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통역병을 제비뽑기해야 하는 나라[오늘과 내일/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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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현지 통역 최성재(샤론 최) 씨의 맛깔스러운 통역 덕분에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다.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정상회담도 전문 통역관의 입을 통해 이뤄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27)의 휴가 특혜 논란으로 국방부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투입할 통역병을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발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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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그러진 '실력주의' 현주소
대한민국은 이런 일도 제비뽑기로 정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27)의 휴가 특혜 논란으로 국방부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투입할 통역병을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발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카투사들이 평소에 영어를 쓰며 근무를 한다지만 다는 아니다. 통역은 일상 업무와도 다르다. 사람마다 어학 실력도 제각각이니 누가 돼도 문제없는 일은 아니었다.
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 지원단장이었던 이철원 예비역 대령은 “‘서 군과 관련해 여러 번 청탁 전화가 오고, 2사단 지역대에도 청탁 전화가 온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제가 2사단 지역대에 가서 서 군을 포함한 지원자 앞에서 제비뽑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추 장관의 해명은 달랐다. 그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 아들인 줄 알고 군이 방식을 바꿔 제비뽑기로 떨어뜨렸다”며 조사를 요구했다.
한쪽은 권력자의 청탁 논란을 피하려고 그랬다고 하고, 다른 쪽은 군이 여당 대표 아들을 떨어뜨리려고 선발 방식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외압과 음모 어느 쪽이든 외부 요인으로 선발 과정이 변질된 건 심각한 문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 로또 추첨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구시대엔 부와 권력이 계급, 재산, 연고 등에 따라 배분됐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지지자들에게 공직을 나눠주는 ‘엽관제도(Spoils system)’가 횡행하던 미국에서는 1881년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공직을 받지 못해 불만을 가진 지지자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후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공직을 당적이 아닌 실력에 따라 선발하는 ‘실력주의(Meritocracy)’가 그때 자리 잡았다. 재능과 노력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세계 최강 국가로 밀어 올렸다.
한국 사회의 실력주의 믿음은 필자가 미 2사단에서 카투사로 근무했던 20여 년 전보다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엔 국사 국민윤리 영어 필기시험을 치러 뽑았다. 이 지식이 미군과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그때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발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토익 780점 이상 등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지원자 중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다. 자대 배치도 컴퓨터 추첨이다. 추첨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공정한 기회와 절차의 수단은 아닐 것이다.
미국식 실력주의가 과도한 경쟁을 부르고 승자 독식 사회를 만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계층 이동의 공정한 사다리를 복원하려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회와 평가가 공정해야 한다. 특정 계층에 유리한 방식이면 엘리트들이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력주의를 교묘히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게 미국 싱가포르 등 실력주의 사회의 교훈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 부모들의 ‘자녀 스캔들’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패자를 배려하되 기회와 평가가 공정한 ‘따뜻한 실력주의’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청탁’과 ‘제비뽑기’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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