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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9시쯤 서씨에게 "택시든 뭐든 타고 복귀하라" 지시..9시30분쯤 찾아온 대위 명령대로 '휴가자'로 정정

조문희 기자 입력 2020.09.16. 06:01 수정 2020.09.1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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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병사 경위서·녹취록으로 재구성한 '2017년 6월25일'

[경향신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씨(27)는 경기 의정부 미2사단의 카투사(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일병으로 복무하던 2017년 6월 총 23일간의 휴가를 다녀왔다. 무릎 수술과 치료를 이유로 1·2차 병가(6월5∼14일, 6월15∼23일)와 정기휴가(6월24∼27일)를 받았다.

당직병사 A씨가 등장하는 대목은 2차 병가를 마친 서씨가 정기휴가 나흘을 받고 사용한 과정과 연관돼 있다. 서씨는 병가 종료일인 2017년 6월23일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는데, 당시 미복귀가 군무이탈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서씨가 그달 27일까지 사용한 정기휴가는 휴가 시작일인 24일을 지나 사후에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향신문이 15일 입수한 A씨 작성 ‘사건 발생 및 진행 경위서’와 A씨와 ‘선임병장’ B씨의 통화 ‘녹취’를 종합하면 2017년 6월25일 오후 8시50분쯤 B씨는 저녁점호를 하던 중 서씨가 부대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서씨에게 전화를 했다. 서씨의 부대 상급자였던 B씨는 서씨로부터 ‘복귀하겠다’는 취지의 답을 들은 뒤 서씨의 미복귀 사실을 당직근무 중이던 A씨에게 알렸다.

A씨는 ‘출타장부’를 통해 서씨의 휴가 복귀일이 6월23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까지 부대에 복귀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씨가 2차 병가 종료일(23일)에 복귀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시 지원반장(한국군 상사)을 통해 들어 알았다고 했다. 당시 지원반장은 그주 평일 오전·오후 이뤄진 선임병장들과의 만남에서 서씨가 3차 병가를 신청했지만 반려됐다고 말했다고 A씨는 전했다. 그는 지원반 유선전화를 사용해 서씨의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했고, ‘서울 집’이란 답을 들은 뒤 ‘택시든 뭐든 타고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서씨는 그날 밤 부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날 오후 9시30분쯤 지원반 간부 출입문을 통해 육군본부 마크를 단 D대위가 들어왔다. D대위는 ‘네가 서씨와 통화한 당직병사가 맞냐’고 확인한 뒤, ‘지역대 통합당직실에 보고했느냐’고 물었다. 지역대 통합당직실에 미복귀 사실을 보고하면, 서씨의 ‘탈영’이 공식화되는 상황이었다. A씨가 ‘아직 아니다’라고 답하자, D대위는 ‘지역대에 보고 올릴 때 미복귀자가 아니라 휴가자로 정정해서 올리라’고 지시했다. A씨는 D대위의 지시에 따라 오후 10시까지 지역대에 보내야 하는 ‘일일보고 문서 파일’에서 서씨를 휴가자로 정정했다.

A씨는 지난 12일 B씨와의 통화에서 그날 당직실에 D대위가 찾아올 즈음에 B씨가 서씨로부터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B씨에 따르면 당시 서씨는 ‘이미 해결이 다 돼 있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B씨가 서씨에게 처음 전화한 오후 8시50분 이후 서씨 측이 모종의 조치를 취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정황이다.

A씨가 경험하고, 같은 시각 근무한 부대 동료 B씨에게 들은 내용은 여기까지다. A씨는 이후 서씨가 어떤 절차를 거쳐 정기휴가를 받았는지, 정기휴가를 받는 과정에 추 장관 부부나 보좌관 등 주변인의 역할이 있었는지 등 최근 제기된 의혹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언론 등 누구에게 이야기한 적도 없다고 했다. A씨는 지난 6월과 지난 9일,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면서도 ‘연가 관련 절차는 당시 행정병이 알 테니 그에게 물어보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했다. 서씨의 개인 휴가 승인 기록에 해당하는 행정명령서는 그 이후 발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당초 오해했던 D대위의 정체도 최근 깨달았다. A씨는 서씨 미복귀 당시 관련 보고를 정정하라고 지시한 대위가 상급부대에서 왔다고 추정했을 뿐 누구인지 정확히 몰랐으나, 지난 9일 검찰 조사에 응하던 중 해당 대위가 당시 미2사단 지역대 인사장교 D대위임을 인지했다. D대위와 대질신문을 하게 되면서다. A씨는 경위서에 “미2사단 카투사는 주로 중대급인 지원반 단위로 근무를 했다. 병사들이 지역대 본부에 갈 일도, 지역대 참모가 지원반에 오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썼다. 병사들은 사단 내 10여개 지원반 중 하나에 배치된 뒤 해당 지원반에서만 생활한다는 것이다. A씨는 이어 “(그래서) 당시 당직실에 찾아온 대위가 어디 소속의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며 “검찰의 대질신문에서 얼굴을 보니 그 당시 당직실에 찾아온 대위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고 썼다.

녹취에 따르면 B씨도 최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녹취에서 B씨는 A씨가 “혹시 검찰에서 너 불렀어”라고 묻자 “그저께 다녀왔다. 기억나는 대로 얘기했다. 형(A씨)이 언론에 말씀하신 거랑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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