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손 내밀면 길 열릴수도"..日경제통 3인이 본 '스가노믹스'

전수진 2020. 9. 16.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6일 공식 취임하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신임 총리. AP=연합뉴스


“슈가노믹스 시대가 열렸다.”
14~15일 이틀 동안 블룸버그TV와 CNBC 등 미국 경제전문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들린 말이다. 자칫 ‘설탕(sugar·슈거) 경제’로 들리는 이 말은 일본의 신임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의 경제 정책을 지칭하는 ‘스가노믹스(Suganomic)’를 잘못 발음한 것이다.

발음은 틀렸을지언정 주요 외신이 전한 스가노믹스의 맥락은 이렇게 통일된다. '아베노믹스의 시즌 2'다. 8년간 일본을 이끌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다. “일본이 ‘안정성’을 택하며 아베노믹스를 연장했다”(블룸버그), “아베의 그림자로 아베노믹스를 이끌었던 인물이 이젠 전면에 나서서 아베의 그림자에 맞서게 됐다”(이코노미스트) 등의 평가가 그렇다.

스가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회전문 총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월스트리트저널ㆍWSJ), “다음 총리를 위해 자리를 덥혀두는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과 전망은 박하게 보일 정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14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새 총재에 선출돼 사실상 차기 총리로 확정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요 외신의 시각처럼 '아베 2.0'으로 불리는 스가는 아베의 아바타로 여겨도 될까. 일본 내 전문가들의 시각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약간 결이 달랐다. 유턴이나 급브레이크를 밟지는 않겠지만 아베와는 다른 노선을 밟으며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전화와 e메일로 인터뷰한 시마다 하루오(島田晴雄) 도쿄공립대학법인 이사장 겸 게이오(慶應)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가라카마 다이스케(唐鎌大輔) 미즈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고스케 다카하시(高橋浩祐) 전 아사히(朝日) 및 블룸버그 통신 기자의 이야기다. 세 사람 모두 일본 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경제학자와 관련 전문가들이다.

고스케는 “스가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전면에 나서서 (지지자들에게) 애교를 부리는 일은 못 하지만, 의견을 조율하고 정책을 실행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때문에 자신만의 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스가노믹스는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되, 자신만의 반전을 살릴 것이다. 스가는 아베가 아니라, (우정국 개혁 승부수를 던지고 방북도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될 가능성이 있다.”(시마다 이사장)

그럼에도 경제 정책은 큰 틀에서 아베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스가 총리 본인도 수차례 “아베노믹스를 계승하겠다”고 한만큼, 아베 총리가 주창했던 ‘세 개의 화살’(적극적 재정 지출, 대담한 양적완화, 구조개혁 통한 성장)‘을 거둘 이유는 없다. 단 일본 내에서도 아베노믹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존재한다.

시마다 이사장은 심지어 “아베노믹스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는 정치인으로서는 훌륭했으나 현재의 표심에 매달렸고, 경제 역시 그러했다”며 “지금의 일본 경제는 근본적 대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며, 스가 총리가 그 일을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마다 하루오 이사장, 고스케 다카하시 평론가, 가라카마 다이스케 수석 이코노미스트. [본인 제공]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본의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00%에 육박한다. 인플레이션은 마(魔)의 1%를 넘지 못하며 'D(디플레이션)의 공포'에 떤 지 오래다. 일본은행(BOJ)은 이미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채택했다. 공격적 양적완화(QE)로 돈 풀기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도 만만치 않다. FT가 14일 "스가가 아베보다 더 안 좋은 출발점에 서 있다"고 평한 배경이다.

가라카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일본의 중앙은행과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쓴 상황”이라며 “팬더믹 상황에서 이 방향을 돌리기는 쉽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양적완화(QE) 및 마이너스 기준금리 등의 기조는 유지되고,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의 유임도 확실시된다는 것이다. 가라카마는 “속수무책 상태인 일본 금융정책에서 그가 어떤 정책을 펼칠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스가가 아베와의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은 세 번째 화살인 구조 개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본 내의 시각이다. 스가 총리의 경제 브레인으로 통하는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전 총무상은 14일(현지시간) FT에 “총무상이었던 당시 악성 대출을 정리하는 개혁을 하고자 했는데 대다수가 반대했고 소수의 정치인만 찬성했다”며 “그 소수 중 한 명이 스가였다”고 말했다.

시마다 이사장도 인터뷰에서 “스가는의견 조율에 능한 인물이면서도 구조 개혁 의지가 확고하다”며 “개혁의 동력을 놓지 않으면서 의견 조율을 통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시마다는 “지금 일본은 도쿠가와(德川) 막부 최후의 10년과 같다”며 “현재에 취해 언제 또 다른 위기가 올지 모르는 상황이고, 스가가 슬기롭게 헤쳐나가 고이즈미와 같은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가노믹스'의 개혁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까. 고스케 전 기자는 “스가는 성장 경제에 방점을 찍는 신자유주의자로 관방장관 시절부터 중소기업과 은행의 구조개혁을 위한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 개혁을 위해 생산성이 낮고 경쟁력이 약한 기업에 칼을 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왼쪽)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총재의 지난해 모습. 아소 재무상과 구로다 총재 모두 유임이 확실시 된다. AFP=연합뉴스

꽉 막힌 한일 관계에 스가의 등장이 변곡점이 될 수는 있을까. 지난해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에 수출을 하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내린 수출 규제 조치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을 둘러싼 양국의 껄끄러운 상황은 여전하다.

일본 전문가들은 스가의 등장이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마다 이사장은 “스가의 개인적 특성과 일본 정치 현재 분위기를 볼 때, 스가가 먼저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 가능성은 제로”라면서도 “그러나 의견 청취와 조율을 중시하는 스가의 특성상, 한국 측에서 먼저 다가오면 길을 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스케 평론가 역시 “일본에서 수출규제 문제는 한국의 징용문제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강하다”며 “이는 스가 총리 휘하에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대신 한국 정부가 타협점을 찾는 제스처를 보인다면 협의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