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교육부의 '마구잡이' 종합감사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20. 9. 23.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여러 사립대학에서 교육부 종합감사가 진행 중이다. 교육부가 2021년까지 실시하기로 한 종합감사 대상 사립대학은 고려대·연세대·서강대·홍익대·가톨릭대 등 학생정원이 6000명 이상인 학교다. 교육부는 7조원 상당의 정부 재정을 지원받는 사립대 중 일부에서 회계부정, 법인비리 등 상식과 원칙에 어긋난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연세대, 홍익대, 고려대가 종합감사를 마쳤고 현재 다른 대학들에서 종합감사가 진행 중이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의 재정지원에 대해 철저한 회계감사를 하는 것은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부의 종합감사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이들 대학에 대한 마구잡이식 감사와 무더기 징계요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감사를 받는 대학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사립대학들로서 회계의 투명성이나 교육 및 연구의 질에서 일부 족벌 비리사학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대학들인데도 말이다.

종합감사는 처음이지만 이들 대학은 그동안 회계감사는 주기적으로 받아왔고 규정에 어긋난 예산집행으로 지적받은 사항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이를 개선해왔다. 사실 회계부정은 일부 족벌비리 사학들의 문제로서 그동안 이들에 대해 처벌이 미미했던 이유는 교육부의 일부 퇴직 관료들이 족벌비리 사학에 재취업하여 재단의 회계부정과 비리를 덮어줌으로써 이런 비리가 재생산되도록 하는 데 일조한 탓도 크다. 또 그동안 사립대학의 종합감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근본 이유는 교육부의 자체 사정 때문이었다. 종합감사는 대학전반의 업무를 훑어야 하기에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교육부 자체의 감사인력이 부족하여 그동안 이를 미루어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무작위 추첨으로 소수 대학을 뽑아 종합감사를 벌이는 게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는데 이번에는 ‘종합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마치 이 대학들이 의도적으로 종합감사를 회피한 것 같은 여론전을 펴고 있다.

이번 종합감사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조치가 대학원 입시 관련 부분이다. 2020년 2월에 있었던 고려대에 대한 교육부 종합감사를 예로 들어보자. 2017학년도 전기부터 2019학년도 후기까지의 대학원 입시전형에서 ‘개인별 평점표’라고 불리는 양식을 미작성 혹은 미보관했다는 이유로 해당 기간 대학원 주임교수로 일했던 교수 53명이 무더기로 징계처분 대상자 통보를 받은 것이다. 위 감사 대상 기간 동안 고려대에서는 종합평점표만 제출하도록 돼있고 개인별 평점표는 모든 학과의 대학원 입시전형에서 반드시 작성되고 보관돼야 할 서류라고 취급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대학원 입시전형은 대학 입시전형과 달리 고도로 전문화된 각자의 영역에서 학자가 되려는 미래의 연구자들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하는 과정이다. 모든 전형위원은 각 지원자의 학문적 관심과 잠재력 등을 다른 지원자와 비교, 종합하여 이를 평정한 결과를 종합평점표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고 전형위원장인 주임교수는 개별점수를 모든 전형위원들의 입회하에 합산한 후 전형위원들의 서명을 받아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동안 고려대가 학문적으로 일취월장하여 이제는 세계유수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던 것도 이런 엄격하고 전문적인 과정으로 우수한 학문연구자들을 선발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개인별 평점표라고 하는 대학원 입시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작성과 보관이 필수적이지도 않은 하나의 양식이 없다는 이유로 교수 53명에 대해 윤리적 비난을 가하고 검찰에 수사의뢰까지 하였다. 이는 명백히 감사권한의 남용이고 뛰어난 연구업적을 보유하고 있는 교수들에 대한 모욕이다. 특히 이번 감사에서 대규모로 투입된 시민감사관들이 대학원 교육과정과 전형과정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에 불명예를 뒤집어쓴 주임교수들은 대학원 교육과 학문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왔다. 사실 외국의 대학에서는 행정직원들이 맡아야 할 업무들을 우리 대학들의 열악한 예산 환경으로 인해 이분들이 희생하는 마음으로 맡아서 일해왔는데 그러한 희생에 부당한 징계요구와 인격적 모욕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것도 모두가 힘든 코로나19 위기 시에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를 자임하고 있다. 회계부정과 같은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해야겠지만 그와 전혀 상관없는 대학원 교육 및 입시와 관련한 사항으로 세계적 석학들에 대한 대규모 징계요구를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가 지나치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