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중시하는 스가 총리, 왜 한국에 시큰둥할까요?

길윤형 입력 2020. 9. 22. 15:26 수정 2020. 9. 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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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지연도 혈연도 없는 이 요코하마에서 정치의 세계에 뛰어든 뒤 다다른 곳이 오코노기 선생의 사무실이었습니다."

일본의 휴일인 21일 '경로의 날'을 맞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방문한 곳은 그의 은인인 오코노기 히코사무로 전 건설장관의 묘소였다.

스가 총리는 1975년 오코노기 전 장관의 비서로 11년을 일한 뒤,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중의원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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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길윤형의 알고싶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0일 밤 도쿄 관저에서 취재진을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으로 통화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동맹 강화에 공감하면서 “필요하면 24시간 언제라도 연락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45년 전, 지연도 혈연도 없는 이 요코하마에서 정치의 세계에 뛰어든 뒤 다다른 곳이 오코노기 선생의 사무실이었습니다.”

일본의 휴일인 21일 ‘경로의 날’을 맞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방문한 곳은 그의 은인인 오코노기 히코사무로 전 건설장관의 묘소였다. 스가 총리는 1975년 오코노기 전 장관의 비서로 11년을 일한 뒤,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중의원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동안 거쳐온 세월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는지 치밀하고 냉정한 ‘일 벌레’로 알려진 스가 총리 답지 않게 이날 목소리엔 잔뜩 물기가 묻어 있었다. 그는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내각’으로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의 16일 취임을 계기로 청와대는 “언제든지 마주 앉아 대화하고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 일본의 적극적 호응을 기대한다”며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쏟아냈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스가 총리는 20일 밤 즉석 기자회견에 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와 전화 회담을 했다고 발표했지만,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일 보내온 축하 서한에 대한 답장에서 “어려운 문제를 극복해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를 구축하자”는 원론을 언급했을 뿐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을 계승한다고 밝혀 온 스가 총리가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냉철한 현실론자이지만,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스가 총리가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28 합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인 것으로 전해진다. 스가 총리는 일본 보수의 정서를 대변하는 월간지 <분게슌주> 최근호 인터뷰에서 “일-한 정부가 2015년 말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했다. 한국이 합의를 뒤엎을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관계가 이상해질지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는 특히 이 합의의 한국 쪽 책임자였던 이병기 전 주일 한국대사(전 청와대 비서실장)가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은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취임 이후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쪼개 오코노기 묘소를 찾아 감회에 젖는 것처럼 인연을 중요시하는 스가 총리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단면이다.

현재, 한-일 사이엔 꼬여 있는 복잡한 현안이 너무 많아 단숨에 관계 개선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 때문에 여유 있지만 끈질긴 태도로 관계 개선을 시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엔 8·15 담화와 대통령 특사 등을 통해 관계 개선의 성의를 보였지만, 일본의 호응이 없었다는 이유로 불과 일주일만인 22일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석달 만에 이 결정을 번복해야 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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