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虎父犬子

황대진 정치부 차장 2020. 9. 2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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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과 특권 타파 꿈꾼 盧, 그와 거꾸로 가는 文정부… 盧의 뜻 따를지 버릴지 文 대통령이 결단할 시간
황대진 정치부 차장

여권이 자식들 때문에 난리다. 정권에서 ‘정의’를 담당하는 법무부의 조국·추미애 장관이 모두 자녀 입시·병역을 둘러싼 특혜와 불공정 시비에 휘말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 의원은 재산 은닉 의혹으로 ‘호부견자(虎父犬子)’ 소리까지 들었다. 호랑이 아비에 개의 새끼란 뜻으로 훌륭한 부모에 못난 자식을 일컫는다. 결국 아버지가 만든 당에서 쫓겨났다.

자식들이 죄를 타고나는 건 아니다. 잘못을 해도 바로잡아주지 않거나, 자기 욕심을 위해 자식을 특권과 반칙에 길들인 부모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욕을 먹는다. ‘부전자전(父傳子傳)’ 아니냐는 것이다. 김홍걸 의원의 숨겨둔 재산이 나올 때마다 “5년간 소득세 135만원밖에 안 낸 사람이 어떻게 100억 재산을 가질 수 있느냐” “아버지가 감춰뒀다 물려준 돈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기무사 문건을 보고 박정희 시대의 계엄령을 떠올리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정치권에는 박정희·박근혜, 김대중·김홍걸 같은 생물학적 부모‧자식 관계도 있지만 ‘정치적 부자’ 관계도 있다. 김무성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적 아버지’라고 부른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자식’은 ‘친문’들이다. 이들은 조국, 윤미향, 추미애 등 불리한 일이 터질 때마다 앞장서서 집안을 지킨다. 그 과정에서 비합리, 몰상식, 궤변이 넘쳐나고 그래도 안 되면 억지를 부린다. 하지만 아버지는 “양념” “마음의 빚” 하면서 자식들을 감싼다. 추 장관도 “엄마가 당대표여서 미안해”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득의양양 자식들은 더 엇나간다.

문 대통령의 ‘정치적 직계 존속’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욕을 후대에 투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치하지 마라”고 했다. “농담 아니라 진담”이라고 했다.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거짓말, 정치자금, 사생활 검증, 이전투구의 수렁이 있고, 이를 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이 충고를 들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전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어떤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정치하지 마라, 그 말이 가장 생각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 (노무현) 5년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10년, 20년 세월이 걸려야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우리나라가 나라다운 나라로 될 수 있다. 그래서 못다 한 그 길을 제가 가겠다”고 했다.

정치인 노무현이 평생 꿈꾼 것은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었다. 퇴임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한평생 신념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의 못다 한 길을 가겠다고 했지만, 그가 꿈꾼 세상은 오지 않았다. 문재인 시대 들어 오히려 그 길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19일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는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 같은 불공정의 사례들을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고 했다. ‘공정’을 37번이나 언급했다. 그러나 조국·추미애 사태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이런 침묵 속에 반칙과 특권은 정권의 DNA 코드처럼 굳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그의 ‘정치적 아버지’가 함께 욕을 먹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를 두 번 죽이는 길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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