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지금까지 이런 수사는 없었다

박국희 기자 2020. 9. 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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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사회부 기자

서울동부지검이 지난 22일 이른 아침부터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어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사무실과 주거지를 압수 수색했다”고 밝혔다. 검찰을 취재하면서 수사팀이 어디를 압수 수색했다고 언론에 먼저 알려주는 경우는 처음 봤다. 이전에는 압수 수색을 했다는 보도가 나와서 물어보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부지검뿐 아니라 다른 검찰청도 마찬가지다. 추 장관 아들 압수 수색 보도자료를 낸 당일 국회에서 “추 장관 아들이 휴가 복귀 당일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복귀 시간을 놓쳤다”는 제보를 야당 의원이 폭로했지만 이에 대해서 동부지검은 역시나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추 장관 보좌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군 관계자 진술이 조서에 누락됐다는 문제가 나왔을 때도, 김관정 동부지검장이 대검 형사부장으로 있으면서 수사팀의 국군병원 압수 수색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도, 동부지검은 초지일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나왔다. 그런데 왜 압수 수색 건은 언론이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보도자료까지 뿌리며 공개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시점도 괴이하다. 동부지검은 추 장관 아들을 지난 13일 소환 조사했다. 그러고는 8일 뒤인 21일 아들 휴대전화와 원룸 등을 압수 수색했다고 밝혔다. 비밀리에 압수 수색을 하고 주요 증거를 확보한 뒤 이를 토대로 피의자를 소환해 혐의를 추궁하는 게 검찰 수사의 ABC 아닌가. 동부지검은 스스로 검찰 수사 기본을 부정하면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압수 수색했다는 사실 자체도 황당하다. 이번 사건은 추 장관 아들이 군 복무 시절 의혹에 대한 내용이다. 2017년 있었던 일인데 지금 쓰는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한 해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기가 쏟아지는 요즘, 3년째 같은 휴대전화를 쓰는 젊은이가 얼마나 있을까. 설사 그가 3년째 같은 휴대전화를 쓴다 해도 이 사건이 고발된 뒤 8개월이 지났는데 그동안 검찰이 필요한 증거를 휴대전화에 차곡차곡 보관해서 이번에 순순히 넘겨줬을 리는 만무하다.

동부지검 안팎에선 “추석 전에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 결과적으로 한 달 만에 끝낼 수 있는 사안을 놓고 8개월간 도대체 뭘 한 건가. 엉겁결에 그동안 부실 지연 수사를 했다는 걸 자백한 꼴이다. 검찰 내에선 “수사력은 수사 의지에 제곱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동부지검이 보여준 수사 실력은 결국 수사 의지가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증거를 수집하고 혐의를 입증하는 수사가 아니라 “문제없다”는 국방부 발표,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없다”는 추 장관 발언에 따라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다. “전방위로 수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면서 당장 내일이라도 동부지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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