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왜 이렇게 늦게 왔소?"..소외된 땅, 울릉이 운다

류재현 2020. 9. 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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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호 태풍 하이선이 한반도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고 이틀이 지나 태풍 피해를 취재하기 위해 울릉 사동항을 찾았습니다. 늦지는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 만난 울릉군 공무원은 "왜, 이제 취재 왔냐?"며 서운함을 드러냈습니다. 알고 보니 육지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언론사 취재진은 저희가 처음이었던 겁니다.

가장 피해가 심했다던 울릉 서남쪽의 남양 마을과 통구미 마을을 찾았습니다. 울릉 일주도로가 끊긴 탓에 바로 코앞에 있는 마을을 두고 산길로 돌아갔습니다. 30도가 넘는 경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꼬불꼬불한 1차선 도로를 달려서야 마을에 닿았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태풍에 도로가 끊겨 시내버스가 중단되거나 우회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도착한 마을 시냇가에는 크기를 엄청난 크기의 바위와 돌, 모래가 뒤덮었고, 절개지를 둘러싼 도로변 쇠 보호벽은 종잇조각처럼 휘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마을 골목과 도로는 이미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습니다. 분명 이틀 전 통화에서는 마을이 침수돼 온갖 쓰레기로 가득하고 인력까지 모자라 복구가 힘들다고 했지만, 그새 몇 안 되는 주민과 공무원이 온 힘을 다해 마을을 되살린 겁니다. 뱃길이 끊긴 사정이 있었음에도, 가장 힘들 때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컸습니다.

소외당하는 땅, 울릉

"우리 땅 독도를 지키는 국민이 바로 울릉 주민입니다. 우리는 같은 대한민국 사람 아닙니까?"


내부 집기와 설비가 모두 쓸려나간, 창문 없는 빈 건조장. 태풍 피해 주민의 인터뷰 장소였습니다. 카메라 앞에 선 주민은 그동안의 설움을 쏟아냈습니다. 강력한 태풍이 울릉도를 강타했지만 정작 날씨 정보는 구체적이지 않았고 국민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언론도 울릉의 피해에 대해서 다루는 곳이 없더라는 겁니다.

태풍이 동해안으로 '빠져나간다'며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재난 방송은 끝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태풍이 육지를 벗어날 때 울릉은 비상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에 마치 재난에서 벗어난 듯한 뉴스 보도를 보면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외면받은 섬이라는 말이 담당 취재기자인 제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다음은 울릉에 사는 김윤배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 대장이 쓴 소셜미디어 글입니다. 역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울릉도도, 섬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주민의 절규입니다. 울릉도는 태풍이 흔히 동해상으로 빠져나간다고 언론에서 보도할 때, 울릉도 그리고 부속 섬 독도, 죽도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태풍 영향권에 접어듭니다. (…) 울릉도에 대한, 섬 주민에 대한 그간의 잘못된 인식을 전환하는 복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시설물 파괴가 대부분…복구는 먼일"



울릉도는 2003년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피해액은 350억 정도로, 3분의 2가 주민 피해에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태풍은 주민 피해보다 시설물 파괴가 더 심각합니다. 그만큼 복구비도 수백억 원을 넘고 있습니다.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일주도로입니다. 지난해 3월 개통했지만 불과 1년 반 만에 끊겨버렸습니다. 울릉을 한 바퀴 두르고 있는 일주도로는 가장 먼 거리도 한 시간 이내로 다녀올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도로인데, 이번 태풍으로 모두 14곳이 파손됐습니다. 사실, 파손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너져 내렸습니다.

도로가 내려앉은 자리는 70m 정도 구멍이 뚫려서 파도가 밀려 들어오는 아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게 50톤이 넘는 테트라포드도 파도에 실려 터널을 막아버렸습니다. 일부는 터널 중간에 껴버려서 대형 중장비로 깨트려 겨우 꺼낼 수 있었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울릉 지역 전기의 절반을 생산하는 남양 내연발전소의 운영도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는 남양항에 건설된 송유관을 통해 공급되는데, 태풍에 실려 온 엄청난 양의 돌과 모래가 해저에 쌓이면서 유류 수송선이 송유관에 접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지금은 잠수부와 예인선을 동원해 겨우 접안을 하고 있는데, 여의치 않을 경우, 울릉의 다른 항에 배를 대 가파른 산길로 기름 탱크를 옮겨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닥칩니다. 이곳도 하루빨리 준설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공사를 위해서는 굴착기와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비롯해 시멘트와 모레, 자갈까지 바지선에 올려 육지에서 실어와야 합니다. 공사 하나하나가 번거롭고 거액의 비용이 드는 일인 데다,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울릉군은 이번 태풍 피해로 인한 복구가 빨라도 1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섬 지역의 특성상 공사가 더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독도 접안시설도 파괴…관광객 줄까 우려"


울릉군에서 걱정하고 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관광업입니다. 예로부터 울릉은 도둑·공해·뱀이 없는 3無, 바람과 돌·향나무·미인·물이 많은 5多로 유명한 아름다운 섬입니다. 최근 고급 숙소와 예쁜 카페도 들어서면서 SNS 인증사진을 찍기 위한 관광객의 발길도 늘어났습니다. 그 인기는 독도로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최근 울릉뿐만 아니라 독도의 접안시설까지 태풍에 파괴되면서 관광업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울릉을 찾는 관광객의 상당수는 독도를 방문하려는 사람들인데 독도의 접안시설의 복구공사가 늦어지는 만큼, 울릉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까 걱정이 큽니다.

"불어닥친 거대한 파도…태풍에 더 취약한 섬"

사실 울릉도는 육지에서 160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있다 보니 평소에도 동해의 척박한 바닷바람과 파도가 거셉니다. 2,000m의 심해를 흐르던 물결이 흘러 흘러 20m 깊이의 울릉 연안에 닿게 되면 더 이상 바닷속으로 소용돌이치지 못한 채 수면 위로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때문에 서·남해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파도가 높습니다.


이번 태풍 '마이삭'이 지나갈 때는 파도가 최대 19.5m까지 솟구쳤습니다. 아파트 6층 높이의 시퍼런 물결이 단단한 콘크리트 방파제와 테트라포드를 깨부수고, 밧줄로 묶어 둔 어선과 오징어 건조장, 스킨스쿠버 체험장과 카페, 동네 슈퍼와 2층 가정집을 덮친 겁니다.


때문에 울릉은 방파제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사동항의 설계 파고는 10.3m를 적용했고, 남양항의 설계 파고는 7.3m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태풍을 겪으면서 방파제 상당 구간이 파도와 해일에 파괴됐습니다. 기후변화로 날로 거세지는 태풍과 파도에 무기력한 섬이 되고 만 겁니다. 결국, 다음 태풍이 몰려오면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파제가 200m 넘게 무너진 사동항은 생필품을 실어나르는 화물선이 오가기 때문에 배가 끊기면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강력해지는 태풍…소외된 지역을 지켜야!"

9월 15일, 정부가 울릉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했습니다. 그만큼 피해가 크고 복구가 시급하다는 뜻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와 주민들이 함께 복구에 매진하면 울릉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운 경관을 주민과 방문객에게 선물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더는 울릉을 재난 속에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상이변으로 더 강력한 태풍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만큼, 동해 한가운데 있는 외딴 섬 울릉을 지켜야 합니다. 소외된 지역일수록 더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합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섬을 지키는 울릉 주민들의 호소를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류재현 기자 (ja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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