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모녀'도 '51번'도.. 구상권 청구 소송, 재판은 제로

황윤태 2020. 9. 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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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자들에게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은 아직 한 건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반자 대부분이 소송에 대한 답변서 제출을 미루면서 재판 일정이 지연된 탓이다.

2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코로나19로 인한 구상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가운데 공식 재판절차가 시작된 건은 하나도 없었다. 가장 오랫동안 시간을 끌고 있는 소송은 이른바 ‘강남 모녀’ 사건이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간 모녀는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었지만 간단한 약만 처방받은 채 관광을 강행했다. 그 결과 도내 업체 20여곳이 영업을 중단하고, 90여명이 자가격리를 해야했다. 제주도는 3월 이들을 상대로 1억32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제주지법은 소장 접수 이후 6개월 가까이 지난 이날까지도 변론기일조차 정하지 못했다. 도 관계자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모녀 측이) 변호인도 선임하지 않고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고 있어 잘잘못을 다투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자신의 집 근처로 재판부를 변경해 달라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제주도내 온천을 방문한 경기도 안산의 60대 남성은 1억3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뒤 재판부 변경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확진자가 ‘재판을 받으러 오기 너무 멀다’며 인근 법원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하면서도 답변서는 안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확진자가 동선을 허위로 밝혀 소동을 빚었던 경남 창원 소송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창원51번 확진자’는 방역 당국에 협조하지 않아 자녀와 인근 공장 노동자 등에 피해를 끼쳤다. 이 확진자로 인해 창원 신월고 학생과 교직원, 두산공작기계 직원 2000여명이 검체 검사를 받았다. 창원시는 지난달 31일 구상금 3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해야 했던 두산공작기계는 아예 소송을 포기했다. 회사 측은 “(확진자가) 배상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소송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광주의 ‘송파 60번 확진자’에 대한 2억2000만원 구상권 소송 역시 피고인의 답변서를 받지 못해 표류 중이다.

일반적으로 민사소송이 제기되면 피고 측은 30일 내에 답변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기한을 넘겨도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 주영글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피고인이 계속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재판부가 선고기일을 지정해 변론 없이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내릴 수 있다”면서 “항소심까지 답변이 없을 경우 원고인 지자체가 손해배상액 전체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지자체가 소송을 통해 배상액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구체적인 혐의점이 있어야 배상액이 정해지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사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자체 법무담당관도 “피고인들이 답변서 제출 자체를 거부하다보니 업무 우선순위에서 점차 밀리게 된다”며 “다른 지자체에서 빨리 판결이 나오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소송 진행이 가장 진전된 곳은 대구다. 대구시는 재난안전기본법을 근거로 지난 6월 대구지법에 신천지를 상대로 1000억원의 구상권 청구 소송을 냈다. 대구시는 방역비용 뿐 아니라 신천지가 집회장을 누락하고 신도 명단을 허위로 제출해 경제적 손실을 야기한 비용을 함께 계산했다.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89·구속)씨는 3개월 만인 지난 3일 수원구치소에서 소장을 송달받았고, 지난 10일 대형 로펌을 선임해 답변서 준비 작업 등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시 관계자는 “송장이 구치소까지 송달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신천지 측이 변호인단을 꾸린 만큼 조만간 재판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씨 재판 결과나 서울시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상대로 낸 46억여원의 손해배상 판결 결과가 다른 재판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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