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땐 무기징역' 금오도 아내 살해 사건, 대법원이 무죄로 본 결정적 이유

권오은 기자 2020. 9. 24. 16: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자동차 추락사고로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남성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를 받고 이를 대법원에서 확정받는 ‘반전 스토리’가 나왔다. 현장 검증으로 실시한 ‘차량 실험’이 1심 판단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스모킹건)’가 됐다.

◇일출 보러 갔다가 ‘끔찍한 사고’
사건은 2018년 12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혼인신고를 마친 지 3주된 부부는 일출을 보기 위해 선착장을 찾았다.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당일 남편과 A씨는 저녁식사 후 차 안에서 성관계를 하려고 한적한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성관계를 도중 A씨가 몸에 이상을 느껴 민박집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차를 돌리려고 후진하던 중 뭔가 부딪히는 느낌이 났다. 놀란 박씨는 운전석에서 바로 내려 차량 뒷편을 확인했다. 그때 경사로에 있던 차가 바다로 굴러 떨어졌다. 차 안에 있던 아내는 119에 구조 신고를 했지만, 사고 1시간 뒤 숨진채 발견됐다.

사고처럼 보였지만 수사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들이 나왔다. 운전경력이 20년이 넘는 박씨는 하차하면서 기어를 중립(N)에 놓고 주차 브레이크도 잠그지 않았다. 또 차량 조수석 창문만 7cm가량 내려가 있었다. 이틈으로 물이 빠르게 차면서 A씨가 차 안에서 119에 신고한지 3분여만에 통화가 끊겼다.

보험설계사였던 박씨가 사고 전 A씨의 보험 수익자를 모두 자신으로 돌려놓았다는 점도 더욱 의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A씨 사망으로 박씨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최대 12억5000만원 상당이었다. 결국 검찰은 박씨가 처음부터 보험금을 노리고 A씨에게 접근한 뒤 사고로 가장해 살해했다고 보고, 그를 구속기소했다.

◇현장검증서 저절로 굴러떨어진 차량
재판의 쟁점은 박씨가 뒤에서 밀지 않고도 차가 경사로를 따라 바다로 추락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차를 밀었다고 봤다. 경사면에 있는 차량이라면 박씨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굴러가야 했다. 하지만 박씨가 운전석에서 내려 차 뒷편을 살펴볼 때까지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평평한 곳에 주차돼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박씨 측이 주장한 ‘바람’ 등에 의해 차가 움직일 가능성은 없고, 박씨가 밀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존귀한 생명을 보험금 편취를 위한 도구로 이용했고, 한겨울 밤 피해자를 차에 태운 채 차가운 바다에 빠트려 극심한 고통 속에 익사하게 만들어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질타했다.

그런데 2심 재판과정에서 이른바 ‘임계지점’이 발견됐다. 사건 현장에서 실험을 한 결과, 차가 선착장의 특정 지점에 주차되면, 처음에는 정차해 있다가 조수석의 사람이 움직이는 순간 굴러내려가는 경우가 발생했다.

2심 재판부는 "승용차 노면 바닥의 경사를 봤을 때 중립기어 상태에서는 아주 작은 힘으로 차가 굴러갈 수 있고, 피해자의 움직임에 따라 차가 굴러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핵심 증거가 깨지면서 다른 정황들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뒤집혔다.

검찰은 사건 일주일 전 부부가 같은 장소를 방문한 것을 범행 장소를 물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 역시 이같은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사전 답사라고 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봤다. 특히 꼼꼼하게 범행을 준비할 정도라면 사고 당시 차량 문이 잠겨있지 않았던 점 등이 석연치 않다고 봤다.

또 1심 재판부는 ‘경제적 어려움’을 범행 동기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소득이 일정해 살인 모의를 할 만큼 경제적으로 급박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봤다. 박씨가 1억여원의 채무에 대해 2017년 개인회생 결정을 받아 매달 30만원씩 납부해왔던 만큼 살해라는 극단적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대법원 역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따라 박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의심스러운 사정은 있지만 피고인이 피해자만 탑승하고 있던 승용차를 뒤에서 밀어 바다로 추락시켰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직접적 증거가 없다"며 "이밖에 사정을 고려해도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고의적 범행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