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우리 국민 피격' 최악의 수 둔 북한..관건은 '유감' 표명 여부

서재준 기자 2020. 9. 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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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격 및 화장' 지시 어디서 나왔는지에 따라 대응 수준도 다를 듯
권위 있는 주체 통해 유감 표명하며 상황 관리 나설 가능성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승선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가 24일 오후 해양경찰의 조사를 위해 대연평도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다. 국방부는 이날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웠음을 확인했다”라고 발표했다. 2020.9.24/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북한이 자신들의 해역에 진입한 우리 국민을 피격 후 통보 없이 화장까지 하는 '악수'를 뒀다. 남북 간 월경 인원에 대한 조치로는 역대 최악의 방식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군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2일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어업지도원 A씨)을 발견 6시간 여만에 사살 후 시신을 화장 처리했다.

북한의 관리 하에 있는 영내에서 우리 국민이 피격 사살된 사건은 파장이 크다.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산책 중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 사살된 이후 남북관계도 급격하게 경색된 바 있다.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북한의 대응은 2008년의 사건에 비해 더 문제의 소지가 크다. 북한이 우리 국민의 신변 처리 문제를 일방적으로 판단한 뒤 이에 대한 어떤 통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A씨를 사살한 뒤 해상에서 그대로 화장 처리를 한 것으로 파악되는 점이 문제다. 남북 간 월경 사례가 발생할 경우 통상적으로 신변을 조사기관에 인도한 뒤 조사를 거쳐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관례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같은 남북 관례는 물론 군사적 위협, 정치적 파장이 적은 민간인의 신변 처리에 대한 인도주의적 대응마저 모두 무시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만행'으로 규정했고, 이에 따른 남북관계의 급속한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국경 지대에 대한 방역을 군 경계 강화 조치를 통해 강화했다.

북중 국경지역에서도 무단 월경자를 사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따라서 북한은 A씨의 월북 의사 여부와 무관하게 A씨를 상륙시켜서는 안 되며, 해상을 통한 송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남북 인원 간 접촉조차 피하겠다는 판단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월북자의 무단 개성 월경 후 북한이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전국적으로 방역 조치를 강화한 것도 이번 조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시 관련 사건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주재하며 경계에 실패한 접경지 주둔부대를 문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사안에 대응한 북한군 부대의 입장에서는 이런 평양의 의지를 고려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관건은 이번 조치가 평양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취해진 것인지 여부가 우선적으로 고려할 핵심 사안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이번 대응이 남북관계, 국제 여론의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을 리 없다.

특히 2008년 금강산 관광객의 피격 사건을 겪은 남북의 기억을 감안하면, 북한이 원칙적 조치를 취했다고만 항변하기에는 사안의 파장이 너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에서 이번 조치를 결정했다면 북한이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개선 의지가 없음을 재차 확인한 셈이 된다. 지난 6월 대남관계를 '대적 사업'으로 전환한 뒤 여전히 이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현장과 평양에서 대응 톤에 대한 인지부조화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남북 간 사안은 정치적 파장이 있는 사안임에도 현장에서 지나치게 '원칙적' 조치를 단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22일 오후 15시30분께 우리 국민을 처음 발견한 북한이 사살 및 화장을 단행한 같은 날 밤 10시께까지 약 6시간 동안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을지가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상황 관리 차원에서 사과에 가까운 '유감'을 표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내부적으로는 원칙적 대응을 했음을 강조하면서도 이번 조치가 '메시지' 차원의 행동은 아니었음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유감 표명의 주체와, 그 내용의 수준에 따라 북한의 '진정성'도 가늠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한 북한의 조치를 '만행'으로 규정하고 진상규명과 사과, 재발방지 조치를 요구한 만큼 북한도 가볍게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다만 대남 경색을 이어가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침묵을 유지하거나, 원칙적 대응만 강조하면서 유감이나 사과를 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대북 여론 악화에 이어 대북 유화 기조를 유지해 온 정부를 향한 비난 여론도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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