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조국 일가 '증언 거부'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원종진 기자 입력 2020. 9. 22. 09:33 수정 2020. 9. 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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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소법 148조에 따르겠습니다."

2주 전 300여 차례 같은 말을 반복한 조국 전 장관에 이어, 지난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재판에 출석한 정경심 교수 모자도 증언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의 증언 거부는 중앙지법을 취재하는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기사화했고, 다시 한번 논란이 일었습니다. 논란은 주로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평가 투쟁'으로 귀결됐습니다. '법정에서 밝히겠다더니 이제 와서 말을 바꾼다',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박해를 받은 피고인들이 정당한 방패를 드는 것이다'. 여론의 법정엔 타락한 가족과 신성한 가족, 두 종류의 초상화가 또다시 내걸렸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족의 증언 거부권 행사는 단순히 뉴스 기사 속 에피소드로 다뤄질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들의 증언 거부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앞으로의 수사와 재판 등 사법체계 전반에 고민거리가 되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 피의자 증인의 증언 거부가 고관대작 법정 문턱을 넘을 때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는데, 이후 검찰이 제게 피의자의 권리를 고지했습니다. (...) 재판 내용에 따라 저를 다시 소환해 기소하거나 저의 증언이 어머니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지난 15일 최강욱 의원 재판에서 정 교수 아들은 피의자인 자신이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법정 증언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말은 지난 7월 2일 정경심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한인섭 교수에게서도 나왔습니다.

"피의자로 돼 있어 공소 제기를 당할 염려가 있습니다. (...) 참고인 조사와 피고인 조사 때 나온 것들은 다 기소 불기소 판단 자료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에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준 높은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는 이들은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소환된 개인의 방어권을 놓치지 않고 행사했습니다. 증언 거부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일었지만, 이들이 법에 규정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 자체를 비난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증인들은 모두 처음부터 증언거부권을 고지받지만, 일반 형사사건 피의자는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물의 행동에 대한 평가야 다를 수 있겠지만, 증언거부권은 영장주의에 비견되는 핵심적 권리이기에, 권리 행사 자체에 대해 공격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조 전 장관의 경우 검찰 조사나 언론 앞에서 "법정에서 밝히겠다"는 뜻을 강조하며 '법원의 시간'을 강조해왔기에 여론의 비판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정경심 교수의 변호인 측이 재판이 끝나고 "조 전 장관의 이야기는 본인이 피고인인 사건에 해당하는 말로 이해한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만, 조 전 장관 피의사실이 정 교수의 혐의와 칼로 무 자르듯이 나눠지는 건 아니기에 어딘지 궁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증언 거부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피의자' 신분이란 압박을 받는 개인의 방패를 법전 밖으로 꺼내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도 있습니다. 조 전 장관 또한 법정에서 "저는 형사법학자로서 진술거부권의 역사적 의의와 중요성을 역설해왔다"며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이들 '고관대작' 법정 문턱을 넘어, 수많은 일반 형사사건에서 시현될 땐 현실적인 고민거리가 생깁니다.

한인섭 교수의 변호인이기도 한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이러한 '피의자 증인'의 증언 거부가 일상화되면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우선 검찰과 경찰 등 수사 기관들의 실무적 변화를 말합니다. "피의자로 입건해서 기소로 위협해 진술을 얻어내는 압박으로는 이제 공판에서의 적절한 입증 방법으로 활용이 어려울 수 있다"며, "수사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제 개선의 필요성도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이와 관련한 세부적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양 변호사는 "피의자 증인의 진술 거부와 관련한 논문 한 편 없는 상황"이라며 논의의 진공 상태를 우려했습니다.


● "수사기관에도 상응하는 도구 필요" 주장도

2022년부터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를 신문해 받은 조서 내용도 법정에서 증거 능력이 제한됩니다. 지금과는 달리,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 조서 내용을 부인하면 그 조서는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 조사 내용은 의미가 없어지고, 법정에서 다시 처음부터 진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쨌든 앞으로의 재판에서 수사기관이 획득한 진술보다는 다른 증거들이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변화와 함께 피의자 증인의 증언 거부가 보편화될 경우, 범죄의 실체 발견을 위해 수사기관에 추가 수단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검찰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근대 인권 개념의 발원지로 알려진 프랑스의 경우에도 수사기관에 감청 권한이나 계좌 추적 권한을 훨씬 광범위하게 부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강하고 확실한 통제 장치 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 능력 제한과 피의자 증인의 진술 거부 보편화에 맞춰 수사기관에도 범죄 실체 발견을 위한 추가 수단을 줘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법 절차에서의 인권 보장과 범죄 실체 발견의 균형을 위해서는 수사기관에게도 추가적인 도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안기부와 국정원의 불법 감청이 자행된 역사가 있기에 이는 분명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에 대한 논의가 더 구체적이고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검찰·사법 개혁, 디테일은 안녕한가요

이러한 가정들이 지금 당장은 먼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 전 장관 재판은 물론 전직 대법원장이 기소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까지, 이른바 '높으셨던 분'들의 여러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법정에서 다뤄지는 형사소송법은 점점 더 미시적인 영역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 법정에서 여러 차례 연구 개발과 임상시험이 끝난 뒤엔,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피의자 증언 거부'와 관련한 디테일한 고민들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검찰 개혁'이 화두가 되며 인권 수사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으면서도, 정치적·도덕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을 철저 규명하라는 고발장은 어김없이 검찰을 향합니다. '인권 보장'과 '철저한 진실 규명'. 적잖은 상황에서 방향을 달리하는 두 요구는 법정에서도 종종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방향의 압력이 가해지는 엔진이 작은 결함만으로 정지하듯이, 복잡한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디테일이 중요합니다. 그 거대한 시스템이 기어 변속을 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이라는 큰 횃불 뒤편, 법제의 디테일들에도 세심한 관심이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조 전 장관과 그 일가족들이 수백 번 넘게 증언 거부를 말할 때, 관심은 다른 곳에도 미쳐야 합니다. 현실적 이야기를 하자면, 이들의 '증언 거부'가 던진 디테일한 과제를 챙겨볼 책임과 권한은 조 전 장관을 임명하고 옹호했던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이 주어져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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