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과정의 '열차 충돌'.. '일본 스파이' 개입 확인

광주CBS 박요진 기자 2020. 9. 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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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건은 일본 스파이가 개입된 계획적인 범행이었다는 사실이 러시아 정부의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23일 전남대 김영술 디아스포라학과 연구교수에 따르면 김 교수는 최근 러시아 연방 대통령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열차 충돌 사건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강제이주 과정에서의 열차 충돌 사건이 일본 정보기관과 트로츠키파가 공모해 저지른 사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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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김영술 연구교수, 러시아 대통령문서보관소에서 사료 발굴
일본 정보기관과 트로츠키파가 공모해 열차 충돌 야기
열차 자동 결합 해제 방식으로 범행
열차 출발 인원과 도착 인원 차이..670여 명 희생된 듯
"한반도 식민통치와 동북아 패권 야욕이 만든 테러"
지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와 열차 충돌사건이 발생한 소련 극동 지역(사진=김영술 교수 제공)
지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건은 일본 스파이가 개입된 계획적인 범행이었다는 사실이 러시아 정부의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23일 전남대 김영술 디아스포라학과 연구교수에 따르면 김 교수는 최근 러시아 연방 대통령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열차 충돌 사건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강제이주 과정에서의 열차 충돌 사건이 일본 정보기관과 트로츠키파가 공모해 저지른 사실을 확인했다.

김영술 교수가 확보한 자료는 'АП РФ. Ф. 3. Оп. 58. Д. 254. Л. 203—215'로 1937년 9월 19일 극동 지역 하바롭스크 제3 국가안보국 내무인민위원회 책임자 류쉬코프가 소련 내무인민위원 부책임자 예조프와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서기장 스탈린에게 특별 통지 문서로 보낸 것이다.

이들은 달리는 열차가 약간의 제동을 하면 열차의 자동 결합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열차 충돌 사건을 저질렀다. 열차 충돌 사고와 트로츠키파의 관련성은 충돌 열차 기관사인 바라흐틴(Барахтин)과 수석 차장 로마노프(Романов)가 체포돼 자백하면서 드러났다.

이후 이들은 한인 이주자들이 탑승한 열차 충돌시킨 혐의로 체포됐으며 트로츠키파의 사보타주에 연루됐다고 증언했다.

해당 문서를 통해 소련 극동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사보타주 행위는 일본 정보기관과 트로츠키파가 공모해 발생했다는 사실 역시 드러났다.

실제 소련 한인 열차 충돌 사건은 1937년 9월 12일 도르미 돈토 프(Дормидонтовка)-하카(Хака) 구간에서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14대의 열차가 부서졌고 수많은 한인들이 희생됐다.

고려인 강제이주 당시 발생한 열차 충돌사건이 언급된 문서(사진=김영술 교수 제공)
한인 열차 충돌 사건과 관련해 일본 스파이 볼스키(Вольский)의 시마다(Симада)에 대한 증언 역시 중요하다. 당시 볼스키는 소련 주재 일본 제국주의 하바롭스크 총영사 시마다 지시를 받는 스파이 조직원이었다. 시마다는 볼스키에게 한인 이주를 최종적으로 해체하고 도로에 교통 체증을 만들고 첫날부터 일련의 열차 충돌을 조직한 다음 혼란을 인용해 운송을 연기시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후 시마다는 자신의 요원들에게 한인을 비난하고 극동에서 이주 반대를 선동하며, 이를 위해 한인들의 추방을 지연시키기 위해 일련의 열차 충돌을 조직하도록 지시했다. 일본은 극동 지역 개입을 계획했고, 이어 일본은 트로츠키파 조직과 손잡고 한인 이주 열차 충돌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김영술 교수는 "열차 충돌 사건은 소련 트로츠키파와 일본 제국주의와 관련이 있는 스파이 조직이 행한 것"이라며 "특히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와 일제의 동북아 패권 야욕이 만들어낸 민족 테러였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관련 문서를 분석한 결과 출발 한인 17만 2600명에서 도착 한인 17만 1927명을 빼면 차이가 673명이 나며, 이들이 사망자일 수 있다"며 "한인 열차 충돌 사고자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은 만큼 새로운 자료 발굴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1937년 소련의 스탈린 정권하에서 극동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추방한 사건으로 전체 민족 집단이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한 비극적 민족 탄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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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CBS 박요진 기자] truth@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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