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박덕흠 '입찰비리 3진아웃' 법안 무력화 주도했다

오승훈 2020. 9.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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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국토위 회의록에 고스란히
입찰담합 처벌 강화 법개정안에
"국가적 피해..사형과 마찬가지"
"기업 아닌 행위자 처벌 강화해야"
"담합은 공사비가 적은 게 원인"
건설사 '방패'되어 개혁 가로막아
결국 원안에서 후퇴한 법안 통과
업계 원로 "박 의원 건설업자일때
여러차례 입찰담합에 관여" 폭로
검찰, 고발사건 배당 뒤 수사착수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1월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수 통합과 인적 쇄신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당내 중진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건설사들의 입찰담합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에 강력히 제동을 걸어 결국 기준이 완화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위와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피감기관으로부터 일가 기업들이 3천억원에 가까운 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 의원이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도 건설사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입찰비리에 대한 제재를 낮추는 데 앞장선 것이다. 한편, 검찰은 대한전문건설협회와 전문건설공제조합의 전직 기관장 50여명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박 의원을 고발한 사건을 최근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부장 김지완)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2016년 11월 열린 국회 국토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을 보면, 박 의원은 ‘기간제한 없이 3회 이상’ 과징금 처분을 받으면 건설업 등록을 말소하도록 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건설사 피해’ 등을 내세워 가장 강하게 반대했다. 같은 당 정종섭 의원이 낸 이 개정안에 대해, 박 의원은 기간을 6년으로 완화하는 개정안까지 냈다. 국토교통부가 ‘담합 적발부터 처분 완료까지 5년이 걸린다’며 ‘10년 이내 3회 이상’으로 중재안을 제시했으나 박 의원은 거듭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기간이 9년으로 낮춰진 채 법안이 처리됐다.

법안 개정 이전에는 건설사가 입찰담합으로 ‘3년 이내 3회 이상’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을 경우 건설업 등록을 말소해, 담합행위 적발 이후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을 때까지 5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적 효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 이 제도가 도입된 2011년 이후 입찰담합으로 3회 이상 적발돼 건설업 등록이 취소된 사례는 전무하다.

이날 박 의원은 “이게 삼진아웃돼서 예를 들면 현대건설이 걸려 갖고 자르면 상당히 우리 국가적으로 엄청난 피해가 온다”며 “이것은 사형시킨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강도라든가 상해치사라든가 3회, 5번 이상하면 사형시킨다는 그런 거나 똑같은 거”라고 했다.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도 여당 의원이 낸 개정안에 찬성했다. 이원욱 의원은 “입찰담합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부실시공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 건설업계가 욕을 먹었냐”며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부작용 때문에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에 김경환 국토부 차관도 “사실은 3회 이상 담합을 안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이 의원의 발언을 두둔했다.

이에 박 의원은 “도덕책처럼 하면 다들 문제가 없는 거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라며 김 차관을 나무라는 투로 말했고 김 차관은 즉각 ‘공정위 과징금 처분도 건설공사가 제일 많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건설업계에서조차 삼진아웃제를 강화하기로 자정결의를 한 바 있다’는 취지로 반박에 나섰다.

그러자 또다시 박 의원은 “자꾸만 처벌, 처벌만 생각하지 마시고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라… 결국 공사금액이 적어서 담합을 하는 거”라며 “토론회 공청회를 거쳐서… 지금 빨리 급한 게 아니잖냐”고 속도조절론을 내세웠다. 업계에선 관급공사의 경우 어음결제 없이 현금으로 공사비가 지급되고 마진율도 일반 건설공사(아파트 5%)에 비해 높은 편(15%)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날 ‘국가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우려스럽다’ ‘공사비를 더 많이 주면 담합 안 한다’는 자신의 주장이 회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박 의원은 “기업이 아닌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며 업주가 아닌 직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행위자 처벌을 강화하면 사장이 시켜도 안 한다”며 “자꾸만 벌칙을 강화해서 기업들 옥죄는 압박감을 주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 의원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에 국토부는 정종섭 의원안에서 후퇴한 ‘10년 내 3번 적발’로 중재안을 내놓았다. 보다 못한 정 의원은 “국회에 와서 보면 개혁안을 국회에서 전부 마사지를 해 가지고 유야무야 만들어 가지고… 제가 이래서 10년 안도 안 받아들이려고 하는 거다. 뿌리를 뽑아야지 왜 자꾸 이것을 옹호하냐”고 박 의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행위자 처벌을 강화하자는 박 의원 주장에 대해선 “행위자한테만 책임 가고 회사한테는 대미지(피해)가 덜 가면 누군가는 또 하나 총대 메고 또 그 짓 해놓고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박 의원의 이러한 선전(?) 덕분에 정 의원의 개정안은 9년 이내 3번 적발로 후퇴해 법안소위를 통과한 뒤 2017년 3월 본회의를 최종 통과했다. 그 와중에 당시 해당 개정안에 만족을 못한 박 의원은 법안소위 열흘 뒤인 11월18일 다시 6년으로 제재를 더 완화한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기도 했다. 제재 기간을 10년에서 6년으로 좁힐 경우, 3번이나 입찰담합을 한 건설사들이 ‘삼진아웃’될 확률은 더 떨어진다는 점에서, 개혁법안을 무력화하는 개정안을 낸 셈이다.

입찰담합 삼진아웃제 도입을 사활적으로 막은 박 의원에 대해, 그를 잘 아는 건설업계 한 원로는 “박 의원 자신이 건설업자 시절부터 수십차례의 입찰담합에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결국 자신을 위한 입법활동이었다는 얘기다. 19일 <한겨레>와 만난 김아무개 전 대한전문건설협회장은 “박 의원이 원하건설 등을 세울 1990년대 중반, 80~150개 업체를 모아서 공동관리하면서 집단으로 각 구청 관급공사 입찰에 참여하는 불법 입찰조직이 8개 정도 있었다”며 “당시 제일 큰 조직인 ‘ㅎ본드’의 대표 임아무개(고향 선배) 밑에서 행동대장 역할을 한 것이 박덕흠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박덕흠은 1996년 서울시 상하수도공사 입찰 당시 임아무개의 영향력 아래 있던 7개 업체와 함께 불법담합을 해 165억원짜리 공사를 따내면서 기반을 다졌다”며 “원래 125억원에 ㅅ토건에 낙찰된 공사가 임아무개와 박덕흠이 관여한 조작을 통해 박덕흠에게 수주됐다”고 주장했다. 또 “그가 전문건설협회장으로 있던 2008년에도 서울시 자양취수장 이전 공사(2공구) 입찰에 협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참여업체를 선정해 208억원짜리 공사를 불법낙찰받았다”며 “입찰비리 ‘삼진아웃제’를 그렇게 반대한 이유는 박덕흠 본인이 입찰비리로 회사를 일궜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박 의원을 ‘건설업계의 암적 존재’라고 표현한 김 전 회장은 지난 10일 그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박 의원 쪽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채윤태 오승훈 김태규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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