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개 살아있는 척 'SNS 모금'..민간 유기견보호소의 욕심

윤경재 2020. 9. 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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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SNS에 올라온 ‘개 치료비’ 모금 게시글


"로드킬 당할 뻔한 이 아이, 치료비 좀 도와주세요"

지난 8일 오후, SNS에 모금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경남과 울산·부산 권역에서 활동하는 한 유기견보호소 계정. "경남 양산과 울산을 잇는 자동차전용도로에서 로드킬 당한 개 한 마리를 우연히 발견해 구조했다"며 "부산의 한 동물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비가 많이 들 것 같으니 좀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견종은 셔틀랜드 쉽독이었습니다. 흉부와 엉덩이 쪽 골절로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다급함이 묻어났습니다.

지난 10일, 다친 개가 고비를 맞고 있다는 내용의 SNS 게시글


보호소 측은 구조 사흘째인 10일에도 후속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다친 개가 예상보다 위중한 상태로 고비를 맞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에 전국의 애견인이 정성을 모았습니다. 적게는 5천 원, 많게는 몇만 원씩. 커피값, 밥값을 아껴 적은 금액이나마 보낸다는 후원자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구조해줘서 감사하다", "아이를 꼭 살려달라", "개를 키우는 처지에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보호소를 응원하는 댓글도 잇따랐습니다.

구조 나흘째인 11일. 보호소 측은 모금 관련 마지막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전날 밤인 10일 밤 결국 개가 죽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모금이 진행된 나흘 새, 보호소 계좌에는 609만 원의 돈이 모였습니다.

살아서 치료받고 있다던 개는 알고 보니 '구조 당일' 사망

그런데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전국의 유기견 도우미 활동가들의 눈에는 이 보호소가 올린 게시글들에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습니다. 보통 SNS로 유기견 관련 모금을 할 때는 치료 과정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이번처럼 전국에서 다수의 후원자가 모였을 때는 모인 후원금으로 개가 어떻게 치료받고 있는지 알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보호소는 개가 고비를 맞고 있다는 게시물에도 구조 당시의 개 사진을 게시했을 뿐, 치료 장면을 담은 사진은 없었습니다.

유기견보호소에 구조된 ‘셔틀랜드 쉽독’


취재진이 개를 치료한 동물병원을 취재한 결과, 로드킬 당한 개는 구조된 당일인 '8일' 죽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8일 오후 1시 57분 치료를 접수해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점에 사망했다는 겁니다. 동물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너무 악화돼 손 쓸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동물병원에 개가 머문 시간은 불과 3시간 남짓. 유기견보호소의 SNS상에서 죽지 않고 치료받고 있었던 개는 사실 죽어 있었던 겁니다. 죽은 개는 다음 날인 9일 아침, 보호소 측이 연락이 닿은 개 주인에게 넘겼습니다. 개의 장례를 치러주겠다는 개 주인에게 넘겨준 겁니다. 보호소 측이 개가 고비를 맞고 있다던 10일, 이미 개는 죽어 주인의 품으로 되돌아간 뒤였습니다.

결국 보호소는 죽은 개가 살아서 치료를 받고 고비를 맞고 있는 척 행세하면서 사흘 동안 후원자들을 속였습니다.

"돈 모이자 '견물생심' 부족한 운영비 욕심났다"

유기견보호소 측은 구조 당일엔 소통의 문제로 개가 죽은 걸 바로 알리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유기견보호소의 SNS 계정은 한 봉사자가 운영하는데, 보호소 측이 병원비가 부족하다는 내용을 알린 뒤 죽은 사실을 미처 전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추후 예상치 못했던 많은 돈이 모이자 견물생심, 부족한 운영비로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개들의 밀린 치료비 300여만 원과 최근 태풍에 파손된 시설 복구비 등 부족한 운영비로 쓰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순간적인 욕심에 개가 죽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고, 이를 반성하며 후원금을 되돌려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활발한 SNS 유기견 모금…"감시 체계는 없어"

지자체와 연계된 유기동물보호센터가 아닌, 민간 유기견보호소는 실태와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기견 도우미 활동가들은 부산과 울산, 경남 등지에서만 40여 곳의 민간 유기견보호소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는 이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과 권한이 없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유기견보호소가 활동하는 지역인 경남과 울산의 지자체들을 취재한 결과, 해당 유기견보호소의 존재조차 모르는 곳이 많았습니다. 이름은 들어봤다면서도 정확히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르는 지자체도 있었습니다. 해당 유기견보호소에 대해서 단 한 차례의 지자체 실태조사도 없었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민간 유기견보호소의 관리·감독에 대한 규정이 없습니다. SNS를 통한 유기견 관련 모금이 활발해지면서, 불투명한 모금과 후원금의 사용에 대한 의혹도 잇따르고 있지만 이를 들여다볼 방법이 없는 겁니다. 자금 운용의 투명성은 물론, 학대 신고가 접수되기 전까지는 민간 보호소의 시설과 위생 상태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수 없습니다. 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나누는 애견인들은 유기견보호소를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유기견 도우미 활동가들은 대부분의 민간 유기견보호소들이 많은 시민의 봉사와 후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투명한 운영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유기견 후원 문화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고, 좋은 뜻으로 유기견을 보호하는 단체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윤경재 기자 (econom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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