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국민의 왕실 분노..시작은 레드불 손자의 페라리 사고
“국민은, 이 나라가 왕실이 아닌 국민의 것임을 선언한다.”
태국 민주화 시위대의 이 같은 선언이 담긴 놋쇠 명판이 사라졌다. 왕실을 정면 겨냥했던 명판이 설치된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닥에 흔적만 남긴 것이다.
태국 정부가 왕실에 대한 공격만큼은 수용할 수 없다며 강력한 법 집행을 예고한 가운데, 태국 정국에 격랑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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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민, 두 달째 반(反)정부 시위 중
앞서 태국 대학생과 시민들로 이뤄진 민주화 시위대는 19일(현지시간) 수도 방콕 왕궁 바로 옆 사남 루엉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인 20일(현지시간) 시위대는 광장에 기념 명판을 설치했다.
주최 측은 2017년 4월 갑자기 사라진 ‘민주화 혁명 기념판’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화 혁명 기념판은 1932년 태국이 절대왕정을 종식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계기가 된 무혈 혁명을 기념해 1936년 왕궁 인근 광장 바닥에 설치된 역사적 기념물이다. 그러나 해당 기념판은 현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이 즉위한 이후인 2017년 아무런 설명 없이 사라졌다. 대신 “국가, 종교, 왕”에 대한 충성을 상기시키는 명판이 자리를 대체했다.
국왕에 대한 충성 메시지를 담은 금속판을 시위대가 민주화를 상징하는 명판으로 또다시 대체하면서 군주제 개혁 요구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날 시위는 수만 명(주최 쪽 추산 10만명, 경찰 2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2014년 쿠데타 이후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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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민, 뭐에 분노했나
시위의 도화선이 된 건 다름 아닌 ‘레드불 스캔들.’ 지난 2012년 9월, 방콕 시내에서 세계적인 에너지 음료 레드불 창업주 찰레오유위티야의 손자인 오라윳유위티야(35)가 페라리를 타고 시속 177km로 과속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차로 치어 숨지게 했다.
당시 과속, 음주 운전, 코카인 복용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보석금 50만밧(약 1900만원)을 내고 풀려났다. 지난달 태국 검찰이 오라윳에게 유리한 증언을 들어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서 비난 여론이 다시 들끓었다. 진상조사 결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변호사, 검사 등이 오라윳의 기소를 막으려고 공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권력에 대한 쌓여있던 불만이 폭발하며 현 쁘라윳 짠오차 정부를 향한 시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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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대 “정부 개혁 위해 왕실 먼저 개혁”
불똥은 곧 왕실로 튀었다. 정부를 개혁하려면 실질적으로 정부 위에 있는 왕실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정부 시위대에 퍼지면서다.
입헌군주제인 태국은 왕실에 대한 비판을 금기로 여긴다. 왕실을 비판하면 ‘왕실모독죄(불경죄)’에 의해 최대 15년 형을 선고받는다. 그런 태국에서 수만 명의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그동안 억눌린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 들어 태국 왕실의 사치가 국내외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부각되며 국민의 불만도 커졌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비행기 애호가로, 38대의 비행기를 소유하고 있다.
태국 왕실은 이번 시위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국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피해 지난 3월 이후 독일 휴양지에 반년 넘게 체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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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기념판 누가 없앴는지 모른다”
한편 기념판이 사라진 것에 대해 방콕시 경찰청 차장인 삐야따위차이는 로이터 통신에 21일(현지시간) “보고를 받았다”면서도 “누가 제거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삐야 차장은 “경찰은 방콕시 당국과 협조해 누가 명판을 제거했는지 확인 중”이라면서 “기념판을 불법적으로 설치한 것은 반정부 집회 주최 측을 처벌할 증거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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