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코로나 비용' 청구서를 보며 한숨을 쉽니다" [방구석 연대기 외근 사무직원 ②]

오승재 2020. 9. 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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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는 코로나 시대의 생존자들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좁은 방구석에 갇혔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업무를, 수업을, 식사를, 육아를, 쉼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목숨을 지키는 대가로 가진 것들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사업장이 문을 닫아서, 과외를 쉬어야 해서, 버스가 무서워 택시를 타느라, 단골 식당이 아닌 배달 음식을 먹어서, 낮에도 집에서 에어컨을 켜야 하기에 알게 모르게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것을 ‘코로나 비용’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대책 없이 빠져나가는 이 코로나 비용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코로나의 증인들입니다.

모두가 힘든 이 상황에, 우리의 목소리는 배부른 소리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살아 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에 드는 비용이 늘어나 ‘부담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배부른 소리를 더욱 높여 알리고자 합니다. 그렇게 너도 나도 떠들기 시작해 모두의 하소연이 세상에 울려퍼져야만, 진정으로 배고픈 자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이지 못하는 우리는 여기 ‘방구석’에서 코로나를 증언하겠습니다. 사회로부터 어떻게 코로나 비용을 지불 ‘당’했고, 그래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떠들겠습니다. 우리 5명의 청년들은 지금, 코로나에 맞서기 위한 ‘방구석 연대기’를 써보려 합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서울 신도림역에서 7일 오전 출근하는 시민들이 모두 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저는 어느 법무법인의 외근 담당 사무직원입니다. 외근 업무는 서류 제출부터 기록 복사까지 다양합니다. 민사와 신청, 행정 사건의 경우 전자소송시스템이 도입되어 상대적으로 외근 수요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 해당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은 형사의 경우 사건 진행을 위해서는 사무직원의 외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피의자 내지 피고인이 법적 방어권을 제 때 행사하기 위해서는 고소장이나 공소장, 공판기록, 증거기록의 복사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근은 법원이나 검찰청 같은 기관을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동과 대면 없이 일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대법원·대검찰청부터 지역에 있는 시·군 단위 법원이나 검찰청까지 사무직원이 가야 할 출장지는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법원과 검찰청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과 접촉하게 됩니다. 한여름에는 무거운 기록을 들고 복사기 앞에서 씨름하며 많을 때는 수십 권, 수백 권에 이르는 기록을 한 장 한 장 복사하느라 땀을 온몸에 뒤집어쓰는 일이 허다합니다. 민원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면서는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수십 분 동안 씨름하듯 출장 기관 직원과 대화를 나눠야 할 일도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의 확산과 지속은 사무직원 외근의 노동 강도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하루종일 외근으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됩니다. 마스크 끈 때문에 얼얼해진 귀와 뛰어다니느라 아픈 다리를 번갈아 주물러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이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법원이나 검찰청 공무원들이 기관 지침에 따라 공가 내지 연차휴가를 쓰고 자리를 비우면, 당장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앞에 두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바로 사무직원입니다. 그러나 상당수 사무직원은 공가는 고사하고 연차휴가조차 쉽게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 비용’은 당연하다는 듯 발생하고 있습니다. 침과 땀에 젖은 마스크를 매일, 어떨 때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바꿔 껴야 하므로 다량의 마스크를 구입해둬야 합니다. 사무실에서 지원해주는 마스크가 있기는 하지만 필요한 만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마스크를 사기 위해 포털 사이트 검색을 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스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 여러 곳을 전전하며 단돈 몇백 원이라도 더 저렴한 제품을 찾고, KF94와 KF80, 그리고 비말차단용 마스크를 두고 꽤 오랜 시간 고민하는 스스로를 보며 비참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마저도 구하기만 하면 다행이거나 공적 마스크로 버티던 때도 있었으니 어쩌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코로나 비용’은 지갑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치러야 합니다. 외근 담당 사무직원은 사무실 내에서 코로나19 감염을 확산시킬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매개체가 됩니다. 구성원 개개인의 선의나 악의에 기대는 문제가 아니라 감염 이후 삶이 전면적으로 정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도 감염 예방을 위한 별도의 지침을 공지하고 있습니다. 밥은 배달시키거나 포장하여 집에서 먹어야 하고, 일과 시간 이후에 친구를 만나기란 사실상 불가합니다. 저에게 근무시간 외에 허락된 유일한 세상은 5평 남짓 되는 신림동 반지하 자취방뿐인 것입니다. 외로움과 우울함, 그리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만 친구 삼아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재난의 시대, 대면 노동자는 일을 위해서라면 전국 곳곳을 누벼야 하지만, 나를 위해서는 정작 외식 한 번 편하게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코로나19 확산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지침을 따르는 것 자체에 부당함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침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과 고통의 무게가 균등하게 배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과연 동등한 무게의 ‘코로나 비용’을 분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일부 중대형 로펌을 제외하면 사무직원의 노동조건이 자랑할 만한 수준은 못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를 받고 근로기준법의 제대로 된 적용조차 받지 못하는 중소형 법인이나 사무소들이 많습니다. 개인사업자인 변호사가 사무직원을 고용하는 형태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분류되는 사업장이 상당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저임금보다는 조금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있지만, 홀로 독립하여 서울 생활을 꾸려나가다 보면 빠듯한 것이 현실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나는 식사, 마스크 구매 비용은 매월 신용카드 빚으로 남겨 다음 달의 저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내일도 출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코로나 비용’ 문제는 특정 직종이나 직업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코로나19 시대 위험의 최전선에서 재난 속 한국 사회를 멈추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안전하지 못한 이들의 상당수는 대면과 외근을 주로 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혹독하게 ‘코로나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대면-서비스-필수 노동자를 가리켜 ‘당신이 멈추면 대한민국이 멈춘다’고 말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우리가 노동을 멈추지 못하도록 독려할지언정, 강제로 우리의 일상이 멈춰지는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용 유지만은 해달라’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최대한의 고통분담안을 제시한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하고, ‘일하다 죽거나 다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적어도 그런 일이 발생하면 산재보험을 통한 보상만은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지 않고 있습니다.

거리로 내쫓겨 몇 달 동안 실업급여를 받아가며 겨우 생활을 연명하다가 버티지 못해 내몰리는 빚더미와 산재보상을 한 푼도 받지 못해 써야 하는 치료비도 결국 코로나 시대, 한국 사회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입니다. 전재산을 털어 차린 영업점에서 ‘코로나 걸리기 전에 굶어죽겠다’고 말하는 영세 자영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죽음이나 죽음에 가까운 고통으로 치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코로나 비용’ 청구서를 보며 절로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고통은 언제까지 홀로 짊어져야 할까요. 의문에 답하기 위해, 스스로의 노동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그 모습에서 나와 닮은 대면·서비스 노동자들의 얼굴을 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저도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오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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