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포차' 1시간 기다려야 입장.."턱스크는 마지막 양심"

최예린/김종우/오현아 2020. 9. 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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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완화 후 첫 주말 풍경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완화된 첫 주말. 헌팅포차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지난 18일 밤 10시 40분께 서울 강남역 인근의 유명 헌팅포차 앞에는 손님 20명이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사람 2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은 계단에서 대기자들은 앞뒤 사람과 닿을 정도로 밀착한 상태였다. 2m는 고사하고 10c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직원은 손님 사이 간격이 벌어지면 오히려 “앞으로 밀착해 달라”고 안내했다. 기다리는 1시간 20분 동안 직원은 한 번도 마스크를 쓰라거나 거리를 두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자정이 돼서야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이 매장에는 방문자 명부가 없었다. 어떤 직원도 QR코드나 수기 명부로 개인정보를 기록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명부를 기록하라는 요구는 없었다.

 강남·종로·홍대 헌팅포차 젊은이들로 자리 채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완화된 첫 주말. 이날 강남역 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고위험시설’로 분류된 클럽과 유흥주점은 여전히 폐쇄된 상태였고, 헌팅포차 등 주점만 열려 있었다. 비슷한 시각 서울 종로구 종각 부근의 젊음의 거리도 삼삼오오 모여 ‘불금’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 술집은 절반 이상 자리가 채워져 있었고, 일부는 만석인 곳도 눈에 띄었다. 직장인 이모씨(33)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며 “오랜만에 술자리에 나와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돌아오자 상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편의점 업주는 “일주일 전만 해도 1시간에 손님이 1~2명 올까 말까였다”며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오늘은 1시간에 손님이 40명 정도는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앞 거리도 들어서는 순간부터 “술 한잔 마시고 가라”는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클럽은 문을 닫은 상태였으나 헌팅포차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반면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행인들의 어깨가 서로 부딪힐 정도로 북적이던 풍경은 없었다. 불 꺼진 클럽·감성주점 탓에 거리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친구 3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직장인 김모씨(27)는 “체감상 5월 이전보다 80%는 사람이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울상이었다. 지난 5월 클럽발 집단감염 사태 이후 이태원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매출이 바닥을 긴다고 입을 모았다. 100석 규모 이자카야의 한 직원은 “원래 금요일 하루 매출이 2700만원 정도였는데, 5월 이후 90% 이상 줄었다”며 “오늘은 예상 매출이 100만원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자 인기를 끌었던 ‘야외 술자리’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지난 19일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에는 삼삼오오 모여 캔맥주를 마시는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반음식점’ 등록된 헌팅포차는 정상 영업...“이중잣대 아니냐”

고위험 시설에 포함된 헌팅포차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따라 영업할 수 없다. 하지만 번화가의 헌팅포차들은 대부분 정상 영업 중이었다. 헌팅포차가 법적으로 정해진 업종이 아니라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법적으로는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있기 때문에 헌팅 시스템을 중지하고 음식만 판다는 명분으로 문을 열었다.

강남역 부근 헌팅포차로 유명한 주점 입구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헌팅과 관련된 채팅, 게임을 당분간 중지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는 안내문이 부착됐다. 그러나 주점 안에서는 헌팅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용객들은 좌석을 돌아다니며 다른 테이블에 말을 걸고 합석을 시도했다. 합석해 술자리를 즐기는 테이블은 20여개였다. 직원은 합석을 제지하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완화된 첫 주말. 헌팅포차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주점 내부에는 합석이 이뤄진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귓속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시끄러운 전자음악에 비말이 튈 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도 처음 보는 사람과 나눠먹고 있었다. 120여 명의 손님 중 단 한 명도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한 사람이 없었다. 마스크를 턱에만 끼고 있던 주점 이용객 신모씨(28)는 “이런 시기에 놀러 나와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며 “턱에라도 끼고 있는 ‘턱스크’가 마지막 양심”이라고 말했다.

테이블 간 거리두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주점은 77개 테이블 중 입구와 가까운 35개 테이블에서만 테이블 간 거리두기를 시행했다. 눈길이 닿지 않는 매장 안쪽 20개 테이블에서는 거리두기가 전혀 없었다. 의자가 앞뒤로 붙어있는 구조인 탓에 간격을 띄울 수 없었다. 좌우로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로 영업이 불가능한 노래방 업주들은 ‘이중잣대’ 아니냐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지난 19일 코인노래연습장 업주들 약 10여 명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업자등록증 사본’에 검은 띠를 두르고 장례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매장 운영을 재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노래방 업주는 “술집도 비말이 튀긴 마찬가지인데 방역수칙을 지킨 노래방은 정작 세 달동안 전혀 영업을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최예린/김종우/오현아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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