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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노무현의 불뚝골, 이재명의 잔인함

노원명 입력 2020.09.18. 10:09 수정 2020.09.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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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불뚝골이 있는 사내였다. 자주 불끈했고 그럴 때마다 볼 만한 장면이 펼쳐졌다. 그는 5공비리 청문회에서 증인석에 앉은 전두환에게 국회의원 명패를 던지면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선 장인의 좌익 전력과 관련해 "그래서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하고 내질렀다. 이 한마디가 민심이라는 과녁을 관통했고 그는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은 자서전에서 초등학교 5학년때 부잣집 급우 비싼 가방을 면도칼로 죽 그어버린 일을 부끄럽게 회고했다. 흙수저 출신의 그는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콤플렉스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어졌다. 임기중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8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전하는 뒷얘기가 흘러나왔다. '케미'가 안 맞았다. 노무현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센 미국이라는 나라, 그 나라의 대통령, 특히 대통령 아버지를 둔 금수저 출신 조지 W 부시는 어울리기 어려운 상대였을 것이다. 그가 한국 보수층을 겨냥해 한 독설 중에는 "형님, 형님 하면서 미국 바짓가랑이나 붙들고···"같은 말이 있다. 대통령 노무현은 미국과 한국 보수층이라는 관념속의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불뚝골을 부렸던 것인데 현실에선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남자가 된 그의 화를 받아줄 상대가 많지 않았다.

노무현의 화는 늘 강한 상대를 찾아 헤맸다. 때로는 전두환, 때로는 검찰, 때로는 미국, 때로는 대한민국이라는 역사···그런 대통령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를 인간적으로 미워해 본 일은 드물었던 것같다(지나간 일은 늘 얼마간 미화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같은 민초계급 출신으로서 노무현의 불뚝골에 심정적 동정같은 것이 있었던 것같다.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이해 못하지는 않을 것같은 그런 느낌? 강한 상대를 만나면 오기 한번 부려야 직성이 풀리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아니고 그저 내 친구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를 언제까지나 사랑했을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자주 불끈거리기로는 노무현 못지 않은데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다. 노무현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상향식 불뚝골인데 이재명은 하향식이다. 그 상대는 약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체급 밖인 경우가 많다. 그의 가족 안에서 벌어진 다툼, 어느 나이든 여배우와 옥신각신한 일은 문제 제기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만치 불유쾌하다. 그러니 넘어가자.

이재명은 자신의 대표 정책중 하나인 지역화폐를 비판한 조세정책연구원을 15일 이후 연일 공격하고 있다. 처음엔 '얼빠졌다'며 담당자 문책을 주장하더니 18일엔 급기야 '청산할 적폐'라는 표현을 썼다. 이재명은 무려 지지율 1위의 대권후보다. 리포트를 쓴 사람에 동정심이 인다. 나같으면 해외 이민을 고려하겠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사표만 써서 끝날 것같지 않다. '청산' 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조세연 연구원은 지지율 1위 대권후보가 상대할 체급인가.

이재명은 친문과 그 지지층에는 깍듯하다. 진중권은 며칠전 "조민의 아빠 찬스와 서일병의 엄마 찬스에 대해서는 찍소리 못 하는 주제에 무슨 염치로 정의와 공정과 평등을 떠드는지"라며 "살아있는 권력이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고 꼬집었다. "안심하고 때려도 되는 만만한 소수를 골라 공격의 타깃으로 지목하고 분노한 대중과 함께 이미 지탄받는 그 소수에 신나게 퍼부어대는 포퓰리즘 전술"이라고도 했다. 일리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화내는 상대를 보면 그 사람의 격이 보인다. 체급이 맞지 않는 상대에 화내는 것은 불뚝골이 아니라 잔인함이다. 노무현과 이재명의 성깔중 어느쪽이 현실정치에 유리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친구로는 무조건 노무현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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