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준선의 Deep Read >與, 대기업을 '악의 축' 인식.. 시장경제·국제표준 역행하는 '압살法'

기자 2020. 9. 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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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규제 3법’ 왜 문제인가

다중규제·이중처벌·투기자본의 경영권 침탈 등 ‘경제 황폐화法’…선진국엔 기업 족쇄 유사 사례 없어

美·日·EU는 규제 철폐 등 ‘리쇼어링’ 정책으로 기업들 대거 본국 유턴… 韓은 되레 ‘오프쇼어링’ 부추겨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제·개정 추진이 논란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기업 경영 활동을 옥죄는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마저 제·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기업의 걱정은 커져만 간다.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로 보거나 글로벌 트렌드로 보거나 관련 법안들은 대기업 경영권 침탈, 법인격 독립 무시, 다중규제와 처벌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들 법안은 공정성도 없고 보편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한국 외 선진국에는 존재하지 않고 국제표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업 족쇄법’이자 ‘경제 황폐화법’이다. 대기업 집단을 ‘악의 축’으로 보는 압살(壓殺) 정책을 대기업에 구사하는 것이다.

◇ 상법 개정안은 ‘경제 황폐화법’

상법 개정안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재는 상장회사의 주주가 소수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최소 6개월을 보유해야만 하는데, 이 요건을 폐지하겠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늘 증권시장에서 3%를 매입해 3일 후 명의가 넘어오면 바로 이사·감사 해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개인 주주는 상장회사의 주식 3%를 갖기 어렵지만 펀드 쪽에서는 쉬운 일이다. 2015년 외국 투기 자본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주식 11.61%(1867만1098주)를 취득해 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소집통지금지·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한국 상법에는 경영권 침탈 수단만 잔뜩 나열돼 있고 변변한 방어수단은 없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개인 소액주주가 아닌 국내외 펀드만 보호하게 되고, 펀드에 의한 소송 남발과 경영권 위협이 일상화할 것이다. 대기업 그룹 지주회사를 공격하면 그룹 경영권 전체가 위험에 노출된다.

다중대표소송은 모회사의 이사가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회사 문제를 자회사 주주에게 맡겨야지 왜 모회사 주주가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근대 사법의 대원칙인 ‘법인격 독립의 원칙’을 무너트리는 법안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펀드 대표가 감사위원으로 선출돼 이사회에 출석, 펀드에 유리하게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거나 훼방을 놓거나 기업 기밀까지 빼 갈 수 있다. 이사회는 기업의 심장이다. 심장을 ‘적(敵)’에게 내줘야 하는 상황을 맞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가 아닌 ‘경제 황폐화’ 법인 셈이다.

◇ 대기업 다중규제·처벌 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경성담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든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검찰에 직접 고발할 수도 있다. 기업은 공정위와 검찰 양쪽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다중제재’의 위험을 안게 된다. 유럽의 경우 산업 정책 차원에서 정부가 카르텔(담합)을 장려하기도 했고 현재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경성담합에 관해 3배까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것 외에도 과징금을 2배로 올린다고 한다. 과도한 ‘이중처벌’이다. 신규 설립·전환 지주회사의 지분율도 상향하라고 한다. 자회사 주식을 더 취득하려면 회사에 따라서는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된다. 자회사 주식을 끌어안고 있으면 투자에 쓸 대규모의 자금이 사장된다. 기업그룹의 형태를 특정해 몰고 가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그룹감독법은 금융회사를 가지고 있는 그룹 총자산 5조 원 이상인 삼성·현대차·한화·미래에셋·교보·DB 등 6개 복합금융그룹을 타깃으로 하는 법안이다. 이들 대기업은 이미 공정위와 금융감독원의 철저한 감독을 받는다. 지금도 기존 금융계열사가 업권별 규제를 받고 있고, ‘금융그룹감독에 관한 모범 규준’이 시행 중이다. 여기다 유사한 내용의 또 하나의 법률을 만들어 강도 높은 다중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감독 대상이 지배구조나 비금융회사 거래와 출자관계 등으로 확대돼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사전 통제 근거가 된다. 국제사회의 깡패국가로 찍힌 나라에서나 쓸 만한 ‘최대의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과 같은 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 쓰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집단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법안들이다.

◇ 전 세계의 기업 보호 정책

지금 온 세계는 ‘차세대 기술혁신’이 화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아니라도 4차산업이 도래하면 직업과 일자리 자체가 상당수 사라진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이른바 ‘무용계급(useless class)’이 거리로 쏟아진다. 이런 거대한 물결이 밀려오는데 대기업 규제·중소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기업 규제에 골몰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국가의 간섭과 규제를 이기지 못해 기업이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 그 결과는 빈부 격차 심화와 비숙련 근로자들의 일자리 대량 상실로 돌아온다. 중산층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생산공장이 국내에 있어야만 하는데, 거꾸로 된 정책이 나오는 것이다.

미국은 강력한 ‘리쇼어링’ 정책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미 생산자연합회(CPA)가 측정한 ‘미국 CPA 리쇼어링 지수’는 2019년에 역대 최고 수준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시켜준다. GM 한 개 그룹이 지난 한 해 리쇼어링을 통해 미국에 만든 일자리 숫자만 무려 1만2988개다. 해외로 나갔던 미국 기업의 본토 유턴 숫자는 2014년 340개, 2015년 294개, 2016년 267개, 2017년 624개, 2018년 886개로 증가 일로다. 9년간 총 3327개 기업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 미국의 아시아 지역 수입품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67%에서 2019년 6월 기준 56%로 확 줄었다. 미 비영리법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Reshoring Initiative)’에 따르면 2010∼2017년 리쇼어링과 외국인직접투자(FDI)로 인해 창출된 미국의 누적 제조업 일자리는 자그마치 57만6000개였다.

유럽연합(EU)도 최근 5년간(2014∼2018년) 253개 기업이 유턴했고, 이 중 제조업이 218개로 85%를 차지했다. 일본 정부도 2020년 4월 공급사슬 개혁을 위해 22억 달러(약 2조70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중국으로 갔던 자국 제조기업의 본국 귀환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 직후 토요타·혼다·닛산 등 글로벌 자동차 3사와 캐논 등이 일본으로 공장을 옮겼다.

◇ 기업 옥죄기는 포퓰리즘

한국은 2013년 ‘유턴 기업법’ 시행 이후 복귀한 기업 숫자가 74개에 불과하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의향 조사 결과를 보면, 앞으로도 대규모 기업 유턴은 정부의 대기업 인식과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국가의 지나친 간섭과 개입이 만들어낸 정부 불신에 따른 결과다. 이 와중에 기업 족쇄 3법을 만들어 기업들의 목을 조르겠다는 것이다. 이들 법안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최소한 선진국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이런 법안을 추진하고 찬성하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세줄 요약

경제 황폐화법 : 상법 개정안은 개인 소액주주가 아닌 국내외 펀드만 보호하고, 대기업에 대한 소송 남발과 경영권 위협을 일상화하게 할 수 있음. 경영권 전체가 위험에 노출될 수도. 기업의 심장을 ‘적(敵)’에게 내주는 압살 정책이자 ‘경제 황폐화’ 법인 셈.

다중규제·처벌 법안 :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은 공정위와 검찰 양쪽으로부터 ‘다중제재’를 받게 될 것. 금융그룹감독법 역시 ‘다중규제’로 경영 자율성을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음. 대기업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법안들임.

국제표준과 한국 : 미국은 강력한 ‘리쇼어링’ 정책으로 9년간 3327개 기업이 고국으로 돌아옴. 한국은 오히려 ‘오프쇼어링’을 부추김. 국제표준으로 볼 때 대기업 옥죄기 법안은 유사 사례가 한 건도 없음. 반(反)기업 3법 추진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임.

■ 용어 설명

‘경성담합’이란 가격담합, 입찰담합, 시장분할 등 이른바 ‘센’ 담합을 말함. 여권은 대기업 경성담합에 대해서는 전속고발제를 폐지해 형사제재를 강화하기로 함. 상대적으로 ‘약한’ 담합을 ‘연성담합’이라 함.

‘리쇼어링’은 해외로 간 기업 생산기지의 본국 회귀를 말함.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것. 이는 싼 인건비와 판매시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의 반대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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