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가 1면이면 정정도 1면".. 그러면 언론이 달라질까?

김시연 입력 2020. 9. 16. 08:36 수정 2020. 9. 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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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안 띄는' 정정보도 강화 법안에.. "환영" vs "권력 눈치보기" 엇갈려

[김시연 기자]

    
 왼쪽은 지난 8월 6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렸던 '고위직, 한동훈 내쫓을 보도 나간다 전화' 기사. 오른쪽은 9월 11일 2면에 실린 ‘정정 및 반론보도문’이다.
ⓒ 조선일보
 
"반성문 쓰기 바쁜 조선일보, 오보는 1면에 크게 내고 반성문은 2면에 작게 내고"

지난 11일 <조선일보> 정정보도문에 대한 한 누리꾼 반응이다. 그로부터 약 한 달 전인 8월 6일자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고위직, 한동훈 내쫓을 보도 나간다 전화'라는 오보와 이날 2면에 작게 실린 '정정 및 반론보도문'이 서로 대비됐다.

이 기사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MBC '검언유착' 보도가 나가기 전부터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 보도로, 이른바 '권언유착' 논란을 유발한 심각한 오보였지만,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형식적 정정 보도에 그쳤다.(관련 기사 : 조선일보 "한상혁, '검언유착' 보도 알았다는 사실 아냐" 오보 인정  http://omn.kr/1ovl9 )  <중앙일보>도 지난 14일 '고위 인사, MBC 뉴스 직전 한동훈 보도 나갈 거라 전화'(8월 6일자 5면)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을 2면 하단에 실었다.

'동일 지면 동일 분량 정정보도' 언론중재법 개정안 발의

<조선>은 지난 6월 1일 "잘못된 보도를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면서 '바로잡습니다' 코너를 2면에 고정 배치하고, "오보로 현실을 중대하게 왜곡하거나 타인의 명예에 상처를 입힌 경우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보를 낸 경위까지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에서 '오보는 대문짝만하게, 정정보도는 살짝'이라는 잘못된 관행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5월 22일 '윤석열 검찰청장, 윤중천 별장 접대' 오보를 인정하고 1면에 정정 보도를 실은 건 아주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특히 <조선>은 '오직, 팩트'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대형 오보를 양산하고 있다. 이 신문은 지난 8월 28일 지역판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이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가 인턴 지원 의사를 밝혔다는 오보를 냈다 삭제한 뒤, 바로 다음날 정정 보도문을 올리고 사과했다.

오보 낸 기자들을 고소한 조국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주간조선> 기사 내용("대부분의 독자나 시청자는 최초의 보도만 기억한다. 이후 '바로잡습니다', '사과문', '정정보도'를 아무리 실어도 이 보도문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을 인용해 정정 보도의 한계를 꼬집기도 했다.(관련기사 : 조국 전 장관 딸, 오보 낸 조선일보 기자들과 강용석 고소 http://omn.kr/1or2p)

 
 조선일보는 8월28일자 초판 지면에 ‘조민, 세브란스 병원 피부과 일방적으로 찾아가 "조국 딸이다. 의사고시 후 여기서 인턴하고 싶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가 최종판에서 삭제했다. 조 전 장관과 연세의료원에서 허위 보도라고 반박하자, 이 신문은 8월 29일 ‘바로잡습니다’를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기사였다“면서 독자들과 조민씨, 연세의료원에 사과했다.
ⓒ 조선일보
 
앞으로 이런 관행이 달라질 수 있을까?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마포을)은 지난 7월 10일 정정보도 등을 할 때 원래 보도의 지면과 분량대로 싣도록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앞서 한상혁 방통위원장 관련 조선일보 정정보도문은 오보 기사와 마찬가지로 1면에 같은 분량으로 실려야 한다.

공교롭게 한상혁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24일 23만 명 가까이 참여한 청와대 국민청원 '언론사의 가짜뉴스의 강력한 처벌을 청원합니다' 답변에서 "(국회에서 허위조작정보를 막기 위해 발의한 법안들 가운데) 언론사의 오보 등에 대한 정정보도 위치를 신문의 첫 지면에 게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빠른 시일 내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조선>은 "방송통신 분야 주무 장관인 한 위원장이 신문의 오보 정정 위치에 대한 법안 내용을 언급한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2019년 10월 25일, '한상혁 방통위원장 "신문 정정보도 1면 게재 의무화 등 입법 지원하겠다" 논란')면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오보 피해 구제 기대" vs ""권력 눈치 보기, 자기검열 강화"

악적인 오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언론시민단체에서는 정정보도 강화 법안 추진을 반겼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15일 <오마이뉴스>에 "오보를 바로잡는 건 원래 기사가 미친 영향만큼 독자들에게 알리는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언론은 정정보도와 반론보도에 인색했고 내용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서 "조선일보의 조국 전 장관 딸 오보에 대한 '바로잡습니다'의 경우 어떤 내용이 잘못됐는지 적시하지 않고 변명 일색이어서 오히려 독자들의 공분을 샀다"고 지적했다.

신 사무처장은 '바로잡습니다' 취지를 살릴 4가지 조건으로 ▲ 첫째, 진정성 있는 사과와 더불어 오보 경위를 솔직하게 설명할 것 ▲ 둘째, 원래 보도의 영향력을 상쇄할 만한 크기와 위치로 정정 보도할 것 ▲ 셋째, 오보를 바로 잡는 게 언론사나 기자의 잘못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독자들 요구에 대한 소통의 하나로 받아들일 것 ▲ 마지막으로, 오보에 따른 피해 구제의 일환인 '바로잡습니다'가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게 언론사에서 의무적으로 배치할 것 등을 제시했다.

다만 정정보도 위치나 크기를 법으로 지정하는 데 대해서는 언론사는 물론 언론현업단체에서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은 "정정보도도 필요하지만, 언론사 스스로 오보 원인과 대처 방안을 밝히고 앞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독자들과 약속해 예방 효과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주로 언론중재를 신청하는 이들이 정치인이나 권력자 같은 공인들이어서 법으로 정정 보도 크기나 위치를 강화하면 결국 언론사들의 권력 눈치 보기나 기자들의 자기검열만 강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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