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파 권력]김동욱·상인·판사도 당했다, 문파 집요한 조리돌림

한영익 2020. 9. 2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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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따로 없어요”
충남 아산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여성 A씨의 목소리는 아직도 떨렸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시장을 찾았을 때 “경기가 거지 같아요”라고 말했다가 문파(文派)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대통령에게 욕을 했다”는 이른바 ‘불경죄’가 공격의 이유였다.

지난 21일 만난 A씨는 “많은 사람들이 반찬가게로 찾아와 욕을 하고 괴롭혔다. 창피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방문 직후, 한 달 가량은 아예 반찬 가게를 비울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컸다. 1차 공격은 기사에 달린 악플이었다. “어리석은 아줌씨가 마음이 고약해 잃을 게 많아 보인다”와 같은 인신공격성 댓글이 쏟아졌다. A씨의 휴대전화 번호가 문파들 사이에서 공개되며 몇 분 간격으로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서도 전화벨이 울렸다. A씨는 “휴대전화를 쓸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가장 무서웠던 건 직접 가게를 찾아와 욕하는 이들이었다. A씨는 2~6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았다.

“어떤 사람이 찾아와 옆에서 반찬가게 사진을 찍으면서 욕을 했어요. ‘대통령에게 왜 욕을 했느냐’며 몰아세웠습니다. 스마트워치(누르면 경찰관이 호출되는 기기)를 누르려고 했는데 떨려서 누르지 못했어요. 너무 놀라서 어떤 방법도 생각이 안 났거든요. 지금도 그 때 기억에 심리적으로 힘들어 출근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4월엔 퇴근길에 위협을 받았다. A씨는 “키가 무척 큰 남성이었다. 오후 7시쯤 퇴근해서 집에 가는 도중에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대통령에게 왜 욕을 했냐’며 위협했다. 지금도 그 공포감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누군가 가게 앞에 서있으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악플을 달았던 100여명 이상을 모욕죄 등으로 고소한 A씨는 “고통이 너무 컸다. 선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오후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 전통시장에서 상인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처럼 문파에게 ‘좌표’가 찍혀 고생한 사례는 각 분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수 JK김동욱은 지난 14일 트위터에 “Choo하다 Choo해”라는 글을 올렸다 문파의 비난이 폭주하자 계정을 폐쇄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트윗이라는 게 공격 이유였다. 그가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는 ubc울산방송 인터넷 게시판도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글로 뒤덮였다. 배우 박하나씨도 2월 인스타그램에 코로나19와 관련 “재앙과도 같은 이 힘든 시기를 우리 모두 잘 이겨내봐요!”라고 썼다가 게시물을 삭제했다. ‘재앙’이라는 단어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며 문파의 비난이 폭주한 탓이었다.


공론장의 이견에 관용 없는 문파

문파들의 위협, 어떤 결과 낳았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문파의 이같은 공격적 행태는 ‘공론장’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진보 성향 정치평론가 김수민씨가 지난해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했다가 출연하던 방송 4곳(팟캐스트 3곳, 지상파 라디오 1곳)에서 하차한 게 대표적 사례다. 문파들은 그가 출연하던 방송 게시판에 몰려가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가겠네” 등 악플 세례를 퍼붰다. 옥탑방에 살았던 그의 과거 사생활까지 캐내 “그러니까 옥탑방 살지. 옥탑방에서 얼어죽어라” 등 인신공격성 악플을 다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팟캐스트는 운영에 부담이 될 것 같아 좌표가 찍힌 직후 자진하차했다. 지상파는 제작진이 ‘하차하지 말라’고 해 버텼지만, 10월에 오히려 방송사 측이 하차를 요구했다. 청취율에 민감한 방송국 입장에서 방송할 때마다 악플을 퍼붓는 문파의 화력을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0여 년 전에는 박사모에게서 이런 일을 당했는데, 똑같은 일을 반대 진영에서 당하다니…”라며 씁쓸해했다.

문파들은 아군으로 여겼던 진보 언론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7월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윤 총장이 변호사 소개를 알선했다는 취지의 통화녹음을 공개했다가 후원자 3000여명 가량이 후원을 끊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렀다. 지금은 정반대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적폐청산 수사 직후라 청와대가 윤 총장을 적극 옹호하던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뉴스타파가 윤 총장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자 일부 문파들이 격렬히 반발한 것이다.

2017년에는 안수찬 전 한겨레21 편집장이 문 대통령 표지 사진 때문에 문파들과 논쟁을 벌이다가 페이스북에 “굳이 달려드니 어쩔 수 없이 대응해줄게. 덤벼라. 문빠들”이란 글을 써 논란이 일었다. “극렬 문빠 중 한 사람이자, 한겨레에 칼럼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중히 여쭙겠다. 도대체 가만히 있는 ‘문빠’들한테 자꾸 왜 이러십니까? 답변 부탁드린다”(이정렬 전 판사)며 유명 인사들도 안 전 편집장 압박에 나섰다. 안 전 편집장은 결국 사과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기사를 원하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말, 재미있는 말을 해주는 기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라도 듣기만 좋으면 되는 것”(『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이라고 해석했다.


사법부 직접 압박으로 재판 영향 우려도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서초대로에서 열린 사법적폐청산 범시민연대 주최 '정경심 구속영장 기각 촉구 집회'. [중앙포토]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문파의 직접 압박에 주목한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렸던 지난해 10월23일 서초동에서 열린 ‘구속영장 기각 촛불집회’는 사법부 직접 압박의 상징적 장면으로 꼽힌다. 당시 이들은 “무사귀환 정경심. 사법부를 개혁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 역시 지난해 1월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뒤, 법원으로부터 신변보호 조치를 받았다. 판결 직후 여당에서 “양승태 적폐 사단이 조직적 저항을 벌이고 있다. 국민에 의해 제압될 것”(홍영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이라는 반응이 나온 데 이어, 문파 일부가 성 부장판사 얼굴을 인터넷에서 공개하며 과격한 비난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도 문파 방청객들이 “재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수하”라며 소란을 피웠다.

법조계에선 문파들의 이런 행동이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한다. 아예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선제적으로 SNS를 차단하는 이들도 있다. 2018년 1월 사법농단 진상조사 과정에서 판사 개인PC를 영장 없이 열어보는데 반대하며 ‘김명수 대법원’ 체제에 쓴 소리를 던진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그런 케이스다. 김 부장판사는 “나를 욕하는 집회나 기사 댓글은 그냥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반면 페이스북에서는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차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는 이해관계 첨예한 사안에 결정을 내리니 멘탈이 굳건해야 하는 게 기본”이라면서도 “요즘처럼 판사에 대한 위협이 일상화하면 당연히 판결에도 영향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문파의 전방위적 공격 배경에는 ‘팬덤문화’와 ‘정치양극화’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경쟁자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는 팬덤이 정치문화로 자리잡고, 양극화로 분노와 증오가 확산하며 이견에 대한 공격 성향이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자신들의 공격에 힘 센 사람이 휘청이는 모습에 일종의 효능감을 느낀 것도 공격성의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폭력적 방법은 자제 시켜야 할 정치인들이 이같은 행동을 ‘양념’ ‘에너지원’이라고 부추기는 건 사회를 폭력으로 몰고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파의 공격은 조직화된 전략적 행동이다. 현 정부에 반하는 인사들을 적폐·수구로 낙인찍어 사회 주류를 교체하겠다는 의지가 녹아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영익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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