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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국민의 것" 태국 반정부 시위, 금기 깨고 '군주제 개혁' 외쳐

김향미 기자 입력 2020. 09. 2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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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태국 민주화 시위대가 20일(현지시간) 방콕 사남 루엉 광장에서 시위를 상징하는 ‘세 손가락 수신호’를 하고 있다. 이 수신호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 사퇴, 개헌, 반정부 인사 탄압 중지 등 ‘3대 요구’를 뜻한다. 시위대는 나아가 이날 시위에서 군주제 개혁을 촉구했다. 방콕|AP연합뉴스

태국 방콕 도심에서 주말 동안 수만명이 거리로 나와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라며 군주제 개혁과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사퇴를 촉구했다. 태국에선 왕실 모독죄로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왕실 언급 자체가 ‘금기’로 통하는데도,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규모 시위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10~20대 젊은층이 주축인 시위대는 “민주화 투쟁은 우리의 의무”라며 근본적 정치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오전 수천명이 방콕 도심 왕궁 바로 옆 사남 루엉 광장으로 집결했다. 시위대는 광장 바닥에 ‘제2의 민주화 혁명 기념 동판’을 설치했다. 기념 동판에는 “이 나라는 국민의 것임을 국민은 이 자리에서 선포한다”는 글귀가 새겨졌다. 본래 민주화 혁명 기념판은 1932년 태국이 절대왕정을 종식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계기가 된 무혈혁명을 기념해 1936년에 설치됐다. 하지만 현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국왕이 즉위한 이후인 2017년 4월 갑자기 사라졌다.

태국 민주화 시위대가 20일(현지시간) 방콕 사남 루엉 광장에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민주화 혁명 기념 동판을 바닥에 심고 있다. 방콕|AP연합뉴스

기념 동판 설치 행사에서 “봉건제 타도, 국민 만세”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시위대는 애초 동판 설치 후 총리실로 행진해 군부 제정 헌법 개정, 총리 퇴진 및 의회 해산, 반정부 인사 탄압 금지 등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가로막았다. 시위대는 대신 경찰청장에게 요구안을 전달한 후 ‘승리’를 선언하고 자진해산했다.

토요일인 전날 사남 루엉 광장 및 인근 탐마삿 대학 등지에선 약 10만명(주최측 추산)이 모였다. 경찰은 2만명으로 집계했지만, 경찰 추산대로 해도 쁘라윳 총리 취임 후 최대 규모다. 인권 변호사이자 반정부 활동가인 아논 남빠는 전날 집회에서 “군주제가 헌법 아래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며 왕실 예산을 삭감하고, 국왕 권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외쳤다. 집회 참석자들은 “더, 더”라고 외치며 호응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태국에선 올 2월 젊은층의 지지를 받는 야당 퓨처포워드당이 강제 해산된 것을 계기로 반정부 여론이 비등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세를 보인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점점 가열되고 있다. 시위 초반엔 군부 권력 독점을 비판하며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졌으나, 최근 비판의 화살이 왕실을 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태국 왕실 예산은 16%나 인상됐다.

주축은 10~20대 학생들이다. 왕실 개혁을 공론화한 단체 ‘탐마삿과 시위 연합전선’을 이끄는 빠릿 치와락(22)은 19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태국의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군주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왕실 개혁 토론을 시작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우리의 의무”라고 했다.

시위대는 다음달 14일 시민혁명 기념일에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1973년 10월6일 태국 군경이 탐마삿대에 진입해 민주화를 촉구하는 학생들을 유혈 진압했으며, 같은달 14일 타놈 끼띠카촌 총리가 물러났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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