 연료 사용 감소는 재생 에너지 및 전기 에너지 역할 증가로 상쇄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의 코로나19 재확산이 석유 소비를 줄이는 급격한 변화를 굳힐 것이라는 판단도 내놓았다. 이동량을 최소화한 재택근무의 확대나 여행 자제로 석유 수요가 최악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BP가 석유시대 종말을 고한 것과 관련해 CNN은 "여행과 제조업을 마비시킨 팬데믹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끼친 심오한 영향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진단했다.

/사진=AFP


BP의 선언은 세계 경제에서 '탈탄소 로드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임을 각인시키는 효과도 크다. 버나드 루니 BP CEO(최고경영자)는 올해 2월 대표직에 취임하며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루니 CEO는 이후 7개월간 이를 준비하려는 듯 BP의 혁신을 이끌었다. 지난 6월 석유화학사업부를 50억달러(5조9000억원)에 글로벌 화학업체 이네오스에 매각한 것이 그런 사례다.

같은 달 전체 직원 7만 명 중 15%에 달하는 1만 명을 감원한다는 구조조정안도 발표했다. 8월 실적 발표 후에는 앞으로 10년간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40% 줄인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는 하루 석유 생산량을 260만 배럴에서 150만 배럴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대신 이 석유 공룡이 선택한 '돈벌이'는 신재생 에너지다. 2030년까지 저탄소 에너지 사업 투자를 10배 늘린다고 밝혔다. 전기차 충전소도 같은 기간에 7500개에서 7만개로 증가시키기로 했다. 최근 미국 동부 해상에서 추진하는 해상풍력 프로젝트 지분 50%를 취득하는데 11억달러를 쏟아넣기도 했다.

하지만 석유 종말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당장 수익 감소가 예상되는 데도 신규 투자에 나서야 하는 것은 BP가 떠안은 숙제다. 유가 급락으로 올해 2분기 BP의 영업손실 금액은 168억달러(19조8000억원)에 달한다. 주당 10.5센트였던 배당금은 5.25센트로 절반이나 깎였다. BP의 배당금 삭감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그런데도 BP는 탈석유 목표를 내려놓지 않을 방침이다. 루니 CEO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지난 시간 우리는 (탈석유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냈다"며 "이런 일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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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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