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평 원룸에 갇혀 잔고를 빼앗겼다" [방구석 연대기 원룸 생활 청년 ③]

박도형 2020. 9. 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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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는 코로나 시대의 생존자들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좁은 방구석에 갇혔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업무를, 수업을, 식사를, 육아를, 쉼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목숨을 지키는 대가로 가진 것들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사업장이 문을 닫아서, 과외를 쉬어야 해서, 버스가 무서워 택시를 타느라, 단골 식당이 아닌 배달 음식을 먹어서, 낮에도 집에서 에어컨을 켜야 하기에 알게 모르게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것을 ‘코로나 비용’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대책 없이 빠져나가는 이 코로나 비용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코로나의 증인들입니다.

모두가 힘든 이 상황에, 우리의 목소리는 배부른 소리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살아 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에 드는 비용이 늘어나 ‘부담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배부른 소리를 더욱 높여 알리고자 합니다. 그렇게 너도 나도 떠들기 시작해 모두의 하소연이 세상에 울려퍼져야만, 진정으로 배고픈 자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이지 못하는 우리는 여기 ‘방구석’에서 코로나를 증언하겠습니다. 사회로부터 어떻게 코로나 비용을 지불 ‘당’했고, 그래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떠들겠습니다. 우리 5명의 청년들은 지금, 코로나에 맞서기 위한 ‘방구석 연대기’를 써보려 합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4평 원룸에 사는 김지수씨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부엌과 침실이 중문으로 분리된 구조이지만, 요리를 한 번 하면 침실에 걸린 옷까지 냄새가 밴다.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옆집에서 요리를 하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기고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코로나에 과외 수입이 끊긴 지 한 달 하고도 보름입니다. 원래 한 달에 총 40만 원을 벌어 생존하던 저는, 갑자기 좁은 방구석에 갇혀 일자리를 잃고 ‘코로나 비용’을 지불당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2평 원룸에 동거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가족은 내가 성소수자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커밍아웃 이후 집은 불화로 쉴 수 없는 공간이 되었고, 나는 결국 내가 게이임을 밝힌 지 1년째에 집을 나왔습니다. 나의 성지향성을 이유로 엄마의 극단적 선택 시도를 봤던 나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쉼’을 누릴 수 있는 이 좁은 집에서 살기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만들어낸 이 거대한 공황은 이 집을 그렇지 못한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폭염이 한창이던 얼마 전, 원룸의 에어컨이 고장 났습니다. 우리는 땀을 비 오듯 흘렸지만, 그 상태로 3일 동안이나 집에 갇혀야만 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달리 밖에 나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쨌든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전에 에어컨을 고칠 수 있었고, 수리까지 잠시 머물 집을 빌려준 친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나는 사실 건강보다는 벌이가 끊길까봐 코로나가 무섭습니다. 나와 동거인 중 한 명의 자가격리 판정은 곧장 모두의 2주간 수입이 끊김을 의미합니다. 확진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2평 원룸에는 자가격리를 할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는 과외 학생이 대면 과외를 멈추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고, 이 시국에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며, 아무도 만나지 않아 불안장애는 심해지는데, 다니던 병원을 갈 통장 잔고는 없습니다.

분명 방역은 모두의 생존을 위한 것인데, 국가정책은 지금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급된다는 통신비 2만원은 내가 지불당하고 있는 코로나 비용에 턱없이 부족하고, 국가의 방역 지침에 나의 생존 지침은 없습니다. 그렇게 나는 방구석에 갇혀 알게 모르게 더 많은 ‘코로나 비용’을 지불당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나에게 시민의 의무로 기꺼이 이 ‘코로나 비용’을 지출할 것을 권고하는데, 나는 KF94를 살 돈을 다 빼앗겨 마스크를 재사용하고 있습니다. 새 마스크, 유증상시 자가격리, 외출 자제, 16만 원의 자비 검진. 나는 모두가 쉽게 말하는 이 지침들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공간에 갇혀 폭염과 장마를 버티고 있는 자들. 처음부터 자가격리 할 공간을 가지지 못한 이들. 당장 증상이 의심될 때 검사를 받으러 갈 이동수단조차 마땅찮은 사람들. 푸념조차 할 여유도 없이 생존에 매달려야만 하는 약자들. 그리고 확진자들. 나는 코로나에 내몰린 이들에 비해 지금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 삶에 위협을 느끼고 있고, 오늘의 끼니와 내일의 관리비가 걱정됩니다. 코로나가 만들어내는 비용들이 무섭습니다. 어디엔가 하소연을 하고 싶지만, 우리는 이제 함께 만나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친구들에게 메신저로 돈을 빌릴 뿐입니다. 그들도 지금 분명 이 코로나 비용을 지불’당’하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먼저 나의 이야기를 꺼내 보았습니다. 당신도 혹시 방구석에 갇히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나처럼 코로나에 일자리를 잃지는 않으셨습니까?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집 앞 카페도 갈 수 없는 현실이 암담하지는 않으십니까? 당신은 어떻게 ‘코로나 비용’을 지출‘당’하셨습니까? 그 비용이 다른 모든 것들보다 커 보이지는 않으셨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박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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