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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4명 '코로나 블루'..2020년 한국인의 우울 [커버스토리]

김민아 선임기자 입력 2020.09.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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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관련 국민 정신건강 추적 연구'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A씨(52)는 대리운전 기사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할 때, 집 밖 출입을 삼갔다. 입대를 앞둔 아들의 건강도 염두에 뒀다. 아들이 군에 간 후 다시 일을 시작했다. 평년보다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버텼다. 8월 중순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다시 퍼지고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며 사정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하루 2~3번 ‘콜’을 받고 새벽에 택시로 귀가하곤 했다. 지금은 콜이 드물어 버스 끊기기 전 집에 온다. “전광훈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취업준비생 B씨(26)는 사무직 ‘알바’를 하다 코로나19 여파로 그만뒀다.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볼 때마다 원서를 내지만, 사실 공채 자체가 드물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서류심사 관문을 뚫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러다간 영원히 ‘취준생’ 신세를 못 면하는 것 아닐까. 초조하고 우울하다.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회사원 C씨(43)는 놀이터에서 딸의 그네를 밀어주다 또래 아이가 그네 타러 오는 걸 봤다. “몇 살이니?” “8살이오.” “우리 딸이랑 같네. 그럼 ○○초등 1학년?” “네.” “몇 반?” “3반이오.” 딸과 같은 반이었다. “서로 모르니?” 두 아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얼굴은 봤어요.” 학교 간 날이 며칠 안 돼 이야기를 못해 봤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자라고 있나.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3 D양(18)은 음대 지망생이다. 1학기 개학을 한 달 늦게 온라인으로 했다. 등교수업은 5월 말에야 시작했다. 어김없이 수시모집 시기는 돌아왔다. 희망 대학에선 대면 실기시험이 불가능하다며 동영상을 촬영해 내라고 한다. 촬영 수단·장소 등의 조건을 규정하긴 했지만 불안하다. 과연 모든 수험생이 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는 걸까?

2020년, 한국인은 우울하다. 특히 지난달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국민 정신건강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소장 최기홍 심리학과 교수)가 5월, 7월, 9월 등 세 차례 실시한 ‘코로나19 관련 국민 정신건강 추적 연구’는 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경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경험한 비율은 5월 33.9%, 7월 32.3%였으나 9월엔 38.4%로 상승했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우울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전문가 상담이 권장되는 중등도 이상 우울 증상을 경험한 사람도 24.3%(5월), 22.3%(7월)에서 29.5%(9월)로 증가했다.

바이러스는 사라질 기미가 없고 고통은 갈수록 조여드는 시기. ‘코로나 블루’에 맞서 마음을 지키는 길을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 들었다.

한국형 우울·불안 평가도구 활용 설문
응답자 5명 중 1명은 ‘자살 고위험군’

돌봄노동 늘고 자기실현 시간 줄어
여성의 우울·불안, 남성보다 높아

가족 중 누군가가 우울감을 호소하면
전문가의 도움 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소장 최기홍 심리학과 교수)의 ‘코로나19 관련 국민 정신건강 추적 연구’는 이 연구소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환 교수팀 등과 함께 개발한 ‘한국형 우울·불안·자살 위험성 평가도구’를 활용해 온라인 설문조사로 실시됐다. 동일 집단 내에서 세 차례 추적조사를 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난 5월 1차 조사에 1167명이 참여했고, 이 중 936명이 7월 2차 조사에 응했다. 936명 가운데 842명이 3차 조사에 참여했다.

9월 조사 결과는 5·7월 조사 결과와 확연히 차별화된다. 응답자 10명 중 4명꼴로 경도 이상의 우울·불안을 경험하고, 5명 중 1명가량은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지하철을 환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줄어든 126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확진자 비율은 26.8%로, 방역당국이 지난 4월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우울 증상의 경우, 피조사자 전체의 평균 점수가 5월 8.78, 7월 8.66으로 비슷했으나 9월엔 9.95로 높아졌다. KU마음건강연구소가 사용하는 한국형 우울 검사에서 9.0 이상은 ‘경도 수준의 우울 증상’으로 분류된다. 무증상자를 포함한 전체의 평균 점수가 ‘가벼운 우울’ 수준에 이른 것이다. 직접 우울 증상을 경험한 비율은 5월 33.9%, 7월 32.3%였으나 9월엔 38.4%로 증가했다.

불안 검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무증상자를 포함한 전체 평균 점수가 7.97(5월), 8.37(7월)이었으나 9월엔 경도 수준 불안(9.0)을 뜻하는 9.34까지 올랐다.

응답자 중 직접 불안을 경험한 비율은 5월과 7월 각각 33.7%, 35.3%였으나 9월 들어서는 41%로 급등했다. 정신건강 서비스가 필요한 중등도 이상 불안을 호소하는 비율도 5·7월 각각 23.9%, 25.7%였지만 9월 조사에서 31.4%로 치솟았다.

자살 위험성 검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살 위험 집단으로 분류되는 비율이 5월과 7월 26%대로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9월엔 28.1%로 증가했다. 특히 고위험군 비율은 18.3%(5월), 19.4%(7월)에서 20.2%로 높아졌다.

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또 다른 대목은 성별 차이다. 여성 응답자의 우울·불안 수준이 남성보다 눈에 띄게 높았다. 여성의 평균 우울 점수는 5월 조사 때 이미 9.57로 ‘경도 수준의 우울’을 기록했다. 7월에 잠시 9.0 이하로 떨어졌으나 9월 들어 다시 10.48까지 급등했다. 여성의 평균 불안 점수도 5월과 7월엔 9.0 이하였으나 9월 들어 10.17로 상승했다.

KU마음건강연구소는 지난 5월부터 수면·식사·운동·대인관계·교육 활동을 포괄하는 ‘활력지수’ 조사도 함께 실시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도 여성의 활력이 남성보다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9월 조사에서 ‘지난 1주일간 충분한 숙면을 취했느냐’는 질문에 긍정 답변한 비율은 남성의 경우 34.7%였으나 여성은 28.2%에 그쳤다.

‘지난 1주일간 충분한 신체적 활동을 했느냐’는 문항에선 절반에 가까운 여성(45.6%)이 부정적으로 답했다. 같은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한 남성은 32.6%였다. ‘지난 1주일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보냈느냐’는 질문에서도 여성의 절반 이상(52.5%)이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답을 한 남성은 38.4%였다.

최기홍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슬프고 우울하거나 불안감이 든다면,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할 때 감정의 고통을 줄일 수 있어요. 최기홍 교수 제공

연구를 이끈 최기홍 소장(45)은 여성의 우울·불안과 활력지수 저하 사이 관계에 주목했다. 최 소장은 “남성의 활력지수는 5·7·9월 조사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 데 비해, 여성의 활력지수는 9월 들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여성들의 활력 저하에는 연령대별 차이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활동을 하고 새로운 배움의 기회에 노출되는 일은 우울·불안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라며 “보다 정교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재택근무·원격수업의 영향으로 돌봄노동은 늘어난 반면 자기실현을 위한 시간은 줄어든 여성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해석은 다른 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조는 지난 16일 ‘코로나19 위기를 넘어 성평등 노동으로’ 주제의 온라인 토론회를 열고 올해 5~6월 여성 3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6.3%가 ‘돌봄노동 시간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이전보다 늘어난 돌봄노동 시간에 대해선 ‘하루 2~4시간’이라는 답이 17.2%로 가장 많았다. ‘6시간 이상’ 늘었다는 여성도 13.8%나 됐다. 돌봄노동을 누구와 분담하고 있는지 묻자 5명 중 2명(40.2%)이 혼자 감당하는 ‘독박 돌봄’이라고 답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돌봄 부담 때문에 노동 중단 위기에 빠진 여성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돌봄 위기가 계속될 경우 일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3분의 1 이상(36.4%)이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최 소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우울, 불안, 자살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국민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불안 수준이 높아진 9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각자 경험하는 마음의 고통이 이상한 것이 아님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 힘든데, 왜 나만 이렇게 유난을 떠나’ 자책하기보다, 마음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보듬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불안감이 든다면, 요즘의 삶 속에서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돌아보고, 그 일들이 좌절되거나 위협받는지 살펴보라”고 권했다. 감염병으로 여러 활동이 제한되는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할 때 감정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또 “가족이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불화가 생겨날 수 있다”며 “가족 중 누군가가 우울감을 호소하면, 더 심각한 단계로 진행되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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