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 "한 게 뭐있나" 말 들은 정은경..'대통령 영웅'서 진짜 영웅되려면
정은경 비판한 현역 의사와 통화
'임명장 밀집 이벤트'에 갑론을박
탁현민은 자화자찬, 의사는 혹평
"파우치 소장은 트럼프에 쓴소리
정은경, 권력에 바른소리도 해야"
코로나 8개월 방역은 제자리 걸음
청 독립 계기로 진짜 실력 시험대
BTS 마스크 벗고 대통령 선물 논란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질병관리청(질병청)으로 승격되기 하루 전인 지난 11일 정은경 초대 질병청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임명장을 들고 충북 오송 청사에 찾아갔다.
문 대통령은 실내에 100명 가까운 직원들이 운집한 가운데 정 청장을 "K 방역의 영웅"이라고 극찬했다. 대통령이 "세계에서 모범으로 인정받은 K 방역의 영웅, 정 본부장님이 초대 청장으로 임명되신 것에 대해서 축하드린다"고 발언할 때 정 청장은 대통령 뒤에서 다시 몸을 90도 굽혔다.
박근혜 정부 때 메르스(MERS) 사태 대응을 잘못해 감봉 징계까지 받았던 아픔이 있는 정 청장으로선 현직 대통령이 직접 달려와 차관급 임명장을 전달하고 영웅이라 불러줬으니 감읍(感泣)했을 법하다.
그런데 이날 깜짝 이벤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행사를 기획한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대통령이) 권위를 낮출수록 권위가 더해지고 감동을 준다"며 자화자찬했다. "몇십년을 되풀이해왔을 뻔한 행사인 임명장 수여식도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충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현역 의사는 자신의 페북에서 혹평했다. 그는 "살다 살다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방역지침 위반하는 것은 처음 본다. 온 국민은 집합금지에 재택근무·이동금지를 명하면서"라고 지적했다.
임명장 수여 현장에 모인 사람 숫자를 일일이 체크한 사진을 근거로 제시한 그는 거리두기 2단계 상황에서 실내 50인 이상 집합·행사를 금지한 "방역 지침 위반"이라고 예리하게 짚어냈다.
이 의사는 "코로나19 와중에 정은경이 한 게 현황 브리핑밖에 더 있나? 중국발 입국을 막았어? 마스크 중국 수출 막았어? (정부의) 여행 상품권을 막았어? 임시 공휴일을 막았어? 염색 안 한 거와 브리핑한 것 이것 가지고 'K 방역 영웅' 민망하지"라고 꼬집었다.
그의 발언이 언론 보도로 논란이 일자 이후 페북 글에서 "방역 1등 영웅은 국민, 2등 영웅은 의료진"이라면서 "정 청장을 포함해 보건소 말단까지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영웅은 아니지만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필자와 통화에서도 그는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파우치 소장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 소리를 하면 반대 의견을 명확히 낸다. 정부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강하게 그건 안된다고 해야 하는데 (정 청장은) 그런 적이 없다"면서 "방역 수장이 지시만 잘 받는 공무원보다는 바른말 하는 전문직 의사이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 청장은 의사 출신 공무원이다.
개인의 시각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탁 비서관의 머리에서 나온 그 날 이벤트는 요즘 말로 'TPO(시간·장소·상황)'에 어긋났고, 대통령과 정 청장을 방역 지침의 예외로 보려는 행태는 뒷맛이 씁쓸하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임명장 이벤트를 비판하는 항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정부의 방역) 명령을 실천하는 중에 손님도 없는 상황에서 영업 정지당해 다 죽어가는데 공무원들이 빼곡히 서서 사진 촬영하는 장면을 소상공인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바라봐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방역은 공무원의 업무고 잘하면 칭찬받겠지만, 반대편에서 많은 사람이 경제·가정 파탄을 겪고 있다. 자살자도 계속 늘어간다"고 호소했다. 결국 하루 만에 정 청장은 "자영업자들께서 그런 장면을 보고 고통과 괴리감을 느끼셨다는 것에 대해 송구하다”며 국민 앞에 90도 허리 숙여 사과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지난 20일 국내 기준으로 8개월이 지났다. 개인정보가 탈탈 털리고 기본권까지 제약당하면서 국민은 방역에 최대한 협조했는데도 현실은 쳇바퀴 돌듯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K 방역을 자랑하는데 코로나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많은 국민은 궁금해한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언제 나올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집단면역 없이는 코로나 종식이 어렵다고 우려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코로나 초기부터 한다던 항체검사는 왜 아직도 극히 제한적이고 부실하게 하는지 의문을 품는 의사도 있다.
지역사회 감염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항체 검사와 함께 RT-PCR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사도 있다. 진단검사 능력이 세계 최고라고 떠들면서 인구 당 검사 건수(World o meters 통계 기준)는 왜 세계 162위인지 따지는 전문가도 있다.
코로나 와중에 인력이 42%(569명)나 늘어난 만큼 질병청은 청와대든 여의도든 복지부든 '정치 방역' 외압에서 벗어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전문가 집단다운 진짜 방역 능력을 이제는 보여줘야 한다. 코로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해 정은경 청장이 진짜 '국민의 영웅'이 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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