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발에 정액 넣은 그놈..여대생 성범죄 호소에 법 "재물손괴"

박동해 기자 2020. 9. 1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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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1년간 고통에도..약식기소 벌금 50만원 그쳐
© News1 DB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지난해 5월 동국대학교 캠퍼스,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서며 신발장에 있던 신발을 꺼내 신던 A씨는 뭔가 축축한 물체가 발에 닿는 것을 느꼈다. 신고 있던 덧신을 적신 액체의 냄새에 의심이 든 A씨는 즉각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 액체는 남성의 정액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를 시작한 서울 중부경찰서는 폐쇄회로(CC)TV를 추적해 범인 B씨(23)를 잡았다. CCTV에 찍힌 영상에서 B씨는 강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신발장 맞은편 문 뒤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수업이 시작되자 B씨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 A씨의 신발을 가져간 뒤 자신의 정액을 넣어 다시 신발장에 가져다 두었다.

이 모든 과정을 확인한 A씨는 엄청난 성적 수치심을 느꼈지만 수사를 맡은 담당 경찰에 설명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A씨에게 "직접 물리적 피해를 보지 않았고 단순히 신발을 못 신게 된 것이니 성범죄가 아닌 재물손괴죄로만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은 재물손괴 혐의로만 B씨를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신발 가격보다 10만원 더 많은 벌금 50만원에 B씨를 약식기소했다. A씨는 B씨가 처음에는 합의 의사를 보였다가 재물손괴죄만 적용되면 벌금이 합의금보다 적을 것 같아지자 합의 시도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A씨의 삶은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A씨는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로 현재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학교에 갔다가 B씨를 마주칠까 수업 수를 최대한 줄였고 이마저도 온라인 수업과 야간 수업 위주로 수강을 해야 했다.

A씨는 직접적인 범죄뿐만 아니라 피해를 호소하는 자신을 대하는 주변의 반응에서도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범행 피해를 입은 직후 A씨는 학교 학생들만 볼 수 있는 내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피해를 알리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반응은 싸늘했다. 많은 댓글이 '아직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왜 남자에게 범죄자 프레임 씌우냐'며 A씨를 몰아세웠다.

경찰조사가 마무리되고 나서 범죄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실이 드러났을 때 A씨는 다시 한번 학생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건 '너한테 한 게 맞아?' '직접적인 피해는 신발 젖은 것밖에 없잖아' 등의 반응이 돌아왔다. A씨는 "정말 남들 다 겪는 일인데 내가 유난 떨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학교 당국에 피해사실을 알렸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것도 A씨에게는 상처였다. A씨는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도움을 받기 위해 법률구조공단, 해바라기센터, 성범죄상담센터, 동국대인권위 같은 기관에 도움을 청했지만 제대로 된 지원을 제공해 준 곳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포털 검색을 통해 성범죄 관련한 기관에 전화를 해봐도 감정적인 위로 외에 어떤 해결책도 없었다"라며 "학교에서는 제가 피의자의 개인정보를 스스로 알아오고 그 사람이 학교 학생이 맞으면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1년여 동안 사건을 묵혀두고 머릿속에서 지우려고만 노력했던 A씨는 최근 한 신문기사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해당 기사는 수원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20대 남성이 공부를 하던 여성들의 가방과 입고 있던 옷에 정액을 묻히고 도망갔다가 강체추행과 공연음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수원대 사건의 경우 사람이 입고 있었던 옷이나 가방을 대상으로 해 사람에게 직접 위해를 끼쳤다고 볼 수 있다"며 "동국대 사건의 경우 놓여 있던 신발이 대상이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추행 혐의를 적용할 수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동안 A씨는 자신의 신원이 노출될까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용기를 내 경찰과 검찰로부터 사건 기록을 넘겨받아 B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A씨는 학교 측에 B씨에 대한 징계를 요청할 계획이다. A씨는 시간이 지나 법적인 판단을 뒤집을 수는 없더라도 자신과 같은 피해를 보는 사람이 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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